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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2. 2024

제사를 안 치러서 그리 됐을까?

9남매의 맏이였던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1년에 적어도 6번 이상의 제사를 치르는 걸 보며 자랐다. 설, 추석 명절 때 하는 차례 빼고, 음력 10월에 산에서 하는 성대한 시제 빼고.


결혼하고 보니, 시댁에서는 아버님 제사 딸랑 하나만 있어서 세상 편했다. 아마 거꾸로 제사 없이 살다가 결혼해 시댁에서 제사를 1년에 6번씩 치러야했다면 기함을 했을 것이다. 이러니 사람이 자란 가정환경이란 걸 무시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시어머님께서 어느 추석을 앞둔 여름 끝물에,


"우리 이제부턴 명절에 차례는 지내지 말고, 제사나 잘 치르자."


하고 선언하신 덕분에 , 추석 명절엔 차례 준비대신 식구들 먹을 음식장만해놓고 놀러다니기 바빴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 첫 해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해지고, 가족모임도 못하게 하던 때라 1년에 한 번 있는 시아버님 제사를 거르기까지 했다. (이 또한 어머님의 제안이었다. 아래 글 참고)


https://brunch.co.kr/@malgmi73/127


그런데 거슬러 생각해보니, 시아버님  제사를 딱 한 번 거른 게 2020년 12월이었는데, 다음 해인 2021년 5월에 어머님께서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지시며 뇌출혈까지 동반하신 사고가 있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래도 시아버님 제사를 치르지 않은 게 어쩜 그런 병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찜찜했더랬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먹는 것에도 무척 신경 쓰시며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시는 어머님께 아무 전조증상도 없이 뇌경색이 왔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딱 하나 걸리는 거라면 쓰러지시기 9일 전에 코로나백신을 맞으셨는데 혹시나 그때문에 백신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입원하고 계시던 대학병원의 담당교수님이 먼저 보건소에 내보라고 하시면서 백신부작용 소견서를 써주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백신부작용과 무관하다며 보건복지부에서는 선을 딱 그었다. 21년 12월에 서류를 넣었는데, 22년 9월에 대충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몇글자 써서 반려되어 왔길래 22년 11월에 다른 과의 교수님에게 새롭게 백신부작용 소견서를 받아서 다시 서류를 냈다. 이에 대한 답은 23년 5월에 나왔는데, 그나마 이런저런 이유를 구구절절 써서 반려사유를 성의있게 나열했기에 더해봐야 소용없겠다 싶어 백신부작용 관련 민원은 포기했다.


어쨌든 2021년부터는 시아버님 제사를 더욱 신경 써서 잘 치르고 있고, 어머님의 병세는 차츰 좋아지고 다. 


이러니 내가 제사를 허투루 생각할 수가 없던 참에 제사를 지낼 때는 제수 음식 다루는 것도 정성을 쏟아야 함을 넌지시 알려주는 글을 읽고 반해버렸다. 기왕 치르는 제사, 이런 마음으로 치러야 하지 않을까?싶어서다.

 

'조선엄마의 시피'라는 부제가 달린 故 김서령 작가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에 나온 내용이다.




"웅후야 젯상에 올리기 전에 제수에 손을 못대는 건 다 소연(까닭)이 있데이. 저어기 어데 판서 집에 10년만에 귀한 손자가 났드란다. 온 식구가 금댕이 은댕이로 키웠지. 한장 아장아장 걸음 만한데 증조부 제삿날에 고만・・・・・・ 귀한 손자가 고만... 화로에 엎어져 부랬단다. 난리가 났제. 제사고 뭐고 일로 뛰고 걸로 뛰고! 마침 그날 그집 사랑에 이인이 묵고 있었드란다"

 

"이인이 뭐로?"


아이는 어느결에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아직 울음이 남은 아이 눈을 짐짓 가만히 들여다봤다.


"우리 웅후 인제 다 울었네?"


"아이, 이인이 뭐로, 엄마"


엄마는 햐야스름하게 웃었다. 목단도 아니고 달리아도 아니고 백일홍도 아닌, 무슨 꽃 같긴 한데 무슨 꽃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꽃 같았다.


"이인은 웅후야, 한 자리에 앉아서 천리를 보는 사람이란다. 서울도 보고 미국도 보고 음・・・・・・ 또 귀신도 보고, 옛날도 보고"


"이인이 먼 을 뜨고 가만 굽어보니 젯상에 올라앉은 증조부가 아를 고만 화로로 떠밀어 불드란다. 왜 그런고 소연을 캤더니 낮에 제수를 장만할 때 그 집 며느리가 아 입에 제사 음식을 한 조각 띠여 주드란다. 정성이 부실했던 게제. 그게 고만 조상의 노여움을 사가주고......"


"그런 이야기를 아는데 엄마가 어예 니한테 연변을 먹일로?"


엄마는 이인 봤나? 이인은 수염이 있나? 우리집에도 이인이 오나? 나도 크면 이인 되내나? 묻고 묻고 또 물으면서 엄마 등에 업혀 나는 아무일 없었던 듯 안뜰로 돌아왔고 앞치마를 고쳐 입고 엄마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제사를 차렸다.

.

.

.


무엇이든 이름을 불러주어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 우린 그리운 것의 이름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게 엄마가 쓰던 사투리일 때는 더더욱! 이월 어느 날, 그 하루 따습던 날, 연변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 참 엄마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던 꽃, 그 하얀 꽃은 나중에 생각해보니 박꽃이었다.



-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3부 슴슴하거나 소박하거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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