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지나 Aug 25. 2020

워킹데드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을 때 나는 나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이미 쌓아둔 식량은 동이 나기 시작했고, 전기가 언제 끊겼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에겐 지켜야 할 어린아이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키운 개가 한 마리 있다. 일단 미리 담아둔 물은 아이와 개에게 주고 나니 그는 몹시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지 못한 지가 이틀쯤 되었을까. 남은 물은 망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가져다주었다.

“당신이 마셔”
“괜찮아, 일단 나는 소변을 받아두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쇠창살을 수차례 박아둔 창문 틈으로는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주파수의 괴기한 소리를 내는 좀비 몇이 피와 살에 굶주려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빼면 무서우리만치 적막이 흘렀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마을 어딘가에 우리 같은 생존자가 더 있을까. 백신을 연구한다, 몇 가지 실험에서 희망이 보인다는 뉴스까진 들었던 것 같은데 정말 완성되긴 하는 걸까. 그게 몇 개월 뒤면? 수년 후면? 점점 희망의 사라져 간다.

“쾅”
“쾅”
“쾅쾅쾅 쾅쾅”

부엌 쪽에서 무엇인가 세개 부딪히는 소리에 놀라 아이와 개를 미리 통조림과 물을 채워 만들어놓은 방으로 들여보내고 자물쇠를 수십 개 걸어둔 문을 잠근다.

“여보 이게 무슨 소리지?”
“나오지 말고 소파 뒤로 가”

부엌 쪽 천장 가까이 붙은 창 밑 흙을 파서 쇠파이프로 가려지지 않은 창으로 수많은 좀비들이 모여 창을 주먹으로 쉴 새 없이 치고 있었다. 서둘러 쇠파이프와 드릴을 챙겨 창에 박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무섭게 흐르고 창문 너머로 마주친 좀비들은 눈은 피와 살을 열망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였다. 그리고 이내 동작을 멈췄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눈을 마주한 그 좀비는 늘 아이에게 선물을 챙겨다 주던 옆집에 살던 친구가 분명했다. 사슴 눈처럼 큰 눈을 가지고 있어 매번 화내 봤자 무섭지도 않다고 놀리곤 했던 그 친구는 더 이상 알아볼 수 조차도 없었다.

“쨍그랑”

한참을 바라보는 동안 창이 깨지고 그 틈으로 좀비들은 손이 찢기고 갈라지는 것도 모른 채 손을 밀어 넣었다. 있는 힘껏 쇠파이프에 못을 박으며 좀비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수없이 더 박고 또 박았다.

“여보 그만해. 이만하면 됐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등이 살짝 쓰렸다. 못에 쓸렸나? 상처를 바라보니 이빨 자국 모양의 상처가 보였다. 아. 이런.


워킹데드 참 좋아했던 미드.



“여보 괜찮아?”
“응 조금 쓸렸어 괜찮아.”

몸에서 열이 나는 게 느껴지고 입이 마른다. 이렇게 빨리 시작되는 건가? 몇 시간은 그래도 주어지는 거 아니었어? 내 마음을 정리하고 가족과 이별할 시간은 주어지는 거 아니었냐고?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을 서둘러해 놔야겠어. 뒷마당에 만들어 넣은 작은 문을 따고 주의를 살핀 후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쥐덫을 연다. 다행이야 오늘은 여덟 마리나 있어. 운이 좋았네. 서둘어 불을 지핀다. 잘 구워놓으면 1주일은 먹고 견딜 수 있겠지. 남은 통조림은 아이에게 주고 아내에겐 구운 고기를 줘야겠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바삐 움직이는 동안 상처가 난 쥐에게서 흘러나오는 피가 눈에 띄었다. 냄새가 역하지 않다. 전혀 역하지 않아.

“여보 여보! 지금 뭐 하는 거야?! 여보?”

아내가 심하게 몸을 흔들자 정신을 차린 그의 입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쥐의 피와 살이 흘러내렸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아이처럼 펑펑 울기 시작했다. 당신과 아이를 사랑해. 내 영혼보다 사랑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할 수 없어. 당신을 죽이는 것은 결국 나일 거야. 그 피와 살을 내가 갈아 넣게 될 거야. 더 이상 나는 당신이 사랑했던 내가 아니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변하는 걸 두고 보지 말아줘. 나에게 그런 벌은 주지 마. 제발 당신이 나를 끝내줘.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히 움직이는데 쏴야하는 마음은 어떨까.




그는 아내에게 총을 건넨다.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건네받아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서서히 그를 겨누었다. 당신이 없다면 난 더 이상 내가 아닐 거야. 사랑해. 고마워. 안녕.

“탕”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전기가 끊기고 세상과 소통이 끊어진 그 세월 동안 연구는 성공했고 백신이 개발되어 군인과 경찰들은 이동하며 좀비들을 치료해갔다. 삼 일 후 경찰은 집의 창살들을 뚫고 집 내부로 들어가자 개 짖는 소리가 나는 방으로 향했다. 수없이 채워진 자물쇠를 자르고 들어가니 겁에 질린 아이와 개 한 마리가 초췌해진 모습으로 떨고 있었고 그 앞엔 통조림들과 비어있는 물통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여기 좀 봐요!”

다른 경찰이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보니 이성을 잃은 좀비를 제압하고 백신을 놓고 있었다. 옆엔 신원과 형태를 알 수 없는 시체 하나가 썩는 냄새를 풍기고 있다.

머리엔 총상이 남아있고 긴 머리카락만이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었다.






p.s 내가 좀비가 되었을 땐 그래도 날 포기하지 않고 가둬서 백신이 생길 때까지 육사시미와 쿨피스와 넷플릭스를 넣어주면 좋겠다. 이왕이면 고화질로 가입하는 그런 사랑이길.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을 쏘게하느니 차라리 내가 나를 쏠거다라는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나를 쏘게 하는 무거움 짐을 왜줘. 그전에 내가 나를 놓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한 일상, 하지만 낭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