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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06. 2024

중이 미우면 가사도 밉다고?

부모님과의 청산도여행을 위해 3박 4일 동안 집을 비웠다. 그동안 어머님께서 매일 출근하는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식사 때 먹을 반찬, 과일, 반찬거리할 재료를 냉장고 가득 베란다 가득 준비하기만 하면 되니까.


1년에 몇 번 못 뵈는 친정부모님과 이렇게 여행을 떠난 게 올해 들어 두 번이다. 올 1월 아빠 생신 때 엄마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다 있을 때 내가 할 얘기가 있다.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디, 우리가 하루라도 젊었을 때 여행 좀 시켜줄래?"


하루하루 기력이 쇠해지시고, 여기저기 아파지기 시작하시니 조금이라도 건강하셨을 때 여행을 가고 싶으시다는 엄마의 소원에 장녀인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 둘 다 이제 성년이 돼서 내 손길이 덜 가도 되고, 시어머님도 건강을 많이 회복하셔서 내가 며칠 집을 비운다고 해도 남편이 있고, 가까이 딸이 사니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에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조카들 키우는 다른 동생들보다 시간을 내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3월에는 경주와 부산을 거쳐 광양과 해남 여행을 5박 6일에 걸쳐 다녀왔고, 5월에는 완도 청산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어머님이 집안을 책임져주셔서 가능했던 일이다.




어머님의 할머님은 유독 며느리를 미워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 모시기에 정성을 다했음에도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자다가도 며느리욕을 하셨단다.


어느 날은 어머님이 할머니께 물으셨다.


"할매는 왜 우리 엄마를 그렇게 미워해?"


할머니의 답은 이거 하나였다.


"중이 미우면 가사도 밉단다."


어떤 사람이 미우면 그에 딸린 사람까지도 밉게 보인다는 말이다. 할머니에게 그 말은 아들 하는 짓이 미우니 아들 마누라인 며느리도 밉다는 말이었는지, 아니면 며느리 하는 짓이 미우니 무슨 짓을 해도 밉다는 말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어머님의 아버지는 일은 안 하고 팔도강산 놀러 다니기 바쁘신 분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재끼(화투로 하는 도박)도 하시느라 그 많던 재산을  다 말아 드신 분이었다. 그런 분이 자기 아들이었으니, 아들 둔 유세를 떨긴커녕 며느리에게 미안해서


"어쩌냐~ 니가 고생이 많아도 좀 이해해라, 미안하다"


해도 모지란 판에 늘상


"중이 미우면 가사도 밉단다!"


소리를 손주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다고 한다.

그런 말씀을 들으신 어머니는 대밭에 들어가서 우시곤 했다고.


"에고, 할머니 미우셨겠어요~."


듣다 못해 내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면


"밉재. 우리는 그렇게 이뻐함서 어째 그라고 우리 엄마는 못 잡아먹어 안달이셨나 몰라. 하도 그런께 하루는 엄마한테 어매가 뭔 잘못을 했다고 맨날 할머니한테 야단맞고 눈물바람이냐고, 할머니한테 막 대들기도 하라고 우리가 그랬당께. 그란디 우리 엄마가 울면서도 어야~ 어른한테 그라고 대들믄 쓰냐? 됐다잉~"


그러시더라.


동네에 효부로 정평이 났던 시외할머니는 당신은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셨지만 안타깝게도 며느리복은 없으셨다. 멀쩡한 아들며느리가 둘씩이나 있으면서도 86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딸사위 집에서 10년을 사셨다. 아들이든 딸이든 다 자식이란 점에서 며느리복 대신 사위복이 있으셨던 셈이다.


그래도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님 모시고, 집안제사 살뜰하게 지내신 공덕은 자손들에게 고대로 전해져서 집안에 의사, 교수, 고위공무원,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까지 골고루 나온 걸 보면 부모 잘 모신 공이 어디로 가진 않는가 보다.



*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치자꽃이 장마 같은 비가 내린 첫날 아침에 피었다. 어머님의 오랜 정성으로 작년에 피었다 진 뒤에도 죽지 않고 올해 꽃봉오리를 맺어 한 송이 두 송이 피기 시작했다. 모두 다섯 송이가 필 예정이다. 어머님이 치자에 들인 공도 이렇게 꽃으로 피어나 되갚음하는데, 사람에게 들인 공은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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