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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17. 2022

고구마쥐라고 알랑가 몰라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먹는

어머님과의 점심상에는 고구마가 자주 올라온다.

어머님께서 워낙 고구마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나 죽고 나믄 제삿상에 딴 거 올릴 필요 없고,

고구마전만 약씸 부쳐서 올려라 잉?"


이러실 정도로 고구마 귀신이시다.

가을이 되면

내가 짓고 있는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오기도 전에

어머님께서 지인에게 사오신

고구마박스들이 베란다를 차지한다.

한 번 사시면 보통 20kg 정도가 기본이다.


내가 손이 느려서

낸고구마를 10월말이나 11월이 되어서야 캐기도 하거니와, 텃밭 크기가 작고(서너평에서 많아야 열 평), 농사 잘 짓는 것엔 그닥 소질이 없다보니 고구마 수확량이 많지 않다. 그러니 전문농업인인 지인이 고구마를 캐자마자 넉넉히 사두시는 것이다.  


작년엔 의외로 고구마 수확이 잘 된데다,

영암 사시는 시이모님이 고구마 좋아하는 언니 생각나서 보낸다며 20kg 가량 되는 고구마를 올 1월 초에 보내주신 덕분에 집에 고구마가 넘쳐나게 되었다.

그래서 겨울 들어선 끄떡하면 고구마를 쪄서

식탁 위에 두고 호호 불어가며 먹다보니

자연스레 고구마 농사 짓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자란 사람이라

고구마 심고 캐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가을 되믄 우리는 밭고랑 사이에서 졸래졸래 고구마 캐고, 아부지는 부지런히 마당에다 갖다 널고 그랬재. 가을에 그라고 캐서는 마당에 하루 정도 말린 다음, 내가 자는 옆엣방에다가 두대통을 만들어서 보관했니라. 방 가운데를 대나무로 막고, 짚을 절어서 엮어가지고 고구마 안 빠져나오게 둘러쳤재."


"어머님은 대나무로 막으셨어요? 저희집은 소나무 같은 거 네모나게 잘라서 썼던 거 같아요."


"우리집은 대나무가 천지삐까리라서 대나무 가운데 못 팔아묵는 자잘한 대들을 잘라다가 썼재. 예전에는 집 뒤안이 커다란 대나무숲이었어야. 그란디 한 번은 대나무에 꽃이 피고 나더니 병이 와서 죽어부러가꼬 밭이 많이 줄었재.


옛날엔 대가 큰 돈이었어. 한 아름 정도 묶어서 팔면 쌀 몇 가마니가 나왔응께. 죽물(대나무로 만드는 물건) 좋은 데 절으는 대로 가져가느라고 사람들이 많이들 사러왔재. 몇 년에 한 번씩 김발 할 대를 사갈 때는 양이 많은께 차로 실어간디 대밭에 있는 대를 거의 다 비어갈 정도였재."


"우와~ 저는 어릴 적에 대나무를 거의 못 봤어요. 지금은 집앞에 작은 대나무숲이 있지만 예전엔 빈땅이었거든요.

제가 중학생 무렵이었나... 할머니께서 어디서 얻어오신 대나무 세 그루를 집앞에 심고 아침마다 요강에 모인 오줌을 거기에다 갖다 비우라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매일 오줌 먹여서 키우고 번친 게 지금 집앞 대나무숲이에요. 그게 우리 식구들 오줌먹고 큰 대나무들인데, 제법 넓게 자리를 잡았더라구요."


"대나무숲에서 바람이 불면 쏴아~~ 쐐쐐색 하는 소리가 들리는디 어짤 때는 무섭기도 해야. 그래서 한낮에도 대나무숲에는 잘 안 들어갔재. 오줌 급하믄 싸러 갈 때는 있어도~ ㅎㅎ


아무튼지 가을에 그렇게 방에다 두대통 만들어놓고 겨울 내내 꺼내묵다 보믄 설 지나고 정월 보름 지나서는 고구마가 훅 줄지야. 그람 두대통 한쪽에 씨로 쓸만한 둥글둥글 큰 고구마를 골라서 모아둬. 봄 되믄 씨고구마로 쓸라고. 인자 날이 풀리믄 이 씨고구마들을 마당 한켠 텃밭자리에 작게 밭을 만들어서 심어놓재. "


"저희는 바로 집 뒷밭 감나무 아래에다 심어놓고 싹을 틔웠는데, 어머님은 마당에서 하셨네요~"


"밭이 먼께 그랬나 어쨌나 마당에다 그렇게 심어두고 싹을 틔우는디, 쥐가 먹을깝시 고구마 심은 땅 위에다 뚝배기며 오가리를 요라고(두 손으로 오목한 모양을 만들어보이시면서) 덮어두걸랑? 그란디도 쥐가 그 옆으로 살살살 파고 들어가서 쏠쏠 파먹지 뭐냐?"


"쥐가 땅 파고 고구마를 쏠아먹어요?"


"고눔의 쥐가 겨울에 먹을 게 없응게 거기서 고구마 냄시를 맡고설라무네 귀신같이 알고 파고 들어간 거재. 하여간에 머리도 좋아야. 무거운 뚝배기 옆으로 파고들어가서 갉아먹을 생각을 하고 말이여. 그랑께 고것을 우리가 고구마쥐라고 불렀재!"

"에? 고구마쥐요? 재미난 이름이네요.^^"


"언땅에 뭐 먹을 것도 없고 한디, 땅에서 고구마냄시가 올라온께 죽을둥 살둥 파고 들었겄재. 그람 우리는 또 오가리를 더 깊이 묻어서 쥐가 고구마 못 파묵게 해놓고. 생각해보믄 지도 살것다고 그란 것인디...

  

몇 년 전에 텔레비에서 고구마가 몸에 좋다고 한께 그때부터 슬슬 가격이 오르다가 지금은 무쟈게 비싸졌다만 옛날엔 고구마가 쌌어야. 그랑께 한겨울 내내 고구마만 한솥씩 쪄서 끼니로 먹고, 긴 밤에  출출하믄 두대통에서 꺼내가꼬 생으로 사악싹 깎아묵고 그랬재."


"맞아요~ 저도 어릴 적에 겨울 내내 고구마 진짜 많이 먹었어요. 푼하게 막 먹는 것이 고구마였는데 지금은 너무 비싸요. 아담한 크기 서너 개에 삼~사천원씩 하잖아요. "


"뭐든 몸에 좋다고 하믄 가격이 다 오르는 세상 아니냐? 알고 보믄 옛날 사람들이 다 몸에 좋은 거만 묵고 살았어야. 그랑께 그란지 요새 젊은이들보다 늙은이가 더 힘이 쎄당께~ 노인네는 무거운 보따리도 머리에 이고, 허리에 지고, 두 손에 하나씩 양짝에 들고가도 젊은이들은 쪼맨한 박스 하나도 낑낑대면서 들고가는 거 봐라. 안 그라냐?"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과 다이어트 식단으로 인기있어지며 더욱 몸값이 오른 고구마를 앞에 두고 고부간의 대화는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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