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방문축하용 웰컴드링크로 스파클링 와인이 한 병 있길래, 밤 이슥하도록 어머님과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지난 주에도 잠깐 언급했던 시외증조할머니가 외할머니(시어머님의 어머니) 시집살이 시키신 이야기며, 시할머니(시어머님의 시어머니)가 어머니 시집살이 시키신 이야기가 주요한 이야기 소재였어요.
갑자기 술안주가 되어버린시외증조할머니와 시할머니의귀가 저세상에서도 제법 가려우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숙소는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기와지붕과 서까래 기둥 등은 그대로 두고 외부는 한옥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는 현대식으로 완벽하게 개조해서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었는데요, 4~5인가족이 모두 들어가 물놀이해도 좋을 만큼 넓은 자쿠지와 넓은 주방, 침실, 세면대,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는 본채와 침실과 화장실겸 욕실, 세면대가 있는 별채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별채에 2인용 침대가 있긴 하지만, 산골에서 본채와 뚝 떨어진 별채에 혼자 자는 것도 그렇고 비도 오는데, 우산 들고 가서 비 들치는 바깥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기도 불편해서 본채의 폭신한 침실에서 어머님과 같이 잠을 자기로 했답니다.
와인이 의외로 도수가 11.5%로 높아서 어머님은 첫 잔에 벌써 취기가 오르시는 걸 딱 두 잔만 드시고, 제가 나머지를 모두 마시다 보니 정말 간만에 알딸딸했더랬지요.
그래서 자정이 다 되어 술자리를 정리하자마자, 이 닦고 바로 침실에 가서 드러누워 잤어요. 어머님께서는 잠을 일찍 주무시는 편이 아니셔서, 제가 침대 안쪽에 눕고 어머님은 나중에 침대 바깥쪽에 누워 잠을 청하셨지요.
저는 새벽 4시까지 잘 자고 일어났는데, 어머님은 제가 잠이 깰 무렵에서야 잠이 드셨다고 해요. 어쩌면 제가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 주무셨는지도...^^;;
제가 무척 피곤한 날은 코를 엄청 골거든요(남편과 아들의 증언) 그런데 어머님도 코 골며 주무시는 건 저도 익히 아는 바라 제가 코 곤다고 어머님 눈치 보느라 못 자는 성미도 아니어서 그냥 잘 잤습죠.
그렇게 잘 자고 일어나, 새벽에 시필사하고 글도 쓰고, 자쿠지도 한 번 이용해보고,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아오니 산골 동네엔 뭐가 있나 동네마실도 다녀오고 그랬답니다.
7시 넘어서야 어머님께서 일어나시길래 7시 반쯤 식사준비한다고 말씀드린 뒤, 아침 먹고 커피 마시고 다기에 마련된 차도 우려서 마신 다음 숙소를 나섰어요.
비 개인 산골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어머님과 다시 동네마실하고, 옥천의 유명한 장계관광지에 들러서 금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돌아보고 왔답니다. 점심엔 노인정에서 어버이날맞이 식사대접이 있다고 하셔서, 식사장소에 내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 내용을 블로그에 여행에세이 쓰며 잠깐 언급했더니, 어떤 분이 시어머니랑 단둘이 이렇게 펜션 잡아서 머물다 온다는 게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답글을 주셨어요.
저도 어머님과 한이불 덮고 자본 것은 결혼해서 25년동안살면서도 처음이 아닌가 해요. 한지붕 아래 산 지도 19년째인데, 고부간에 한이불 덮고 잘 일이 이렇게 여행가서 말고는 생길 일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시어머님과 한이불 덮고 자는 것에 별 거부감없이 편하게 잘 수 있었던 건 친엄마보다 더 오래 한집에서 같이 살아온 고부간이라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아는 몇몇 집은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한집에서 모녀지간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같이 목욕도 가고요. 우리 아래층 사는 집도 그렇고, 아들 친구들 가운데에는 두 집이나 그렇게 살고 있어서 저에겐 그닥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아직도 시어머니를 어려워하는 집이 훨씬 더 많겠지요.
어떤 관계든 오래 함께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그렇게 서로에게 편해지고 물들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이런 때도 딱 맞는 말입니다.^^
* 시어머님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고부만사성이 책으로 나왔어요. 딸이 삽화와 표지를 그려서, 할머니 며느리 손녀 3대가 함께 만든 책이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