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하면 발휘 되는 영어 실력

분통이 희열이 될 때까지

by 온택

최근 즐겨 보는 프로그램 중 ‘윤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옥 숙소에서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서비스를 해주는 콘텐츠다. 최근 방영된 회차에선 여행객들끼리 오순도순 휴식 공간에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나왔다. 서로 국적도 다르고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한국이라는, 그리고 동일한 공간 속에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저게 진정한 여행의 묘미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결국 영어를 못하면 불가능한 일’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다닌 해외여행에서 ‘왜 나는 외국인들과 어울린 순간이 없었는 가’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한 예로 친구들과 몇 년 전 도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호스텔과 스탠딩 바를 동시에 운영하는 곳으로, 오전과 낮에는 커피를, 그리고 저녁에는 여행객들을 위해 DJ의 음악과 맥주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쁘게 여행을 마치고 저녁에 친구들과 BAR에 내려갔다. DJ가 위치한 좌석에 일렬로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지 일본인보다 도쿄로 놀러 온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백인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안녕~ 친구들~ 너네들은 어디서 왔니?”


“어 안녕.~. 한국에서 왔어?”


“오~ 대박, 좋은데? 나 한 2년 전인가 한국에 놀러 갔었어,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뭐지? 그 그 푸산? 두산? 부산? 어! 그래 부산도 다녀왔지 뭐야. 해산물 시장도 가고 바다도 보고 정말 좋았어.”


“아 그래?”


“그리고 내 친구들도 서울에 많이 살고 있어. 다들 만족해하더라! 그래서 나는 한국에 또 한 번 가고 싶어! 그리고 나는 이번에 도쿄에 처음 왔는데 도 처음이야?”


"아니, 두 번째야”


“아 그래? 난 이제 첫 번째 날이라 굉장히 가고 싶은 곳이 많고 매우 기대가 되는데 넌 오늘 어디 갔다 왔니?"


“롯폰기 힐즈랑 도쿄타워 다녀왔어”


“어 정말? 나 내일 롯폰기 힐즈 갈 건데 엄청 기대 중인데 어땠어?”


“음... 정말 좋았어”


"..."


그리고 그 친구들을 빠른 인사와 함께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아,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젠장' 하며 자책했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는 또 외국인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어 실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째는 외국인과 대화를 할 시 내가 하는 표현과 문법이 현지인이 들었을 때 어색하고 부족하게 느껴질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반대로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할 때는 오히려 자신감 있게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상대방도 영어권 국가 아니고 나와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하니 앞서 말한 부담감이 없었던 점이다. '그래도 내가 너보단 잘하지' 이런 마음이었으려나?


두 번째는 주변의 다른 한국인들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대학입시, 그리고 취준생 때까지 평생 영어 공부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어 단어와 문법에 기본적인 소양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영어 공부 방식과 과정이 회화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영어로 자연스러운 대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설령 회화로 대화 한들 '잘하지도 못하면서 깝죽거리네', '방금 문법 틀린 것 같은데?' 하며 평가와 지적질하기 바쁘다. 그래서 해외여행 시 주변에 한국인이 있으면 영어 할 때 괜히 의식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태생적인 성격 탓이다. 결국 외국인이란 것도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이기 때문에 평소 모르는 사람과 말을 잘 못 나누는 사람은 영어 환경에서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영어 실력은 크게 뛰어나지 않아도 특유의 친화력과 자신감으로 외국인과 거리낌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다른 친구를 보며 느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하게 되면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조금은 적극적이지 못했던, 그리고 나의 영어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아쉽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뛰어넘기 위해선 성격을 바꾸기는 어려우니까, 영어를 더욱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 영어 공부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숙제와도 같다.


물론 이러한 이유들을 넘어서는 예외도 있다. 지난겨울 발리 갔을 때의 일이다. 발리 콜택시 안에서 아이패드를 두고 내렸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숙소 체크인 이후 다른 여행지로 이동 중에 눈치챘다. 너무 긴급한 나머지 아까 탔던 택시 운전기사에게 다시 연락하여 자리 뒤쪽을 봐주고 아이패드가 있다면 혹시 아까 왔던 호텔로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추가 비용은 꼭 주겠다부터 해서 호텔 로비로 전화해서 한 택시 운전기사가 나의 아이패드를 그곳으로 가져다줄 테니 내 방으로 가져다 달라부터 해서 고맙고 미안하고 잘 부탁한다고 정말 속사포로 영어가 나왔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서 나오는 게 아닌 생각대로 그대로 영어가 나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긴급하면 잠재적인 역량이 다 튀어나온다고, 그동안 공부하고 갈고닦은 영어들이 술술 튀어나왔다. 평소 여행 때 이렇게만 했으면 외국인 친구 몇 명이나 있었겠다. 결국 상황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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