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뛰어넘는 법
초등학생 시절 방학만 되면 우리 3남매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워낙 우리를 끔찍이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아빠가 자식을 이용한 일종의 대리 효도였던 것 같다. 물론 돌이켜 보면 행복하고 좋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어린 나에게 시골 생활은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매우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유선 TV도 없던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가 논, 밭 일을 하러 나가시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낮잠을 자며 빈둥거리거나 마을의 도랑가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노는 것이 다였다. 그나마 할아버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장터에 나가 사람 구경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사 먹고 들어오는 정도가 유일한 낙이었다.
한날은 도랑가에서 실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고학년 누나들을 만나게 되었다. 도시에서 온 처음 보는 동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경계심 비슷한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애들의 동심이 다 그러하듯 이내 다슬기라는 공통분모를 찾고 물장구를 치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마을의 누나들 덕택에 지루 했던 시골 생활에도 활기가 찾아왔다. 산을 타며 곤충을 채집하기도 하고 발이 닫지 못했던 마을의 이곳저곳을 탐방하기도 했다.
누나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시골 마을에 3평 남짓한 구멍가게가 있었다는 점이다. 당장 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아도 간단히 아이스크림 같은 요깃거리를 사 먹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 이후로 누나들과 함께 놀 때면 구멍가게를 가서 군것질을 하곤 했다.
특히 구멍가게가 특별했던 점은 이곳이 어른들 없이 내가 혼자서 갈 수 있는 마을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이었다. 그 누나들을 통해 이미 이 마을의 범위가 확장된 상태라 구멍가게 까지가 딱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구멍가게를 넘어 더 마을의 깊숙이 들어선다면 길을 헤매며 집으로 못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구멍가게 너머의 마을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에겐 미지의 세계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성인으로 성장하며 시골 생활의 추억은 저 기억의 한편으로 남아졌다. 하지만 때때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그 추억을 불현듯 떠오르게 한다.
그런 순간 중 하나가 아빠의 스마트폰 사용을 도와주던 때였다. 아빠가 한창 스마트폰을 입문하여 적응하던 시절, 나는 어린 시절 구멍가게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던 그 호기심과 비슷한 감정을 아빠에게서 발견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그랬듯 스마트폰을 단순히 전화, 문자, 카카오톡 정도로만 사용하시니 스마트폰의 기능을 10%도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답답했다. 그래서 인터넷 서핑, 유튜브, 금융 거래, 쇼핑 등 스마트폰의 활용 방안과 방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 이 나이에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라며 당장은 불편한 점이 없으니 그냥 사용하시겠다고 한다. 대신 딱 한 가지! 현재 아빠의 생활 패턴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지도 활용 방법은 배워 보겠다고 했다.
다음 지도(현 카카오 맵)를 이용해 위성으로 지도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목표로 하는 목적지까지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더 나아가 다음 지도만의 특별한 서비스였던 '로드뷰' 기능을 설명해주었다.
"아빠 이거 봐, 이제 지도에서 궁금한 장소에 로드뷰를 놓으면 주변을 바로 볼 수 있어"
"와 진짜 신기하다. 세상 발전 많이 했구나, 그래도 큰 도시의 길만 나오겠지?"
"아니야, 전국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어. 시골 할아버지 집까지 뷰를 볼 수 있다니깐"
“에이 설마? 그럼 지금 할아버지 집 앞으로 가봐라~”
아빠의 약간의 기대 섞인 물음에 시골 중의 시골인 할아버지 집 대문을 로드뷰로 화답해주었다. 익숙한 할아버지 집을 조그만 핸드폰으로 바라보는 아빠의 입가엔 이내 웃음기가 맴돌았다. 자주 마당에 나와 계시는 할머니가 찍혀 있지 않았을까 하며 지도에서 왔다 갔다 해보셨다.
아빠 덕택에 로드뷰로 할머니 집을 보다 보니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미지의 세계였던 구멍가게 너머를 다음 지도로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당장 위성사진으로도 띄워 볼 수 있었지만, 이게 뭐라고 긴장된 마음 때문에 로드뷰로 할머니 집부터 구멍가게까지 조금씩 이동해서 보기로 했다.
이동 버튼을 서서히 눌러가며 어린 시절 시골 누나들과 뛰어놀았던 추억을 되짚어가며 구멍가게로 출발했다. 다슬기를 잡던 개울가는 물은 말라 잡초로 풍성했고, 구석구석 낡았던 동네 집들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구멍가게의 위치에 다다랐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 멈춰 있던 구멍가게는 누적된 직사광선에 색이 바랜 슈퍼 간판과 지금은 전혀 운영하지 않는 듯 굳게 닫힌 낡은 문이 전부였다. 이제 대망의 구멍가게를 넘어 가보고자 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엄지 손가락으로 이동 버튼을 눌러 어린 시절 상상만 했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응? 뭐지? 이게 다 인가?'
한 100m 정도 갔을까? 몇 번 누르다 보니 생각과 달리 드 넓은 논이 펼쳐 젔다. 알고 보니 구멍가게는 실제 이 시골 마을의 끝 자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마을의 크기는 10%고 구멍가게 너머 나머지 90%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정 반대였다. 미지의 세계는 약 100m 정도의 곡선의 길로 이어진 몇 개의 주택이 끝이었다.
제법 허무했다. 대략 20보만 발을 내디뎠어도 마을의 끝 자락 논이 보였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구멍가게를 더 넘어가 봤다면 이 마을을 정복했다는 자신감과 컸을 텐데 말이다. 영원히 수수께끼였던 세계는 이렇게 허무한 결과로 20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도전과 모험은 두려움을 야기시킨다. 이 두려움은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도 한다. 몇 발자국의 모험이 20년의 세월로 마주하게 되자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가끔 인생을 살면서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정면 돌파 보단 쉽게 포기 하진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말했다.
"아빠! 20년 뒤에 스마트폰 제대로 못 배웠던 거 후회할래?"
나의 어린 시절 사연을 들은 아빠는 자신을 믿고 적극성을 가지고 스마트폰을 연구하여 현재는 환갑이 훌쩍 넘어서도 인터넷 뱅킹, 쇼핑, Ai까지 섭렵하는 스마트폰 고수가 되었다.
내 안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1보’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