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작가인 버나드 쇼는 말했다.
"지상에서 낙원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를 가라"
유럽인들에게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고 있는 그곳
두브로브니크에 갔다.
낙원
사전적 의미로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
이라고 한다.
굳이 방송에서 뜨기 시작해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곳,
그곳을 첫 도시로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나에게 사전적 의미로서의
'낙원'이라는 의미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숨이 멎을 듯한 야경의 눈부심과
항상 나를 설레게 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어우러져 있다.
여전히 그곳을 떠올리면 현실의 고통과 괴로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두브로브니크는 나에게 낙원이다.
2014년 9월
아일랜드에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선선한 여름을 보내던 찰나
문득,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바다를 즐기고 싶어 졌다.
마침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유학생 S양이
크로아티아를 강력하게 추천했고
여행 준비에 돌입했다.
크로아티아 일정은
자다르(Zadar)-스플리트(Split)-두브로브니크(Dubrovnik)-자그레브(Zagreb)
그중에서 두브로브니크는
말 그대로 '쉼표'가 필요했기에 가는 곳이었다.
일정은 단 3일
(말이 3일이지 첫날은 저녁 도착이라 2일에 불과한 일정이었다)
대부분의 배낭여행족들은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한다.
스플리트 버스터미널은 스플리트 역과 인접해있으며, 매우 찾기 쉽다.
버스를 타고 4~5시간 남짓,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 나라 안에서도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마침 버스 기사님도 이 흔치 않은 상황을 승객들에게 즐기라는 듯
휴게소 앞에 버스를 세워주신다.
마침 내렸을 때는 날씨가 흐려서인지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진 속에 묻어나지 않는다.
국경을 넘었다는 희열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오르고, 또다시 달리고 달려
아드리아해는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때쯤
두브로브니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는 계단이 많다. 깎아지는 절벽의 끄트머리에 살짝 튀어나온
중세 요새도시라는 말에 걸맞게 협소한 공간 탓에
구시가지 인근은 불가피하게 계단식 논밭처럼 주거지가 형성이 되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숙소를 언덕 제일 위쪽에 잡았던 것이다.
어찌 됐든 30분 넘게 짐을 이고 계단들과 사투를 벌이며 숙소에 도착했다.
약 1시간의 휴식 후 아드리아의 진주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깜깜해졌었다.
유럽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항상 주황색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노란색도 아닌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불빛은 왠지 나를 설레게 하고, 여행지에서 설렘을 극대화시키는 불빛이 아닐까 싶다.
렌즈를 통해서 담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20분가량 걸어서 내려가다가 드디어 올드타운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성은 세련된 자태를 뽐내며 푸근하게 사람들은 맞이하고 있었다.
밤을 밝히는 조명이 벽에 부딪쳐 세련미는 더욱 배가되는 듯했다.
성 입구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버스커의 노래와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졌지만 이내 눈부신 야경이 밀려들어와 울적함을 날려버렸다.
많은 인파로 식사할 곳마저 마땅치 않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맥주 한 병과 함께 혼자 분위기를 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의 유학생활, 이후 취업준비를 포함한 불투명한 미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도 현실의 삶의 고뇌를 되새겨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잠시 씁쓸함이 스쳐갔지만
이내 맥주 한 모금에 낭만을 만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뜨거운 햇빛에도 불구하고
스르지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는 대신에 계획했던 대로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등산로는?
알 턱이 없다. 정보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나 물어물어 가다 보니 입구를 만날 수 있었다.
등산로를 찾기 위해서는 층층이 나 있는 두브로브니크의 도로 중 제일 꼭대기에 있는 도로로 올라가야 한다.
집들 사이에 난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등산로처럼 생긴 입구를 만날 수 있다.
그때부터 등산이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한국에서 보았던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 나무 그늘 한 조각 없다.
대신 9월에도 뜨거운 햇빛과 카메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경치만 함께한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산을 오르다 보면 신시가지 쪽도 볼 수 있다.
(신시가지에는 고급 호텔과 시설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즐비해 있다. 버스를 타도 상관없다면 신시가지에 숙소를 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올드타운 근처는 숙소가 비싸고 시설이 낙후되었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누가 등산을 할 것인가
그곳엔 아무도 없었지만 지나가다가 외국인 부부(인지 커플인지)를 만나 인사를 건네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날씨가 좋고 체력이 받쳐준다면 온전히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을 즐기기엔 등산이 좋을 것 같다.)
꼭대기에는 알다시피 케이블카 타워가 있고 1991년에 있었던 내전에 대한 기념관도 있었다.
사진으로나마 잠깐 내전의 아픔을 느끼고 다시 지나간다.
명성에 걸맞게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더 이상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실 그 무더운 날씨에 30분 이상 오르막길을 걸었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으니
사실 경치를 감상하는데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냥 아름답다면 충분하다.
내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을 부탁하려던 찰나,
어떤 한국인 가족께 사진을 부탁했다.
마침 그 가족은 3대가 함께 왔었다.
사진을 찍어 주신 분은 외국에서 많이 근무하는 직업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오셨다고 했다.
"이리 와서 과일 좀 같이 드세요."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 주신 것도 모자라 과일까지 주시다니,
혼자 여행하는 학생 입장에선 너무 감사하였다.
산 타고 올라왔다는 말에 할아버지께서는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올라왔냐고 하시며
싸오신 과일을 더 건네주신다.
양껏 먹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고 난 뒤에 내려올 수 있었다.
나도 가족과 함께 오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며.
등산 후, 잠깐 숙소에 들려 수건을 챙겨 다시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왜냐!
반예비치(Banje beach)에 가기 위해서다.
사실, 아드리아해에 몸을 던지는 것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었다.
타이밍도 등산 후, 적절하다.
날씨? 뜨겁고도 뜨겁다.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였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바다로 갔다.
나는 수영을 정말 좋아한다.
마침 어학연수하는 도시가 바닷가 동네여서 자주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7월 중순에도 차갑고도 차가웠던 바다여서 더 이상 수영이고 뭐고 할 수 없었다.
매일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에 만족하다가 크로아티아 여행을 벼르고 있었다.
모래알은 미세한 입자가 아니어서 단단하지 않고 발이 푹푹 빠져 걷기에 불편했다.
동네 앞에 있던 긴 해변을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작은 해변이었으나
수면 아래 자갈들이 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조금만 들어가도 깊었다.
한풀이한다는 심정으로 원 없이 아드리아해에 몸을 던진다.
햇빛은 따갑지만 몸은 시원한 순간,
바다를 침대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수면 위에 누워
아드리아 해의 낙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오후 4시가 훌쩍 지난 시간,
수영을 마무리하고 계획한 대로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를 했다.
성벽 투어는 말 그대로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인데, 여름 시즌에는 너무 덥기 때문에
오전 이른 시간과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 투어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티켓 값은 100쿠나, 그렇지만 나는 학생 할인으로 30쿠나에 입장할 수 있었다.
성벽을 따라 쭉 걸으면 스르지 산 꼭대기에서 보았던 붉은 지붕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해가 지는 4~5시 이후(하절기)에 가게 된다면 노을과 함께 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성벽 내부를 걷다 보면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삶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빨래를 널고 있는 아주머니, 거리를 뛰어다니며 공을 차는 아이들.
우리가 살아온 삶의 공간은 영겁의 시간이 쌓여 유적이 되어 사람들을 품는다.
우리는 또 그곳에서 살아가고 그 광경을 본다.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았던 유적을 지켜나가는 것은
무조건적인 보호와 안전장치를 통하여 접근을 막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박제된 것이 아닌, 삶의 흔적과 사람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나더라도
과거와 현재에도 손때가 타야 그 유적이 가꿔지고 보호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자 역사가 담긴 곳이니까.
이를 뒤로하고 다시 걷고 걷는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여행에서 사진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언제나 꺼내볼 수 있기에 어딜 가나 기억하고 싶은 장소에 가면 사진을 부탁한다.
그렇지만 사진을 부탁한 분이 잘 못 찍어 주는 경우도, 마음에 드는 경우도 종종 겪는다.
(아마 모두가 같은 경험일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어딜 가나 누구에게 부탁해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진을 마음에 들게 찍어주셨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는 항상 한국인들께 사진을 부탁했다.
성벽 투어를 마치고,
야경으로 물들었던 어제의 모습과 또 다른 두브로브니크를 만났다.
붉은 노을과 빨간 지붕들이 더욱 어우러지는 시간.
역시나 사진은 필수.
마침, 한국분에 앉아계셔서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
인연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누구도 모른다.
한마디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고,
인연의 시간은 쌓여 현재를 만든다.
두브로브니크는 뜨겁지만, 세련되고 푸근한
좋은 기억이 있는 곳
현실의 삶에 지칠 때마다
언제나 들춰볼 수 있는 낙원 같은 곳
사진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