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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01. 2020

치킨은 추억을 타고

복날 수다

* 지난 여름 중복날 이야기입니다.

중복이다. 다행히 장마중이라 그리 덥진 않다.
초복 날은 좀 더웠다. 땀 뻘뻘 흘리며 백숙을 끓여바쳤더니 남편 왈,

"날도 더운데 치킨이나 먹지, 뭐 이런 걸 만들어~"

나야 치킨 시켜먹으면 편하고 좋지 뭐.
하고 이번엔 동네 치킨을 사다 점심으로 먹게 됐다. 작년 이맘때 개업한 동네 치킨집 '가마치 통닭'이 마침 1주년 기념이라 2마리 이상 시키면 선착순 200명까지 30개들이 달걀 한 판을 쏜다니 치킨 먹고 달걀까지 한 판 생기는 기회를 딱 잡았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치킨을 먹으며 어째 이 집 치킨은 점점 크기가 줄어드는 것 같다, 작년에 개업할 땐 훨씬 컸는데 어쩌구 하다가 오래전 남편이 성남 살던 어린 시절의 통닭집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만 해도 3키로는 평균이고, 좀 작다 싶으면 2.5키로였재. 닭장에 있는 닭 중에서 골라잡으라고 해서 잡은께, 게중에 커보인다 싶은 걸로 고르면 3.2에서 3.5키로는 나갔단다."

"우와~~! 진짜요? 지금은 1.5키로만 넘어도 큰 편에 속하는데~ 한 마리 튀겨놓으면 요즘 닭 두세 마리 튀겨놓은 것만 하겠네요."

"그라재~ 한 마리 튀겨놓으면 엄청 많았재. 배 뚜 디리며 실컷 먹었는디, 서울로 이사와서 '페리카나'가 있길래 거기 가서 한 마리 시킨께 하나로는 부족해서 두 마리는 시켜야 먹었다 싶게 먹겄드라."

옆에서 듣던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닭장에 있는 닭 고르면 주인아저씨가 닭 모가지를 딱 잡고 기절시켜서 닭 털 뽑는 통에 넣었잖아요. 구멍 숭숭 뚫린 동그란 통이 도로롱 돌아가면서 닭 털이 다 뽑혀져 나가면 꺼내서 닭 모가지를 탁 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원스톱으로 탁탁탁~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지. 해남통닭이 맛있는 게 딱 옛날 그 방식으로 만들잖아요."

"너두 그게 생각이 나냐? 그 닭집 딸이 향남이었어야. 너랑 또래였는디~"

"그랬어요? 기억 안 나는데..."

"그때만 해도 주변에 그만그만한 또래들이 많이 살았재. 칠공주네 아랫집이 용창이네고, 위에 명진이 살고, 100호집 미애네 언니가 둘이어서 어디서 전화 올 일 있으믄 우리집에 와서 전화 받고 그랬지야. 그때만 해도 동네에 우리집밖에 전화가 없었응께. 명진이 윗집이 성룡이네였지? 바위 있는 집?"

"성룡이는 맨날 놀던 친한 친구라서 잘 아는데 그 집 좁아서 바위 없었어요. 바위 있는 집은 명진이네였을 걸요? 성룡이는 거기 살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갔어요."

"그랬냐? 앞집 성진이도 니 또래였지? 그 옆에  홍씨 아저씨네가 딸이 셋이었는디 너랑 동갑은 없었을 거다. 홍씨 아저씨는 왜소한 몸집에 폐가 안 좋은 환자여서 보건소에 가서 약타먹으며 살았재. 아줌마는 몸집이 좋았는디."

"아, 그 집이요?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나 벽지를 신문지로 도배하고 살던 게 생각나요. "

"아저씨가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항께 사는 게 변변찮았재. 큰 애가 영님이 둘째가 영아 셋째가 경아던가? 두 살 새 연년생으로 주욱 낳았는디, 막내 낳을 때 그 집에 가본께는 쌀 한 줌만 덩그러니 있더라. 그래서 쌀 씻어서 앉혀놓고 우리집 미역 가져다 미역국 끓여서 해산바라지도 해주고, 오며가며 이웃에 사는 정으로 잘 살았는디, 얼마나 있다가 아줌마가 서울에 일하러 다니다 바람 나서 집을 나가부렀지 뭐냐. 아저씨가 몸은 아파도 참 좋은 분이었는디...

처음엔 서울서 집에 올 때 검소하게 입고 오더니 옷이 점점 화려해지더라. 그라든만 마지막에는 베이지색 쓰리피스 좋은 옷을 입고 왔더라. 그날 밤에 홍씨 아저씨가 그 옷을 들고 나한테 찾아와선 이 옷 좀 암도 모르게 꼼차주쇼~ 아무래도 이 옷 입고 어디로 가불랑가 걱정이 되구만이라~ 그라드라. 그 옷 감추면 안 나갈까 싶어서 나한테 부탁해 옷을 숨겼는디, 사람 맘이 빈하믄 소용이 없어야.

그 다음날 영님이 엄마가 빤쓰가 다 보이게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님서 동네가 떠나가게 옷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께 결국엔 보다보다 못하고 옷을 찾아다 줬는디, 결국엔 그 옷 입고 그 길로 도망가부렀재.

그 뒤로 홍씨 아저씨네 위에 딸 둘은 나이가 좀 있은께 어디로 일하러 보내고, 막내만 데리고 점빵하며 근근이 살았어야. 뽀빠이 십 원씩 할 때라 우리 애들보고 거기 가서 과자 사묵어라~ 하고 시키고는 했는디, 나중에 일 보낸 딸들 만나서 잘 살게 되얐는지 어쨌는지...

영님이 엄마는 바람나서 도망가 살 거믄 돈이나 많은 남자 만나서 딸들 용돈이라도 몰래몰래 뒤로 찔러주면 좋았을 것을 뭔 돈도 못버는 간장 장사랑 바람이 났더란다. 미친 년이재."

"간장 장사가 있었어요? 옛날엔 집에서 다 장 담가먹고 살았던 거 아녜요?"

"아, 그것은 조선간장이고, 왜간장은 사묵었재. 70년대 초만 해도 커다란 플라스틱 한 말짜리 들통에 왜간장 담아서 '간장 사시오~ 간장 왔어요~'하면서 집집마다 다니는 간장 장사가 있었단다. 점방에서 사는 것보다는 싼께 그런 간장 장사한테 장을 사먹었재. 집에서 쓰는 간장병을 들고 나가면 등에 짊어진 간장통에서 길게 나온 호스를 병에 넣고 쪼로록 따라주고 얼마씩 받고 그랬어야. 그런 떠돌이 장사치가 돈이 있으믄 얼마나 있겄냐.

홍씨 아저씨는 나보다 몇 살 많고, 영님이 엄마는 나보다 몇 살 아래였는디 아저씨는 아무래도 진즉 돌아가셨지 싶다. 아줌마는 살아있을랑가..."

중복날 치킨을 먹으며, 닭집에서 시작한 추억이야기가 바람나서 집 나간 이웃아줌마랑 간장 장사까지 가지를 치고 나갔다. 어린 시절 한 동네서 자라던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다 잘 자라서 오늘 같은 날 닭 한 마리 뜯으며 우리처럼 옛날 이야기 하려나? 무엇보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홍씨 아저씨네 세 딸들은 그 뒤로 다시 뭉쳐서 살게 되었으려나...
부디 그랬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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