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대상은 다양할수록 진한 그리움을 만들어 준다. 여러 빛으로 물든 그리움을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면 행복한 순간들로 삶은 고양되어 간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남기거나 타인이 주는 상처를 두려워하기에 연애를 다양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두려움은 늘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실체 없는 방해꾼이긴 하다. 그래도 제대로 연애를 해 본 이들은 평생 연애할 수 있다는 게 내 ‘연애학’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죽을 만큼 사랑해 본 이에게 연애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 시간을 평생 느끼며 살아가는 이가 된다면 삶은 참으로 역동적이지 않을까. 나를 알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듯 좋은 연애란 결국 그 시간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내는 시간이기에 그 연애의 결과와 상관이 없어도 충분하다. 나의 연애도 결국에는 타인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실패의 연속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연애를 할 기회이기도 했다.
내게 연애의 대상을 한정 짓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린 모두 인간으로 만나서 성 역할에 따른 다름을 사회적으로 학습된 모습으로 서로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의 대상을 확장하면 사회학적 상상력이 발휘된다. 때로는 그 대상을 어떻게 내 일상에 조화롭게 풀어놓느냐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어떤 대상이든 만나는 연습이 늘 필요했는데 변덕스러운 나를 집중하게 하는 대상은 표출할 수 있는 대부분의 내 감정들을 진솔하게 만나게 한다.
내가 제임스 조이스와 연애에 빠지게 되면 그와 함께 더블린을 걸으며 시간여행자가 되기도 한다. 그의 율리시스를 만나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또 다른 연애에 몰두하며 ‘현재’라는 선물에 열망이 포개진다. 다양한 대상과 오랜 연애 끝에,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인 연애를 하면서도 만나는 설렘과 가슴앓이로 건네는 통증들도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영화관으로 가 조조할인의 혜택과 전용관으로 둔갑하는 순간에 만나는 좋은 영화 한 편과의 연애도 있다.
영화 <동주>를 보고 누렇게 서가에 잠들어 있던 시인의 시에 흠뻑 취하는 시간도 좋은 연애였다. 현실적으로 실패한 연애는 그리움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노래 한 곡, 영화 한 편, 어느 비 오는 날, 또 그 어떤 풍경들에서 지나온 시간의 그리움이 어떤 대상과 함께 펼쳐진다면 그것으로 좋은 연애이다. 그 좋은 연애가 차곡차곡 쌓여있다면 남아있는 삶은 얼마나 향기로울까. 달콤한 연애. 불쑥 찾아오는 연애의 감정에 푹 빠지면 푸른 새벽 기운에도 지칠 줄 모른다.
내가 몇 해 전부터 발견한 오랜 연애의 대상은 ‘정치’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을 자유롭게 해 오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설레기도 한다. 나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를 했다. 다른 지역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을 바라보고 구석구석을 번득이는 눈빛으로 둘러보며 가슴이 콩닥거렸다. 개표를 기다리며 바라는 나의 기대심리는 실망을 안겨 주기도 하겠지만, 그것마저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하나의 가능성임은 틀림없다.
혼자 사랑하여 연애하고 그 시간에서 홀로 아픈 가슴으로 나를 드러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기도 하다. 그것마저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애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안 보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십 대에 성당에서 만난 한 소년에게 향한 첫사랑을 영화의 주인공처럼 떠나보내야 했던 별리의 아픔은 잔인했다. 하지만 술과 장미의 나날들로 보낸 그 시간은 또 다른 빛의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향한 믿음이라는 힘을 건넸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고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는 하나의 내가 필요하지만, 결혼은 세 개의 내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확실히 다르다. 좋은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른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나와 너, 그리고 함께 만든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우리. 이렇게 세 역할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충분한 공감의 시작이 바로 신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다. 그래서 쉽게 놓치곤 하는 이 다름을 알아차려야 한다. 결혼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결혼을 수단으로 전락하게 하기도 하니까. 연애의 감정이 충분하지 않을 때 결혼은 투쟁이 되기도 한다.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나는 차별은 사회적으로 학습되면서 대물림하는 경향이 있다. 유리천장이 있는 나라. 이 부분에서 나는 한국의 남성도 여성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일은 자아의 상실과 절망의 내일을 위해 현실을 갉아먹게 한다. 사회적 시선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의 나라에서 남성으로, 여성으로, 더욱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지 싶다.
사회적 자아에 함몰된 개인적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좋은 연애에서 좋은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연애는 할 수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는 4포 시대를 외치는 청춘이 넘치는 사회이다. 생존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나의 삶을 타인들 앞에 드러내는 용기는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 나가는데 늘 자신을 버티게 해 줄 수 있었던 것, 삶의 지향점을 공감하는 또 한 인간으로 평생의 동반자를 얻는 위대한 선택, 그것이 결혼이었다.
결혼의 전제 조건은 딱 하나이면 충분하다. 이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질 수 있겠다는 느낌. 내가 만들고 지키고 있는 인생의 비밀을 공개해 본다. 십 년 동안 친구이든 동료든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이가 있다면 그때는 결혼을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오랜 시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지속하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 결혼은 자연스레 선택될 수 있는 거다. 좋은 연애란 늘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로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가능하다.
그 연애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대상을 초월하며 무한의 힘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랑놀이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노매드로 모든 현상을 넘어서서 내가 너에게 내미는 손짓이다. 내가 만든 함정에 빠져 침몰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요즈음 나의 연애 대상은 아주 특별하다. 이 사회와 나의 특별한 대상들과의 놀이터에서 야성이 발휘되는 아프리카를 발견하고 몰입의 즐거움을 만나고 있다. 그 즐거움을 밤 새 수다로 풀어낼 수 있는 벗과의 좋은 시간, 좋은 연애는 귀한 마음이다. 좋은 연애란 평생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의 이타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