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Jan 26. 2022

돌담장에 어린 노을빛도 아름다운

경주 양동마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 경주 양동마을이다.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된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대학시절 모꼬지를 가면서 처음 가본 뒤 두어 차례 더 가볼 기회가 있었지만 양동마을은 이상하게 비껴만 가다가 2021년 11월 26일에 드디어 다녀왔다.

것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9개 서원 가운데 유일하게 안 가본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가 10km 이내에 양동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후 늦게야 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갔지만 가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안강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포항 쪽으로 가는 도로에서 약 2킬로 정도 들어간 곳에 있으며, 마을 앞에는 형산강의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넓다란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은 월성 손씨(月城 孫氏)와 여강 이씨(驪江 李氏) 두 가문이 약 500여 년간 대를 이어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이다.


양동마을 관람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에 있는 유물전시관을 둘러본 뒤(여기는 무료), 전시관 뒤에 마련된 매표소에서 입장료(어른 4천원, 청소년 및 군인 2천원, 어린이 1500원)를 지불하면 들어가볼 수 있다. 매표와 관람시간은 4월~9월에는 9시~18시(관람시간 9시~19시) / 10월~3월은 9시~17시(관람시간 9시~18시)이다.


마을을 돌아보는 데 최소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여유를 갖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갔던 11월 말은 해가 짧아서 오후 2시쯤 도착해 유물전시관부터 둘러보고 매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떼운 뒤 3시 좀 넘어서 마을에 들어서니, 다 둘러보기도 전에 해가 지기 시작해 5시가 넘으니 어두워져버렸다. 그래서 아쉽게도 마을을 모두 돌아보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그나마 6시 이후론 차량통제를 하지 않아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양동마을 지도에서 찜해두고 꼭 가고 싶었으나 못갔던 곳을 찾아 휘리릭 다녀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민가인 초가집도 그대로 보존된 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은 있지만, 전봇대는 모두 지중화해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깃줄이 마을의 미관을 해치지 않아 사극 찍기 딱 좋은 곳인데, 예능프로인 '런닝맨' 말고는 여기에서 다른 촬영의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사람들이 여전히 살림하며 사는 마을이라 드라마나 영화를 찍기는 힘들었나 보다.


1459년 세워져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인 경주 손씨 종가 송첨종택(=서백당. 국가민속문화재 제23호), 이언적 선생 종가의 제청인 무첨당(보물 제411호), 한국의 10대 한옥에 든다는 손중돈의 옛집 관가정(보물 제442호),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99칸이었다가 지금은 56칸만 남은 기와집 향단(보물 제412호), 여강 이씨 문중의 사당인 강학당(국가민속문화재 제83호) 등의 기와집들이 높은 산등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경상도 지방에서 흔히 나타나는 ‘ㅁ’자형이거나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간혹 대문 앞에 ‘一’자형 행랑채를 둔 예도 있다. 또한, 혼합배치 양식으로 ‘ㄱ’자형이나 ‘一’자형도 있지만, 대체로 집의 배치나 구성은 영남지방 가옥의 일반적인 특색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 산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저택들, 양반 계층을 대표하는 많은 자료들을 보유하고 유교사상 및 생활관습들이 보존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아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 189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양동마을 주요 건축물들이 대부분 언덕 위 높은 곳에 있다보니, 오르락 내리락 걸어다니느라 시간이 흐를수록 도가니가 아파왔다. 보통의 양반집들은 모두 평지에 있던데, 조선시대에 어떻게 이런 산등성이 높은 곳에 커다란 집을 지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500년 가까이 살고 있는지 참 신기하게 여겨졌다.


안골의 송첨종택, 낙선당고택, 사호당고택, 근암고택, 수졸당고택은 특히나 높은 언덕받이 위에 위치한 집들이라 그곳에서 일하던 노비들은 고생꽤나 했겠단 생각이 엄청 들었다. 잘 닦여진 길을 맨몸으로 올라다니기도 힘든 이 오르막길을 물지게 지고, 무거운 짐 들고, 농사에 쓰는 도구들 챙겨서 오르내려야 했을 것이니 말이다.   


마을 초입의 유물전시관 뒤로는 1909년 사립양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13년에 양동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양동초등학교가 있다. 설립당시로부터 무려 112년의 역사를 이어온 학교이다. 경주교육청 지정 민속실 운영 시범학교로 지정되었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해 한자와 사자소학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데 여느 학교건물과 달리 한옥을 본떠 만든 기와지붕으로 된 교사가 인상적이다. 메타세콰이어가 학교 담장을 따라 큰 키를 우쭐대고, 교목인 플라타너스는 운동장 곳곳에서 연식을 자랑하는데 모래흙으로 된 운동장 주변에는 우레탄 트랙이 빙 둘러져있고, 오징어게임 사방치기 8자미로 등이 그려져있어 어릴 적 동심을 자극한다.   


나름 아픈 사연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 마을의 지형이 ‘물(勿)’자 모양의 길지여서 마을 정면에 학교를 세워 ‘혈(血)’자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철길을 마을 앞으로 지나가도록 가설해 풍수지리에 입각한 우리의 전통 사상과 강산의 기를 흐리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후손들에 의해 마을 건물들의 방향도 남향에서 동향으로 옮겨지는 등 전통적인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2006년 12월에는 전통마을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는 여론에 따라 1960년대 말부터 마을 앞 중앙에 있던 교회가 마을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고, 교회건물은 2007년 1월에 완전 철거되었다. 이무렵  중요민속자료 제189호인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온 전선의 지중화사업도 착착 진행돼 2007년 상반기까지 전봇대와 전선도 사라졌다.


이토록 전통의 모습을 잘 보존한 500년 역사를 지닌 경주 양동마을을 둘러보고 난 뒤 든 생각은 좋긴 좋은데 솔직히 왜 입장료를 받아야 했나? 였다.


마을 자체는 전통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곳이고, 깨끗하게 잘 관리된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마을 초입의 유물전시관에서 마을에 대한 소개와 둘러볼만한 전통가옥들을 모형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놓은 점도 칭찬할 만하다. 전통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그걸 쭉 유지보수하며 관리하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라고 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적지 않은 입장료를 냈으면 보물이나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의 내부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관가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통가옥들이 사람이 산다는 이유로 문을 다 걸어잠그고 둘러볼 수 없게 만들어 허탈했다. 겨우 대문만 열어두고, 내부엔 사람이 사니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세워둔채 꽁꽁 문을 닫고 있어 유물전시관에서 모형과 설명으로 접한 한옥의 아름다움이나 이 건축물이 지닌 특이한 점들을 거의 확인해볼 수가 없었다. 곳곳에 마련된  화장실만이 입장료 내고 들어온 보람을 느끼게 해준 장소였다. ㅜㅜ


송첨종택 마당을 지키는 600년 된 멋드러진 향나무와 돌담장 위로 아름답게 저무는 석양 노을을 보지 못했다면 진짜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뻔했다.


매표소 건너편의 경주 손씨 집안에서 자손교육을 위해 영조 때 마을과 다소 떨어진 산기슭에 지은 안락정을 둘러보고 나오니 6시. 다행히 관람시간 이후론 차량통제를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양동마을에서 찜해두고 꼭 가고 싶었으나 못갔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그 자리가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훑어도 안 보이는 정순이가옥은 끝내 못 찾았고, 물봉동산에 올라 석양에 물들어가는 양동마을을 휘이 둘러보고 내려왔다. 비교적 마을 외곽에 자리한 창은정사, 내곡정, 수운정, 설천정사, 동호정과 영당도 날이 어두워서 이번엔 가보지 못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고픈 곳들이 있어 적어도 한 번은 더 가고 싶은 경주 양동마을.


양동 마을 무료 관람일인 매년1월1일, 설날당일, 정월대보름일, 추석당일을 노려봐야 하나?

무료관람일은 마을해설(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4시까지 정시에 시작)도 운영이 되지 않는다니 참고하시길.(해설가능 언어는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이전 09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숲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