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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29. 2024

도깨비도 늙은 도깨비가 낫단다

어머님 아는 언니분은 우리 동네 토박이시다. 우리는 19년 전 아파트가 지어진 뒤로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나, 그 언니분은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동네가 허허벌판에 비닐하우스만 있던 때, 아니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다.

그러다 2003년 대전시 주도하에  이 동네에 전국 최초 테크노밸리가 들어서게 되면서 농사짓던 땅의 많은 부분이 아파트와 공장부지로 넘어가게 됐다. 그때 꽤 큰 보상금과 집 지을 땅을 받게 되어 그 자리에 상가주택을 지어 월세를 받고 사신다. 그럼에도 아직 남은 땅이 꽤 있어서 겨울만 빼고 하루종일 들녘에 나가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오랜만에 이 언니와 만나 보문산 보리밥집에 보리밥 드시러 다녀오신 어머님 손에 하얀 봉다리가 쥐어졌다.

"내가 우리 이쁜 동생 줄라고 따로 챙겨 왔어~"

하시면서 밭에 난 달래를 한 주먹도 더 되게 뽑아서 크린백에 담아 오신 것이었다.

"이게 좀 많이 커서 뻐신께 나물 해 먹지 말고, 쫑쫑 썰어서 달걀부침해서 먹으면 맛나~"

이런 말씀도 덧붙이셨다고 하시며, 어머님은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달래를 다듬으시고 씻어서 쫑쫑 썰어 달걀과 튀김가루를 넣어 부침개 반죽을 만드셨다.

토요일 저녁에 아들, 딸까지 모두 다섯 식구가 모이니 달걀부침해선 누구 코에 붙이기도 힘들 것 같아 양을 늘리신 것이다.

어머님이 달래를 다듬고, 부침개 반죽을 만드시는 동안 나는 묵은 김치를 꺼내어 김치부침개나 해보려고 김치를 씻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김치에서 군내가 많이 나니 아무래도 그냥 먹으면 군내가 그대로 남아서 안 되니까, 잘 씻어서 김치통에 물 받아 담근 다음에 몇 번을 우려내야겠다고 하시는 거다.

냉장고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어차피 익혀서 김치찌개나 김치전 해먹을 생각으로 베란다에 내놨더니, 요새 며칠 날씨가 푹하니까 금세 맛이 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머님 말씀대로 김치통에 2/3쯤 차있던 김치를 다 꺼내서 양념을 다 씻어내고 물기 빼고 다시 통에 담아 물에 헹구고 하는 작업을 한참 했다. 그런데 김치통 가득 담긴 뻘건 김치양념물 속에서 김치쪼가리들 건져내는 게 일이었다.

손으로 건져내니 손가락 사이사이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손으로 건져내고 있으니, 옆에서 달래부침개 반죽을 마친 어머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그거 손으로 하지 말고 그 뜰채처럼 생긴 채반으로 해봐라. 그걸로 하는 것이 더 낫겄다. "

"뜰채요? 아~~ 그거요?"

하고선 조리용구 놓는 싱크대 선반에서 손잡이 달린 채반을 꺼내어 그걸로 김치통을 휘이 저으니 김치쪼가리만 쑥쑥 건져지는 것이었다!

"와~ 김치를 물고기 잡대끼 하네요. 이렇게 하면 쉬운 걸 내내 손으로 하느라 시간만 보냈네요."

"그란단마다. 도깨비도 늙은 도깨비가 낫다고, 내 말이 틀린 것이 없당께."

"에? 그런 말이 있어요?"

"나 어릴 때 우리 할머니가 우리 보고 하시던   말씀이었재. 우리가 뭔 일을 하다가 잘 안 되믄 할머니한테 고시랑고시랑함시롱 뭐라 뭐라 했거덩. 그람 할머니가 도깨비도 늙은 도깨비가 낫단다~ 함시로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셨재. 내 입으로 늙은 사람이 더 낫단 말은 차마 못 하고 도깨비 데꼬 와서 체면 차린 거재."
 
"아~~ 그런 뜻이었군요. 하여간 부엌살림은 저보다 수십 년을 더하신 어머님을 당할 수가 없다니깐요~^^"

그렇게 해서 말갛게 씻은 김치는 잘 헹군 김치통에 담가두고, 어머님께서 반죽해 놓으신 달래전을 부쳐먹었는디 고게 그라고 맛있드랑께요~,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더라능~^^


달래로 전을 부쳐먹는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어머님보다 두 살 언니가 알려주신 살림의 지혜를 전수받은 덕분이쥬~

도깨비도 늙은 도깨비가 낫다는 말, 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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