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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01. 2023

망개떡과 삐비

추억의 간식

정월대보름에 쥐불놀이하며 논둑 밭둑을 까맣게 태우고 나면 그 자리에서 삐죽삐죽 솟아나기 시작하는 풀들이 있으니 바로 '삐비'다. 지역에 따라 '삘기'라고도 부르는데, 전라도는 '삐비'라고 부른다.


뜬금없이 삐비 이야기가 나온 건 망개떡 덕분이다. KBS1에서 평일 저녁 6시에 시작하는 <6시 내고향>에 경남 의령의 '딸기망개떡'이 나왔다. 망개떡은 맵쌀가루를 쪄서 치대어 거피 팥소를 넣고 반달이나 사각모양으로 빚어 두 장의 청미래덩굴잎 사이에 넣어 찐 경남지방의 떡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부르는데, 그로 인해 ‘망개떡’이라 불리게 되었다.



청미래덩굴 잎의 향이 떡에 배어들면서 상큼한 맛이 나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의령에선 이 망개떡 안에 제철과일인 딸기까지 넣어서 새콤달콤한 맛을 더한 '딸기망개떡'을 지역특산물로 내놓았다.


티비를 보시던 어머님께서

"망개가 뭐라냐?" 하시길래


"전라도에서 맹감이라고 부르는 거요, 경상도에선 망개라고 부른대요. 원래 이름은 청미래덩굴이고요."


"잉~ 맹감나무잎이 반질반질하고 두꺼운께 떡이 잘 달라붙지않아서 그 잎에다 싸먹었능가보다."


고부간의 이야기를 저녁 식탁에 앉아 듣던 남편은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라 맹감나무이든 망개나무이든  알 턱이 있나.


"맹감? 망개? 그거 맛있어?"


"맛은... 새콤하달까... 그냥 신맛만 나고 별 거 없어. 어릴 때 가을 되면 산에서 빨갛게 익은 맹감 열매를 따먹곤 했는데, 완전히 익으면 아무 맛도 안 나."


"그걸 뭐하러 먹어?"


"특별한 간식이 없으니까 그거라도 먹는 거지. 봄에는 삐비 따서 먹고."


이렇게 하여 삐비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띠의 새로 돋아나는 순을 지역에 따라 ‘삐비’ 또는 '삘기'라고 부른다. 봄에 무릎만큼 자라난 삐비를 뽑아서 껍질을 벗기고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 씹히며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에 껌 대용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추억의 간식이다.


역시 도시촌놈인 남편은 삐비도 금시초문이라 바로 질문 들어온다.


"삐비는 뭔데?"


"논둑이나 밭둑에 나는 풀인데, 봄 되면 그거 쭉쭉 뽑아다가 속에 있는 솜처럼 생긴 알멩이를 먹어. 촉촉하면서도 달지않은 솜사탕같은 맛이야."


듣고 계시던 어머님께서 한말씀 보태신다.


"우리 어릴 때는 삐비를 뽑아다 먹고, 남으면 며칠씩 집에 뒀다가도 먹는디 한 사흘은 가더라."


"에? 삐비를 얼마나 많이 뽑으면 사흘씩 집에 뒀다 먹어요?"


어머님은 두 손을 동그랗게 해서 제법 묵직해 보이는 양을 가늠하며

"한 이 정도는 뽑지야. 땅 좋은 데서 나온 삐비는 통통하고, 땅 안 좋은 데서 나온 삐비는 먹잘 것도 없고 그라재."


"와~~ 그렇게나 많이 뽑으셨어요? 저는 뽑아서 그자리에서 먹을 만큼이나 겨우 뽑았는데."


"삐비가 잘 나는 자리가 있어야. 거기 봐뒀다가 뽑으믄 금방 이따만큼씩 뽑재~ 불 탄 자리 땅이 좋아서 거기로 가면 삐비가 많아야."


"아하~ 생각해보니 불놀이하면서 태운 자리에 삐비가 많이 나긴 했네요. 그래서 정월대보름에 쥐불놀이하며 논둑 태우고 밭둑 태운 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불놀이도 하고, 벌레도 잡고, 삐비도 얻으니 일석삼조~^^"


올해는 정월대보름이 2월 5일이었으니, 지금쯤 삐비들이 땅 위로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으리라. 그 삐비들은 그대로 자라서 서로서로 키재기를 할 테지만 따먹을 아이들이 없으니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껍질이 패이고 하얀 머리들을 흩날리겠지. "나 여기 있소!"하고 바람결에 넘실넘실 몸부림을 쳐도 삐비인 줄 모르는 사람눈엔 봄에 때아닌 억새꽃이 핀 양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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