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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말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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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Jan 01. 2019

2018년 결산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유난히 짧게 느껴지기도 했던 한 해 

올해 목표대로 '잘해내는 것'이 아닌 '하는 것'에 집중한 시간을 보냈다 자평한다. 유독 빠르게 시간이 흘러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올해 이래저래 해보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말한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였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범위는 좁고, 떠오른다 하더라도 할 줄 모르는게 태반이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더 깊이 고민하면서 많이 찾아도 보고, 배우기도 하고, 할 줄 알는 것도 늘려나가고 싶다.
올해는 작년처럼 두렵고 불안하지 않다. 겁이 안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도 욕망처럼 쪼개어 보고 들여다보면서 어느정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좀 더 신뢰하게 된 덕도 있다. 나는 부족함이 많지만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고, 애쓰는 와중에 오지랖은 또 오지랖대로 부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총평은 이랬다. 2017년은 욕망에 따라 '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더랬다. 2018년에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던 해였고 그 다음 결론을 일찌감치 내려놓고 2019년을 기다렸다. 


마무리는 되어지는게 아니라 하는 것

올해는 유독 마무리 할 일이 많았다. 올해 1월 두번째 직장이었던 sopoong를 퇴사했고 같은 달에 첫 직장 위즈돔이 폐업했다. 좋은 마무리란 무엇일까, 질문을 곱씹으며 카우앤독 3층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동료가 들려준 <파이널 판타지 14> 이야기 덕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힘을 들였다. 그때 이런 문장을 적어두었다.

마무리는 결정을 기점으로 시간이 흐르며 저절로 되는 것인줄 알았는데, 어떤 마무리를 하고 싶은지는 그 서사를 꾸리는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마무리는 '되어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었다.

위즈돔 엔딩 파티를 기획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서비스를 만들어온 사람들을 초대해 기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sopoong에서는 하고 싶었던 Gender Lens Investing 프로젝트를 완결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야근과 회의를 반복했다. 


마무리를 하면서 영향력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가진 자원을 가지고 어떤 사건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 그 순간의 낙관과 능동성이 다른 결말을 가져온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하나의 서비스를 함께 사랑했던 사람들, 앞으로도 자주 만나요!

6월에는 사랑하는 어른, 박만국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태어나서 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나에겐 부모님과도 같은 분들이다. 집을 오래 비우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는 했다. 공간을 옮길 때마다 항상 하던 시뮬레이션이었고 점점 인천집과 내가 있는 곳의 거리는 멀어졌다. 생각치도 못한 날, 하필이면 집에서 두 시간은 넘게 떨어진 곳에서 소식을 들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던지라 많이 서툰 이별을 했다. 


할아버지가 아흔을 넘긴 순간부터는 죽음에 가까워진 나의 어른을 마주하는게 낯설었고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카메라로 틈틈히 사진을 찍고는 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날 사진을 정리해 가족들에게 보냈다. 미루지 않고 할아버지의 마지막에 가까운 순간들을 가족들과 나누길 잘한 것 같다.

엄마에게 할아버지 표정이 다 슬퍼보여서 슬프다고 하니 엄마는 할아버지다운 표정이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 답답했을 텐데도 당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마음을 평화롭게 가꾸는 어른이었지 않냐고, 그 태도가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했다. 계신 곳에서는 보고싶은 것들이 다 보여서 들뜬 얼굴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자주 그립다. 

스무여 장으로 사진을 추렸다. 더 많이 찍을 걸 아쉽다.


동거 그 다음은 동반

이제 곧 동리씨와 동거한 지도 2년이다. 연애를 한 4년의 시간의 절반은 한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 2017년은 공간 안에서 같이 사는 삶(동거)을 준비하고 익숙해져가는 시간이었다면 2018년에는 시간 안에서 같이 사는 삶(동반)을 위해 서로를 더 깊고 넓게 이해 하는 시간이었다. 

올해 큰 결론 두 가지를 내렸다. 하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지 않고 동반의 삶을 모색해보기로 한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로 한 것.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행복해야 하고, 행복한 개인이 동반의 관계를 꾸리는데 가부장제는 일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 아빠와 내 선택과 방향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 나누고 지지 받고 있다. 아래는 내 생일 날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쓴 기록.

엄마, 아빠는 하나의 이야기를 각자의 표현으로 전했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모양으로 억지로 맞추려고 하다보면 탈이 난다고.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모양을 함께 찾아가면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너희가 대화하고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걸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가족의 모습이 어떠하던 간에 혜민이, 동리는 잘 해나갈 거란 믿음이 있다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함께 해외 여행을 갔다. 일본 가나자와의 정어리 식당 앞. 증말 맛있고 행복했다.

최근에 아빠는 '너와 동리의 동거를 지지한 순간 너희가 반려의 관계로 넘어간 것을 인정하고 지지한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결혼과 결혼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고, 네가 처음부터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한 것이 애초에 가부장제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의지였던 것 같아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이해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부터 아빠는 동거의 삶과 동반(반려)의 삶을 연결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끝을 염두하고 동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어슴푸레 동반을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반을 고민한다는 건 분명히 다른 챕터인 것 같다. 다행히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내년에는 동반의 삶을 더 잘 가꿔보기로, 그래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반동거의 삶이 되더라도 단단히 지낼 수 있도록 우리의 모양을 잘 찾아가야 겠다. 


+ 엄마 아빠도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이해하지는 않았다. 아빠도 처음에는 결혼식을 하기 싫다는 뜻은 지지해줄 수 있지만 결혼식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더니, 이후에 어떤 여성학 강연을 듣고나서 결혼식과 가부장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게 되었고, 내가 왜 그렇게 결혼식을 내켜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여전히 '그래도 결혼과 결혼식을 하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동거 전에도, 동거를 하는 동안에도 엄마 아빠와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단숨에 서로의 맥락을 공유하기란 정말 어렵고 작게, 잦게 과정을 잘 쌓아야 한다. 


디엣지레터와 Our lens

올해 초 무력함에 한껏 웅크리다가 나의 야망은 무엇일까, 나에게 야망은 있나, 나는 무엇을 크게 이루고 싶은 사람일까 하는 질문이 들어더랬다. 아래는 그 때 쓴 글.

3월 초, 동리씨랑 결혼을 주제로 열 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어 서로에게 물었다. 결혼 후에도 지키고 싶은 것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나의 야망’을 꼽았다. 그게 뭐냐고 되돌아온 질문에 답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야망을 가져본 적도 그려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공허한 다짐일뿐. 

무언가를 욕망하고 여러 개의 욕망을 다루는데 꽤 익숙해지고 있다고 해서 야망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야망이라고 하면 최고의 자리, 비열한 세계, 쉴 틈없는 치열함, 엄청난 영향력 뭐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그 안의 나는 어색하다. 야망이 없는 나는 지루하고. 

나의 야망은 어떤 생김을, 방향을 가지고 있나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도 안 보인다. 나는 왜 욕망하는 것은 익숙한데 야망은 그 자체로도 낯선가, 두 개는 뭐가 다를까 고민하다가 어젯밤에는 검색창에 욕망과 야망을 넣어 보았다.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야망은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이란다.

지금은 와이드 스쿼트를 하는 와중에도 트레이너가 '회원님은 어떤 야망이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고 할 때 망설이지 그렇다고 말하지만 처음에는 긍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가진 영향력을 이해하고 다루기 시작해 나의 야망을 정의하고 품기까지, 그 외에 어떤 마음과 결심이 필요했던 수많은 순간들에는 동료 여성들의 힘이 컸다.


1월에 퇴사하면서 함께 일했던 모리, 써머와 자주 못보는게 아쉬워 Our lens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써서 모이기로 했다. 4월까지는 글을 쓰고 브런치에 발행했지만 그 이후에는 완성된 글이 없이도 꾸준히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내 유약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살피는데 큰 힘이 되었다.

5월부터는 디엣지라는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성된 모임 디엣지클럽(모서리파)에서 서로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네 명으로 시작해 다섯 명이 된 일하는 여성들이 각자 한 편씩의 글을 써서 뉴스레터를 발송하면 어떨까, 하다가 어쩐지 부담이 되니 우리끼리 해보자고 매주 한 편씩 서로에게 메일을 썼다. 선명한 얼굴(+음성지원)이 있는 글을 본다는 것, 그리고 발신한다는 것은 생각치도 못한 경험이었다. 한 주 동안 맴돌던 생각을 메일창을 열어 적다보면 매듭이 지어지면 지어지는 대로, 열어두면 열어두는 대로 이야기가 나아가는 듯 했다. 서울이 가장 더웠던 날, 시원했던 대관령의 여름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최초의 8월 초 여름 휴가였고 사람들이 왜 이 때 휴가를 가는지 아주 잘 알았다.


올해 디엣지레터를, Our lens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려운 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하다. 여러 마음을 새롭게 세우고, 다시 매만질 수 있었다. 덕분이라는 말이 차오르고, 그걸로도 부족한 동료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병렬적 일의 실험

작년 말에 새로운 일의 감각과 방식을 축적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병렬적인 일의 실험을 결심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직장에서의 일은 어떻게 구성하고 싶은지 '2018년의 일'이라는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렸다. 조직의 기준, 쌓고 싶은 일의 감각, 관심있는 산업과 업무로 가지를 치고 항목을 적었더랬는데 신기하게도 올해 2월부터 에어프레미아로 이직하면서 대부분의 항목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쌓고 싶은 일의 감각은 모두 동그라미! 내년에도 호기심과 다정함, 추진력과 지구력을 잃지 않고 신나게 일해야지. 

[2018년 쌓고 싶은 일의 감각] 
- 해보지 않아서 시뮬레이션조차 잘 안되는 일을 상상하는 감각
- 최선의 방법인지 여러 가설을 검토하며 확신으로 나아가는 감각
- 하나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여러 명이 몰입하고 성취해나가는 감각
- 문제를 해결해가며 이전에 없던 것을 구체화되어 가는 감각
- 툴을 활용해 가설을 검증해보는 감각 

평일 낮에는 에어프레미아에서, 퇴근 후/주말에는 디모스와 프리랜서네트워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일했다. 올해 내내 세 가지 일을 병행했고 기대했던 것처럼 어느 공간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일의 방식과 감각이 달랐다. 


그 다름을 구별하고 구성하고 성취하면서 동시에 '내가 가진 일의 감각과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조직 형태나 솔루션이 다르다고 해도 일은 결국 일인 순간들이 있다. 나 역시도 다른 역할로 일을 하더라도 일은 일이기 때문에 접근하는 태도가 같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밀도 높게 일하다 보니 '일하는 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작할 때는 이럴 줄 몰랐다.


이후에 이 글을 읽을 나를 위해 기록해둔다면 나는 일이 되게 만드는 걸 잘하고, 일이 되게 할 때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함께 만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아 에너지를 많이 들인다. 일의 큰 그림을 그린 다음, 일이 되게 하는데 필요한 일을 또 쪼개서 각자의 효능감을 발휘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걸 좋아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친 통제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병렬적으로 우선 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 여름 즈음에 갑자기 아하 모먼트가 왔고 병렬적인 일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통합되어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오랜만에 생긴 장기적인 목표였고 자주 꺼내보며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금 다듬는다. 이 일의 실험을 시작할 때 아래 만화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는데 한 해가 끝날 무렵 다시 보니 여전히 위안이 든다. 몸은 좀 고되었다만 '새로운 나'를 늘릴 수 있었다. 


그래서 2019년에는

2018년은 여러모로 실험과 시도가 많았다면 2019년에는 실험의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깊게 몰입하고 싶다. 병렬적 일의 실험이 나를 확장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가면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해나가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과 무언가 생각하지 않는 공백을 많이 만드려고 한다. 2018년 나의 발견 중 하나는 일을 다른 일로 쉰다는 건데, 이 말은 즉슨 A를 하다가 B를 하면 A를 쉬는 기분이 들면서 A에 대한 아이디어나 생각 정리가 잘 떠올라서 계속 일을 하는 상태로 있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물론 완전히 방전되기는 싫어서 동리씨랑 놀거나 친구를 만나고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은 살뜰히 챙기고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비워두고 싶다. 


지쳐서 그렇다기 보다는 평온한 할머니로 늙어가려면 일로 일을 쉬는 건 그다지 좋은 습관 같진 않아서다. 2018년이 일의 감각과 방식을 확장한 해였다면 2019년은 삶의 감각과 방식을 확장하는 해였으면 한다. 하반기부터 한 달에 한 번 동네 커뮤니티 바의 호스트가 되고, 몇 년째 마음만 먹던 일대일 피트니스를 시작하고, 달리기 수업에 나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머리를 끄고 몰입할 수 있는 애호의 영역을 탐구해 나가고 싶다. 공부도 많이 하고. 그게 무엇이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2019년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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