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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an 04. 2022

<220101> 올해는 매콤하게!


속초 장사항으로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새벽 3시 울리는 알람에 일어나려 뒤척이는 남편을 다시 토닥이며 말했다.

가지 말고 더 자자. 봐 봤자 매일 뜨는 해일 것이며, 혀 내밀듯 솟아오르자마자 돌아서버릴 거면서 이 새벽에 그 먼 길은 그만두자. 대신 날 밝으면 맛있는 거 먹으러나 가자.

누가 시키면 하려다가도 마는 성격인 사람이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바로 수긍하고 무섭게 코를 곤다.

울고 싶은 참에 마침 때려준 거지...ㅋㅋ


날이 밝았고,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새해 인사가 어흥 어흥 소릴 내는 것으로 보아 올해가 호랑이 해임을 짐작게 한다.

침대에 샴쌍둥이처럼 붙어 누워 새해를 맞았다.

간신히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오전을 버티다가 슬슬 배가 고파져 집에 있는 것들로 브런치를 만들어 먹었다.

바질소스와 모짜렐라가 심하게 많이 들어 있는 냉동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치즈가 옆구리로 흘러넘칠 때까지 프라이팬에 눌러 굽고, 샐러드를 한 바가지 만들었으며, 겉바속촉 써니사이드 달걀 프라이를 네 개나 만들었다. 플레인 요거트에 냉동과일 여러 가지를 토핑 한 것도 잊지 않았고.

오전에 마신 것보다 훨씬 진하게 내린 커피와 함께 홈메이드 브런치를 둘이 먹었다, 이걸 밖에 나가 사 먹었으면 얼마였을 거라는 둥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키득키득 주고받으며.


과자를 챙겨 들고 침대로 또 기어들어가 벽면의 TV를 향해 외쳤다.

넷. 플. 릭. 스.

자식새끼들보다 말 잘 듣는 TV가 틀어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았다.

<식스 빌로우>와 <기적>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 <식스 빌로우>를 보며-  눈 덮인 산속에서의 고립 그리고 의지할 거라곤 전파로 나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휴대용 라디오뿐. 이미 일반적인 생존 가능성의 나날 이상을 버틴 주인공이 한 자릿수로 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 상태를 확인하곤, 주파수 대신 라디오에 달린 녹음 기능을 켜 감정의 골이 깊었던 엄마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메시지를 남긴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기적>에서는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는 아버지가 마지막에 아들을 향해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내가 그동안 왜 네 눈을 못 바라봤는지 아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자꾸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게 무서워서, 사랑하는 너도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워서 바라보지 못했다..."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은 마음... 눈알이 뜨거워진다...


영화 두 편을 내리 보고 TV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4시 반.

머리맡엔 나부끼는 과자 봉지, 옆엔 덩달아 자는 내 샴쌍둥이 그리고 내 다리 사이에 생긴 V자에서 곤히 잠든 내 고양이 가지.

"다들 일어나라. 뭣 좀 먹자. 바람도 쐴 겸 두부 먹으러 가자!"

다 저녁에 비로소 샤워를 한다.

떨어지면 발등 찍게 생긴 눈곱을 매달고 오늘을 보낼 수는 없지.


이미 어둑해진 밤거리로 나선다.

파주에 있는, 우리가 많이 좋아하는, 장단콩으로 직접 만드는 손두부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일부러 시골길을 택하여 돌아 돌아 슬슬 두부를 먹으러 간다.

수없이 갔으며, 갈 때마다 메뉴를 정해 보지만 결국 늘 같은 것을 주문하는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메뉴를 정한다. 아마도 하얀 순두부 하나, 청국장 하나, 그리고 두부 한 모를 먹게 될 걸 알면서도 변함없이 오늘은 무얼 먹어볼까 고민을 한다.


인생 또한 그런 것일 게다.

올해도 아마 나는 작년과 크게 다름없이 살아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번 해엔 하얀 순두부 대신 매콤 순두부는 어떨까 상상해 보는 것.

하얗던 빨갛던 두부는 두부이듯 이렇든 저렇든 인생은 인생이고 맛있게 잘 살아가면 그만인 거다.

올해도 맛있게 지지고 볶아 보자, 나의 샴쌍둥이 그리고 내 인연의 꽃다발들!!


앙리 마티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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