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쯤에서야

by 이창우

나는 자유를 허수(i)로 여긴다.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 그래서 자유만큼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드물지 않나 싶다. 우선은 내 나라의 헌법에 명시된 제1조 1항의 국가 정체성을 명시한 것부터 말이지.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유권은 국가의 폭력성에서 시작해서 자연스레 개인에게도 답습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자유를 대신해서 거론되며 대체되는 숱한 말들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말은 개인의 판단력을 늘 휘젓는데 한몫을 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자유라는 것은 자신을 속박하는 미화된 이름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될 때 자유권에 관한 침해는 폭력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방감은 세대마다 다르게 각자에게 전달될 것 같다. 해방감으로 전달되는 감정의 기복도 다르겠지. 끙끙 앓던 볼 일을 해결했을 때도 가능하겠고 지옥철의 승차장에서 겨우 빠져나와 높은 하늘을 만났을 때도 있겠지. 개인의 일탈에서도 가능하고 밀폐된 공간의 EXIT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국가적으로야 지난해 71년을 맞은 광복절이 해방감으론 최고 수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란 존재는 없었으니 어머님의 어린 시절의 엷어진 기억을 대신으로 느껴볼 감정이다. 하지만 광복절은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일 따름이고 개인적으로 광복절을 기념하는 방법도 각색일 테니.


2013년 제작된 핌 반 호브 감독의 영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유산이 그의 조카 빈센트 빌럼 반 고흐에게로 남게 된다. 빈센트 빌럼 반 고흐는 이 위대한 유산으로 평생 중압감을 느꼈고 어느 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고자 한다.


1959년, 파리에서 반 고흐가 남겼던 그림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살았던 그의 조카이자 또 한 명의 ‘반 고흐’, 빌럼의 결정에서도 해방감은 느낄 수 있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테오의 아들로, 반 고흐가 죽던 해 태어나 삼촌이 남긴 수백 점의 그림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반 고흐의 조카’가 아닌 ‘빌럼’으로 살기 위해 그림들을 모두 팔기로 한다. 그의 삶을 속박한 위대한 유산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 바로 해방감이다. 그것이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을 억누를 때 자아의 요동침을 진정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이루는 삶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는 부모에게서 또는 나와 가까운 대상들에게서부터 또는 사회로부터 만들어진 것일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그것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 만나는 해방감은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기회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속박의 시작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삶 대부분을 해방감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 꽤 많았다. 올봄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상상 같은 거도 그렇다. 그 상상이 현실로 열리는 데는 필수 조건이 있게 마련인데 하루아침에 그 필수 조건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경우이다.


내가 원했던 일이었어도 내가 아닌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끝장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 경우 사나흘 정도의 밤이 지나면서 현실을 인지하기도 한다. 그때 찾아드는 그 상상했던 일들에서 빠져나와 느끼는 감정, 그것은 해방감이었다.


아마도 해방감은 스스로 만든 벽을 허물어버릴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지 싶다. 결코, 작위적으로 해방감을 맛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상상력을 발휘하면 뜻밖으로 전개되는 재미있는 시간도 열릴 수 있으니 벽을 세우거나 허물거나 제 맘이기는 하다.


죽음의 체험은 명상하는 과정에 접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비해 자신의 관을 미리 준비해 관 안에 누웠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해방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삶을 다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편안한 잠을 잔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수를 좇는 일이 삶이란 걸까. 끊임없이 자유를 원하면서 어느새 자유를 자발적으로 반납해야 하는 삶. 결국, 나는 알 수 없는 이 세계가 드리운 무게와 그것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투쟁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다가 삶의 끝쯤에서야 진정으로 해방감을 만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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