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그리는 아이

by 이창우

누구나 그럴 겁니다. 결혼하여 첫 아이의 탄생은 경이로움입니다. 더욱이 놓칠 뻔 한 아이를 받아 안은 상황이라면 축복인 거지요. 예측하지 못한 위급한 상황에 응급실로 가서 수술을 할 경우 대개는 산모와 아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선택을 해야 했던 남편의 놀람이야 나중에 웃으며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인 거고요.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부모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탄생입니다.


첫아이 출산을 위한 준비를 꽤 육아 이론에 맞춰 준비하고 계획하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태교음악 음반부터 아이의 침대 만들기. 그 침대를 아이가 쓸 때까지 지키고 있을 커다란 하얀 곰인형까지요. 나는 어린 시절 옛날이야기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서 간략하게 듣고 직접 책으로 읽지 못했던 동화책에 욕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내 아이를 위한 출산 준비 품목에는 시리즈로 7살까지 읽을 책과 장난감을 단계별로 준비했죠.


아, 첫아이를 만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가 되어 만날 신의 축복입니다. 또 하나 더 후후. 첫아이는 거의 모든 부모에게 천재가 되죠. 내 아이도 그랬습니다. 처음 내 아이를 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한 고정관념부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왼손잡이는 특히 여자가 왼손을 주로 사용한다는 건 드문 일이었죠. 일종의 금기가 작동되던 시절이었어요. 시어머니의 말씀이 늘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시곤 했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아이의 왼손 성향을 망가뜨리지 않았죠. 육아백과로 이론을 숙지한 좋은 엄마 되기 중이었거든요. 첫아이는 첫돌을 지나면서 낙서를 하기 시작하더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어요. 그 당시 크레파스 종류는 다양했는데 새로운 이름의 크레파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백화점 코너에서 어김없이 아이의 손에 있어야 했어요. 특히 내 기억에 남은 왕자 파스와 피노키오 파스던가요.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크레파스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아직도 그 그림이 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엄마. 이게 바람이야.”


정말 내 눈에 보이는 그림 안에 바람이 그려져 있는 겁니다.


“어머, 진짜 바람이네.”


바람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렸는지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분명 바람이었답니다. 우린 함빡 웃었고 난 속으로 생각했죠.


‘이 아인 화가가 되겠어. 천재야. 재능을 타고났네.’


첫아이는 그렇게 순조롭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고 역시나 학교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며 꿈을 키웠나 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미대 교수요.”


아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당당하게 말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만들어 주입시킨 꿈이었겠지요. 아이가 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미대 교수가 되면 더 좋은 거야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아이가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할아버지 선생님이라 부르곤 했는데 정년퇴직을 앞두신 분이셨거든요.


그래요. 할아버지 선생님이 아이를 얼마나 아껴주셨던지요. 할아버지 선생님의 사랑이 있어서 든든한 마음이었지요. 유일하게 초등학교 2학년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던 특별한 아이로 자랐으니까요. 그리고 자연스레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지금은 화가가 되었냐고요? 아니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어 통역과 번역을 하는 회사에 근무 중입니다. 어릴 땐 태권도와 검도를 하더니 지금은 복싱을 하며 바람을 그리는 아이가 이제는 바람을 가르는 어른이 되었다는 거죠.


내 앞에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지 되돌아보면 왜 그리도 그땐 그렇게 까마득하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첫아이는 그 길 위에서 제법 치열한 열정으로 자신을 붙들고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갑자기 첫아이가 네 살인 듯 다가온 일요일 아침. 그녀의 새로운 벗이 장미꽃 한 송이를 가져왔대요. 이건 그야말로 내성에 콕 찌르는 떨림입니다.


“와, 진짜 마음에 든다. 멋진 사람이야.”

그 순간 내 아이도 나를 떠올렸대요. 내가 장미꽃 한 송이를 받으면 온 세상을 다 받은 마음으로 무지하게 행복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우린 마구 웃었습니다. 둘이 부디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사람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설레는 아침에 마구 떠오른 마음을 늘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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