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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16. 2020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숲

함양 상림

* 이 글은 7월 초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상림은 가을 단풍 들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곧 다가올 단풍철을 기대하며 올려봅니다 *


장마기간인데도 비가 주춤하여 한 달쯤 전 신문기사에서 본 국내 최고 인공숲이라는 함양 상림에 가보기로 했다.

함양은 일두고택과 개평한옥마을, 남계서원 청계서원, 서암정사, 백무동계곡, 지리산 가는 길의 지안재(오도재)를 가느라 여러 번 갔는데, 함양의 가볼만한 곳에 나온 '상림'을 보고서도 매번 지나쳤다가 기사를 보고서야 흥미를 느끼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역시 맞다.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함양읍 대덕리 운림리(필봉산길 49)에 있는 오래된 마을숲이다. 통일신라 진성여왕(887~897) 때 천령군(현재 함양)의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이 재임중에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려고 조성한 인공숲이라고 한다. 아무리 못해도 1100 년 이상된 숲인 것이다. 그것도 자연적으로 생긴 숲이 아니라 목적을 갖고 일부러 만든.

지금은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는 위천(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분류)이 통일신라 시대에는 함양의 중심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홍수 피해기 번번히 있었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최치원이 농민들을 동원해 강물의 흐름을 돌려 둑을 쌓고, 그곳에 최치원이 손수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여러 수종의 나무를 캐어다 심으며 가꾸었다고 한다.

이 숲은 처음에는 대관림(大館林) 이라고 이름을 지어 각종 재해방비, 풍치, 경관보호를 위한 숲으로 잘 보존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큰 홍수로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후 하림은 많이 손상되었지만(현재 그곳엔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며 배울 수 있는 놀이터, 민물어류전시관, 철갑상어전시관이 있는 하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상림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오늘날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방풍방재 호안림에 이르고 있다.

숲의 면적은 21ha(20만 5842 m2)이고, 은행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 ·서어나무 등 120여 종에 달하는 각종 수목 2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숲은 전형적인 온대남부 낙엽활엽수림으로 잘 보존되었고, 인공숲으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아 1962년 12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상림 안에는 '건학사루 수식림목어장제(建學士樓 手植林木於長堤)’라 씌어진 문창후 최치원 신도비가 있다. 문창은 최치원의 시호이다.


그 앞에는 사운루가 있고 이외에도 함화루, 이은리 석불, 척화비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또 결혼하자마자 죽은 남편의 삼년상을 치르고 자결한 밀양박씨의 열녀비(도대체 그게 뭔 짓인지~ 이게 상받을 짓이여?)와 함양에서 한 자리씩 지낸 이들의 공적비, 역사적 인물들의 흉상이 자리한 역사인물공원이 있다.

놀라웠던 것은 갑오동학농민혁명을 촉발시킨 악명높은 고부 군수 조병갑이 함양에서도 군수를 지낸 흔적이 공적비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냥 공적이 아니라, 자신의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그 사심없는 선정을 기려 고종 24년(1887)에 이 비를 세운다는 '청덕 선정비'였다.

고부군수 시절, 인근의 태인군수를 지낸 아버지의 공적 비각(지금도 신태인의 피향정 옆에 남아 있다. 동학농민혁명유적지 답사 다닐 때 가보고 욕을 바가지로 해주고 옴)을 세운다고 세금을 뜯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이 외에도 백성의 재산을 탐내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워 재산을 뺏는 등의 각종 악행으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던 인물이 몇 년 전 함양에 있을 땐 달랐을 리가 있겠나. 다 스스로 세운 공적비였다. 남편이랑 그 비석을 발견하고는 눈 버렸다면서, 난 발로 한 대 걷어차주고, 남편은 침을 뱉었다. 그래도 싼 인간. 죽어서도 욕 좀 보라지~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나온다.
함양군의회 군의원들은 "선조들의 충효와 선비 정신, 위민과 애민 사상이 깃들어 있는 역사 인물 공원 안에 있는 동학 혁명의 도화선으로 지탄받고 응징해야 할 조병갑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건 지역 주민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하며 조속히 철거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2007년 1월에는 30대 남성 백 모씨가 조병갑의 선덕비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는데 왜 아직까지 이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나 생각해보니, 이렇게 역사의 심판을 받으며 오래오래 욕 먹으라고 그런 듯 하다.

조병갑때문에 열을 받긴 했으나, 천 년 넘도록 잘 보존된 피톤치드 가득한 상림을 걷는 동안 열받은 것도 사라지고, 연꽃단지 옆에서 공연중인 한 기타 밴드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와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연꽃과 수련들,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에 기분이 바로 업업되었다. 숲을 한 바퀴 돌고 오면서 위천 건너 어린이공원쪽으로 오가는 나무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천년교다.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이 이곳에 제방을 만들 당시, 건너편에 살던 총각이 함양 성안에 사는 처녀를 사모하여 매일 밤 개울물을 건너오느라 애를 썼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최치원이 돌다리를 놓아주어 이 총각만 다니게 하고, 일반 백성들은 다른 다리로 다니게 했단다.(특혜 쩜~^^)
훗날 그 돌다리는 없어지고 천년 후 그 자리에 천년교가 놓인 것이다.

군민의 숙원 사업이었던 천년교 건립사업은 2012년 공사를 시작해 2013년 준공했는데 무려 2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천년교스토리에 쓰여진 이 설명을 읽다가 "함양군 돈도 많아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돈 들인만큼 상림으로 들어오는 시멘트 다리 대죽교보다 더 운치있고 멋지긴 했다^^

슬슬 걸어다닌 것만 같은데, 그나마 상림 위쪽까지는 다 둘러보지도 못했건만 무려 만 보를 넘게 걸었다. 그만큼 숲이 크다는 것이다. 함양 상림이 준 여운이 무척 좋아서, 다음날 신문에 소개됐던 다른 인공숲인 괴산 후평숲에도 가봤는데, 그곳은 유료캠핑장이 들어선데다 나무숲이 그닥 울창하지 않아 함양 상림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함양 상림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색다른 운치가 있고, 특히 가을이 예쁘다고 하니 가을에 한 번 더 찾아가보려 한다. 가까운 곳에 이런 울창한 마을숲을 가진 함양 군민은 참 복받은 사람들이다.

역사책에서 배운 최치원은 당나라에 일찌감치 조기유학을 가서 빈공과에 급제한 수재에, '토황소격문'을 써서 황건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필력을 지녔으나, 신라로 돌아와 어지러운 국정과 6두품이라는 신분상 제약으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지 못한 채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은거하다 종적을 감춘 불운한 천재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현감으로 있으며 백성들을 위해 만든 숲이 천 년도 넘게 길이길이 남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아름다운 숲이 되어 그 이름마저도 아름답게 기억되니, 저세상에 가서라도 흐뭇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온갖 악행을 일삼고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공덕비를 세운 조병갑은 죽은 뒤에도 오래오래 욕을 먹으니, 살아있는 동안 참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상림을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든 휴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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