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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여행기를 쓰는 법

<줍는 순간> 서평

by 오월씨

완성된 비주얼노트는 아래의 링크를 타고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북클럽문학동네를 통해서 안 읽을 법한 책을 읽게 됩니다. <줍는 순간>도 그러한 책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와 공부해야 할 정보 속에서 멈춰 선다는 건 마냥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멈춰서는 듯이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인 시인의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하고, 시에 대한 마음을 여행하기도 하고, 나의 과거를 여행하기도 하고, 삶 그 자체를 여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멈추게만 하는 책이 아닌, 계속해서 걸어가게 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여행을 통해 "저를 찌르는 순간들"과 "저를 관통해가는 감정들"을 줍는다고 하였습니다. "기억의 불완전성에 저항하며 순간을 채집하기 위"해 여행 중 사진을 직접 찍고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시인의 여행은 동경하는 예술을 따라가는 여행으로 시작해서 어린 시절의 본인을 안아주고, 사람들을 만나고, 시와 종이, 더 나아가 삶 그 자체를 여행합니다. 문인들의 묘지에 찾아가 시인이 되게 해달라고 떼쓰는 모습, 창밖을 통해 보이는 풍경들과 사람들의 모습, 영화 속에서 만난 장면들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가는 모습 등 그녀만이 보고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특히, "세상 어디에도 '멈춰 있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이별하는 여인, 남자친구에게 심하게 기울인 여자친구, 빵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소년 등 창문의 움직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흘러갈 때에 그걸 줍는 건 개개인의 의지이자 책임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써야만 했던 간절함이 여행에서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게 되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그리움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잊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나는 계속 써야만 합니다."


이 책은 저에게도 묻습니다. 무엇을 줍고 있냐고요. 과거의 여행은 다시 한 번 저도 복기해봐야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줍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편에 대한 사랑, 그리고 또 하나는 제 인생의 과제입니다. 제가 신혼인 것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의 기울임에 함께 기울임으로 화답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슬픔, 간절함, 평온함 등 여행기에서의 감정의 흐름을 보며 그 모든 것을 이제는 남편과 함께 느낄 것이라는 마음과 함께 각자의 선택으로 사랑을 완성시켰고, 완성된 사랑을 키워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언급한 제 인생의 과제라 함은 '버림'입니다. 시인은 시에 대해 가르칠 때 '시를 접시 위에 올려달라'는 주문을 합니다. 시는 아니지만 저는 항상 제가 가진 접시가 넘칠만큼 쏟아붓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진 접시는 정해져 있고, 그렇다면 제가 이 접시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 선택해서 그 선택에 집중하여 예쁘게 만들어서 내어가야 할 것입니다.



책을 덮었는데도 주어진 과제가 많습니다. 저의 지난 여행은 어땠는지 돌이켜보고 싶고, 더 나아가 삶이란 여행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제도, 그리고 여행도 그저 흐르게 두는 것이 아니라 저만의 것을 주워가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시인은 여행기라고 했지만 여행기 답지 않은 것을 걱정한 것 같지만, 독자를 자기만의 여행길 위에 세워두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삶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시를 쓰는 사람의 시선이 궁금하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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