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마을_이어지다
코비드 시절, 책방에서 모여 시절을 유쾌하게 만날 수 있던 때, 우리는 따뜻한 뱅쇼를 홀짝이며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수다를 떨던 소박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심야 혼술집은 어때?"
"어차피 야행성 인간이니 그런 인간들을 위해 심야 공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만으로 멈추기보다는 일단 실현하기 위한 작당에서 시작된 돌발 행동만은 아니었다. 책방 근처에 작은 카페 자리를 찾아내고 심야 혼술집 이름까지 만들고 간판 디자인까지 머리를 맞댔다.
결단의 날을 기억한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역시 내가 해야 할 선택이었다고 내심 흐뭇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에야 건물주는 심야 술집은 안 된다. 심야 혼술집 진행은 거기까지였다.
대체로 저녁 9시가 되면 거리는 띄엄띄엄 드물게 밝힌 가로등에 의지한다. 5만 명 미만이 살아가는 군 단위에서 읍내여도 겨울밤은 더욱 일찍 시작하고 길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다섯 명 남짓만이 모일 수 있는 시대 분위기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만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시절 몹시 가고 싶어서 돌아보던 마을이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이다.
시도를 해보았지만 비어있는 공간이 많은데도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 없어서 아쉬움을 가지고 마음을 접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을까 내게로 찾아온 운명 같은 장소로 다시 등장했다.
애쓰지 않아도 스르르 열리는 자동문처럼 시간이 멈춘 마을이 내 앞에서 열린다. 이 마을에서는 옛 공간을 지키려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기억에서 사라진 공간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있다.
그 거리에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 삶이 담겨 있는 장미 갤러리가 있다. 사람이 떠나고 세월의 흐름으로 낡은 공간은 다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힘이 작동하는 중이다.
옛 판교 서점이 자리 잡았던 공간이 숨을 모으고 있다. 작은 다락방이 있는 아담한 2층 건물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지만 무척 정겹다. 건물 외벽과 날것의 시멘트 바닥과 책장이 들어갈까 싶은 낮은 천장까지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어린 시절 흑백사진처럼 있다.
하얗게 빛나는 산등성이를 돌아오면서 20분 남짓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착각을 한다. 어찌 이 작은 나라가 이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는가. 시간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감정을 받아들이며 시작하면 가능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