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날아가버렸다.
작년 11월 말에 건강이 악화되신 아버지를 뵈러 한국에 들어갔다. 오고 가고 2번의 자가격리가 예약돼 있었지만 코로나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행을 미룰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자가격리는 '자가격리 전문시설'에서 했다. 입국 전 네이버 카페 '피터팬의 방 구하기'에서 서울시에 등록 후 정기적으로 방역 소독을 하는 숙소 두 곳을 찾았다. 홍대 숙소가 집이랑은 훨씬 가까웠지만 명동에 있는 숙소보다 가격이 20만 원 더 비쌌다. 식비를 포함한 총 자가격리 예산을 70만 원 정도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명동에 있는 숙소를 선택했다. 이 숙소는 원래 게스트하우스였으나 코시국에는 자가격리 숙소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후 6시에 인천 공항에 내려서 중구 보건소까지는 방역 버스(공항 리무진)를 탔고, 보건소에서 숙소까지는 지역 방역 도우미 분이 운전하시는 봉고차를 타고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방역 택시(왕복 5만 원)를 타고 보건소에 다녀왔다. 오후에 재난안전대책본부 소속 전담직원분이 숙소로 찾아오셨다. 직원분은 격리 수칙을 다시 한번 안내해주시면서 쇼핑백을 하나 주고 가셨다. 쇼핑백 안에는 주황색 쓰레기봉투 3장과 마스크, 열 체크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서울시 격리 지원물품이 여름에 바닥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라면 하나 받지 못했다. 어차피 숙소에 주방이 없어 매끼를 배달 음식으로 때웠기 때문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숙소는 최악이었다. 미리 내가 묶을 방의 사진을 받아보지 않고 예약한 것이 잘못이었다. 벽지 군데군데에 곰팡이가 들어있었고, 창문이 있었지만 빛이 들지 않는 구조라 낮밤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냥 14일만 참자 했지만 정말 최악의 14일을 보냈다. 혼자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갇혀서 우울감의 끝을 경험했다.
사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락다운을 경험하며 집에 갇힌 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가격리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갇혀 있는 것과 숙소에 갇혀있는 것은 달랐다. 시간을 날려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자가격리가 쉽다고 들었다. 인터넷으로 그동안 애타게 읽고 싶었던 한국 책도 주문했지만, 조금 읽다가 곧 싫증이 났다. 바깥세상은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 멈춰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엄청난 무력감을 가져왔다. 멍하니 티브이를 켜 두고 있으면 종종 자가격리 앱이 진동 알림으로 위치 확인을 요청했다. 장시간 핸드폰의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울리는 듯했다. 한국에 왔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았다. 오후 6시가 넘어 퇴근한 가족, 지인들이 전화를 주면 그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외로움과 지루함에 죽어가던 나날 중 '왕좌의 게임'덕에 반전을 맞이한다. 남자 친구가 강력 추천한 미드가 마침 2주 무료 체험이 가능한 왓챠에 있었다. 모두가 이 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8개의 시즌을 다 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는 게 시간뿐인 상황이 되니 굳이 시작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달력에서 8일이 사라져 졌다. 매일 밤낮으로 왕좌의 게임을 보다가 잠깐식 밥 혹은 수면 브레이크를 가졌다. 꿈에서도 7 왕국과 존 스노우가 나왔다. 첫 시즌까지는 잔인한 장면에 깜짝깜짝 놀랐었는데, 그 후부터는 갑작스러운 인물들의 죽음에 놀랐다. 과연 엄청난 쇼였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예측 불가 스토리가 과연 극찬받을 만했다. 그리고도 남은 며칠은 루미큐브가 없애주었다. 보드판으로만 있는 줄 알았던 루미큐브가 핸드폰 게임으로도 있었다. 앱은 카드 패를 자동적으로 배열해주어서 오히려 게임하기가 쉬웠다. 집이 있는 동생과 방을 만들어 같이 하니 같이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마켓 컬리를 거의 매일 주문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한국 유튜브를 보면서 사람들이 마켓 컬리에서 나는 처음 보는 것들을 주문하는 것이 굉장히 부러웠다. 여러 종류의 방탄 커피 제품이나 무설탕 티라미수 등 먹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처음 가입을 한 몇 주 동안은 조건하에 무료배송 혜택이 꽤 많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 배송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13번의 주문 끝에 격리에서 해방됐다.
두 번째 자가격리는 캐나다로 돌아온 2021년 1월 5일부터 14일이었다. 미리 예약해둔 한인 라이드를 통해 공항에서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까지 차로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찾았다. 비용은 하루에 $45. 시설은 처음 숙소와 비슷했다. 방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화장실이 있었다. 첫 격리와 마찬가지로 2주 내내 인스턴트식품으로 밥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캐리어에 햇반과 컵라면을 잔뜩 챙겨 왔다. 식욕은 없어도 끼니마다 배는 고파와서 하루에 한 끼는 라면, 한 끼는 햇반으로 해결했다. 처음으로 시차를 크게 겪었다. 오후 3시쯤 눈이 떠졌고, 새벽 6시까지 잠이 안 왔다. 낮에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일을 하면 시차 적응이 빠를 텐데 하루 종일 방에 갇혀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몇 시든 잠이 오면 그냥 자버리기도 했다. 마치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갈 것처럼.
그래도 입국 후 처음 며칠은 할 일이 좀 있었다. 행정 처리할 것들이 있어 전화·메일 연락을 하고 밀렸던 유튜브 영상들을 따라잡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쉬고 있었던 영어 공부 채널이나 외국 유투버들의 vlog를 봤다. 그리고 뭔가 유흥을 찾고 싶을 때는 영화를 봤다. 이번에는 넷플릭스로 격리 기간을 아예 다 때우지 않기 위해 여러 시즌이 있는 드라마는 보지 않기로 했다. 옛날에 보았던 추억의 영화 SPY KID 1,2와 댄스 영화 WORK IT, Full out 같은 것들을 보다가 왠지 재미가 없어서 꺼버렸다. 그리고는 잠깐 ‘심슨' 애니메이션에 빠졌었다. 코로나 예언 에피소드부터 트럼프가 나오는 편까지 내리 며칠을 봤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책 중에 정세랑 작가님의 책이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가장 좋았던 것들 중 하나는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님이 나온 팟캐스트를 들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 젊은 작가의 책이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상상만 하다가 실제로 읽으니 새로운 세계였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 없었다. 물론 소설 장르를 읽는 것을 그만두기도 했었지만 보통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워서 내용이 진짜 좋다는 생각이 든 책을 못 만났었다. ‘피프티 피플'을 가장 먼저 읽었고 '시선으로부터'를 읽다가 한국에 왔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정세랑 작가를 이야기하니까 친구가 캐나다에 가져가라고 '덧니가 보고 싶어'를 선물해줬다. 캐리어 한편에 고이 가져왔다.
일주일이 지나자 인스턴트 음식이 미치도록 물리기 시작했다. 원래 쓰던 현지 배달앱들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먹으면서 핸드폰으로는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 사진들을 봤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모두를 막론하고 한국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고, 예쁘고, 가격이 합리적이다. 새로운 곳이 매일 생겨나니 가고 싶은 곳 리스트는 줄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가격리를 제외하고 3주 정도밖에 머물지 못했는 데다가 거리두기 2.5단계였어서 많은 곳을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휴가를 쓸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다시 이곳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격리가 끝나고 들어갈 집을 얻었고, 새 직장 혹은 새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끝낸 것 없이 밍밍하게 또 14일이 지났다.
캐나다 자가격리 앱은 위치추적 기능 없이 하루에 한 번 간단한 증상 체크만 요구한다. 매일 새벽 2시에 팝업으로 알림이 오곤 했는데 1시 50분부터 핸드폰만 보면서 알림을 기다렸다.
두 번째 자가격리가 끝나고 2주가 채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년이 넘는 투병생활 동안 많은 고비를 넘겨오셨기 때문에 이 시기에 돌아가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영사관에 연락해서 자가격리 면제 서류를 준비하고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장례식 참석에 의한 격리 면제의 경우 최대 6-7일 정도 면제가 가능한데 나는 장례식, 삼우제 참석까지 6일 면제를 받았고(그중 첫날은 호텔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갇혀있었기 때문에 면제는 아니었다.) 나머지 기간은 집에서 격리를 하기로 했다. 엄마와 동생도 상을 치르고 집에만 머물렀고 화장실을 따로 썼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세 번째 자가격리는 격리 끝나고 할 것들을 생각하면서 보냈다. 동사무소, 은행, 보험사 등 행정 처리할 것들이 많았다. 또 장례식에 와준 분들에게 감사 문자를 드리고, 도와준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할지 정리해두는 일도 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니 여전히 답답한 기분은 있었지만, 집에서 하는 자가격리는 할만했다. 일단 마음이 편하고, 안전하고, 돈이 들지 않는다. 할 일도 많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서 서재, 옷장, 냉장고를 아우루는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정돈된 보관을 위해 가구도 주문했다.
이번 격리는 거주지가 있는 동작구 보건소 직원분께 관리를 받았고, 자가격리 앱 말고도 전화 증상 체크가 있었다. 동작보건소에서 주는 격리 물품은 중구보건소보다 더 열악했다. 심지어 앱의 GPS 기능이 자꾸 오류가 나서 집에 있는데도 위치를 이탈했다는 팝업이 종종 떠서 불편했다. 앱을 두 번 깔아서 인식 기능이 고장 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격리 13일째에 코로나 검사를 한번 더 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다섯 번째 코로나 검사이고 앞으로 3번이 더 남아있다.
상을 치렀으니 슬슬 캐나다에 돌아가야 하는데, 가면 또 자가격리를 해야 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한 번도 어려운 자가격리를 네 번이나 하게 될 줄이야... 49제를 마치고 4월 초에 다시 출국날을 잡았다. 올해 2월부터 캐나다는 '호텔 3일 강제 격리'가 시행돼서 입국자들은 무조건 공항 근처의 정부 지정 호텔에서 3박 4일 격리를 해야 하고, 호텔 비용은 고정으로 캐나다 달러 $2000이다. 시행 초기에는 전화로만 호텔 예약을 받아서 한국에서 예약하는 분들이 전화비용만 30만 원 이상 날리기도 하고 여러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자 웹사이트 호텔 예약이 가능해져서 나는 손쉽게 호텔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사실 호텔 격리가 곧 끝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기도 했었는데, 캐나다의 확진자수는 계속 증가 추세여서 기약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작년 11월부터 4개월째 일을 쉬고 있으면서 한국 캐나다 왕복 비행기를 2번 끊고(총 300만 원), 자가격리 숙소를 2번 거치면서(식비 포함 약 170만 원) 상당한 지출을 했다. 그런데 호텔 격리에 또 185만 원을 내야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출국용 코로나 검사비용 15만 원 등 이것 저것 나가는 비용이 너무 많아 소비 관념이 흐려질 지경이었다.
호텔 격리는 또다시 힘든 나날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에 식사가 룸으로 배달됐지만 끼니 중간 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간식 챙겨간 것들을 먹었다. 이번 격리에는 도움이 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첫 번째는 오호라(Ohora). 오호라 네일 키트를 선물 받아서 셀프 젤 네일 세계에 처음 입문했다. 혼자 큐티클 정리를 먼저 하고, 유튜브 안내 영상을 보면서 손톱 발톱에 스티커를 붙였다. 집중하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두 번째는 아이패드. 드디어 전자책을 받아들였다. 밀리의 서재 한 달 무료 이용을 결제하고 Yes24 ebook에서 보고 싶었던 책들도 마음껏 샀다. 사실 그동안 한국 책이나 예능 보는 것을 자제해왔다. 그 시간에 영어공부를 더 해야지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더 편하게 살기로 했다. 영어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한국 책 한 권을 읽는 것만큼의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화면이 큰 아이패드는 이북리더기보다 훨씬 편하고 집중이 잘 됐다. 글씨 크기나 화면 여백에 있어서도 제약이 거의 없었고 컬러로 표지와 삽화를 보는 게 좋았다. 더 이상 한국 갈 때까지 신간 보는 일을 미루지 않게 되었다. 세 번째는 알리 익스프레스. 알리를 꼼꼼히 탐방하다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제품군이 정말 다양하고 무료 배송에 제품 가격이 너무 싸다. 호텔에 있는 3일 동안 옷장에 거는 벨트 걸이, 6개의 포켓이 있는 가방걸이, 5개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바지걸이, 책상용 팔꿈치 보호대, 머리빗 청소용 갈고리, 눈썹 정리용 가위, 귀걸이, 레이저 제모기, 스마트 워치, 머그컵 워머, 나무 식기 등을 샀다. 사실 인터넷 쇼핑만큼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이 없다. IKEA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집 인테리어 할 것들도 살펴보고, 옷 쇼핑몰도 몇 개 둘러보았다. 막상 브런치 글은 쓰고 싶지가 않았다. 원래 자가격리 기간에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서 알고 있었다.
호텔 격리 해제 이후 나머지 격리는 캐나다 집에서 했다. 더 이상 숙소에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무리였다. 룸메이트와 합의하에 11일 동안 함께 집에 갇히기로 했다. 호텔 격리가 끝나는 날 룸메이트가 차로 픽업을 왔고, 미리 장을 봐 두었다. 짐을 풀고, 요리와 베이킹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격리 10일째에 의료진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셀프 키트로 8번째 코로나 검사를 했다. 거울을 보며 키트에 있는 면봉으로 코를 후빈 후 보관용기에 넣어서 집 문 앞에 두면 배달업체에서 정해진 시간에 수거해서 병원으로 가져가 주는 방법이었다. 결과가 조금 늦게 나오는 편이었는데, 나올 때까지 격리 해제를 할 수 없어서 격리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다시 넷플릭스의 품으로 안겼다. 오래된 작품들을 봤다. 마녀 배달부 키키, 벼랑 위의 포뇨, 비밀의 숲(시즌1·2), 쥬만지 2, Dirty dancing, The Karate kid(part 1,2,3), Love is blind, The Umbrella Academy(시즌1·2), Cobra Kai, My holo love, 좋알람(시즌 1), Unorthodox, 드라마 월드, Penelope 등등.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격리 해제 날, 비타민D를 피부로 흡수하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