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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돈 코치 May 29. 2020

듣기와 경청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인가?

본하트 사진

듣기와 경청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인가?

듣기는 "난 계속 듣고 있었어!"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뇌로 이동하기까지의 청각 활동이라면 경청은 "네가 힘들었겠구나!"  소리를 통해 수신된 메시지를 해석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듣기(hearing)의 동기는 그냥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생리적 현상이면, 경청(listening)의 동기는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의식적 활동입니다. 듣기(聽聞)은 들려오는 소리를 무심히 흘려보내는 수동적 행위라면,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서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능동적 행동입니다. 듣기는 자기 중심에 들리는 것을 확인하는 기술이라면 경청은 상대방 중심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자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당신은 듣기를 통해 어떻게 상대방의 진심을 경청할 것입니까?

몇년전부터 '굿리스너'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위는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그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 피에르 쌍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귀로 듣기 위해서 기울여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은 쉽다. 코치라는 자격에서 벗어나라. 눈치코치도 없으면서 한번 딴 자격증을 내밀지 마라.  진짜 코치가 되고 싶거든 굿리스너가 되어라. 오늘도 내 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찾아보자꾸나. 

들어주지 말고 귀여겨듣자

'들어준다'는 표현도 잘 되새겨보자. 그냥 '듣는 것'이지 '들어준다는 것'은 인심 쓰는 뉘앙스다. 듣다보면 상대의 마음이 열린다.  우리는 사실 귀동냥으로 여기까지 왔다. 어릴 때부터 잘 귀띔하지 않았다면 한마디 말도 못할 것이다. 말 한마디를 귀담아 들어야 귀뜨게 된다. 그 사람을 따라오는 그림자를 귀넘어 듣자. 사람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귀여겨들으면 귀에 익게 된다. 


귀담아듣다 Vs 귀기울여듣다

'귀담아듣다'는 붙여 쓰고 '귀 기울여 듣다'는 띄여 쓴다.(중간 생략)  쉰을 앞두고 남자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헛된 잣대들 속에 숨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하염없이 귀담아듣고 싶어졌다. 아무런 판단이나 평가도 내리지 않고 하루가 되었든 석 달 열흘이 되었든 십 년이 되었든 하염없이 듣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라고 믿었는데 이젠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먹고사는 일도 핑계가 될 수 없고 신념이니 가치관 같은 것도 피난처가 될 수 없을 만큼 간절한 일. 그건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귀 기울여 듣는 일이었다. 비록 그 이야기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고 맥락에 닿지 않더라도, 유려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끊기더라도, 우물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처럼 우렁우렁하더라도, 그 이야기야말로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오직 자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있는 이야기일 테니 그 이야기를 듣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으리라. 입으로도 하고 눈빛으로도 하고 표정으로도 하고 심지어는 온몸으로도 하는 그 이야기를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듣고 표정으로도 듣고 온몸으로도 듣고 싶었다.  [동사의 맛] p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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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다'는 행위는 귀에 담아서 소중하게 듣는다는 의미이고, '귀 기울여 듣다'는 행위는 상대방 입장으로  기울여서 듣는다는 것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귀에서 나온다. 좋은 것은 뽑내지 않아도 귀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어야겠다.
#책그램 #동사의맛 #귀담아듣다 #귀기울여듣다 #굿리스너  

받는다는 것은 믿음을 전제한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준다. 받는다는 것은 깊은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함께 보낸 시간만큼 주어진다.
#굿리스너  @ 제주 협재 해수욕장

스펙이 아니라 리스펙이 중요하다.
소통의 장애물은 사람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스펙으로 사람을 보지 마라.  인간의 무늬를 리스펙하라. 디스보다 디스턴트하는 것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내 마음을 내줄 때 내 귀가 열린다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내 귀를 다른 사람에게 내줄 때 내 마음의 봄이 온다.  굿리스너는 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 숨소리까지 들어준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통점이 풀어진다.  자신의 실핏줄을 드러내는 것은 그 사람을 깊이 공감하는 행위다.


말을 듣다보면 말달리게 된다

글씨가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글씨는 마음의 지도다.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들은 길을 낸다. 반면 말만 하는 사람들은 분란을 일으킨다. 말을 참고 말을 듣자. 말을 듣다보면 말달리는 때가 온다. 

귀를 기울이면 마음도 기울여진다.
소리는 보이지 않은 부분을 드러낸다. 세상의 소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못들은 것을 알 수 없고 아는 것도 자주 들어야 이해가 된다. 우리는 말을 잘 들은 만큼 자란다.

듣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용기를 내는 것
단지 상대의 말이 아니라 호흡을 들어라. 상대의 위대함을 끌어내는 것은 비우는 여백이 될 때다.
두려움이 없다면 조심하지 않고 용기가 없다면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은 듣는 용기 만큼 질문할 수 있다.

#윤영돈 #굿리스너 #출판예정 #출판사찾음 #연락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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