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기 직전에 다녀온 파리가족여행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서 여행준비과정부터 기록하고 자료를 모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나 유방암을 진단받고 모든 과정을 겪고 난 지금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내 머릿속에서 차르르륵 소리를 내며 나름의 정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9년 첫 책이 나오고 파리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며 죽기 전에 불가능할 것 같던 버킷리스트 2개를 실행하고 맞이한 암 진단.
따지고 보면 열흘간의 파리 가족여행은 암 진단과 바꾼 여행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에 겨드랑이 쪽에 멍울이 만져져서 동네 산부인과와 건강검진병원, 대학병원을 돌아다니며 암이 아닌지 여부를 체크하며 2달 정도의 시간 동안 마음을 졸였었다. 최종적으로 암이 아니라는 소견을 듣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딱 1년 뒤 나는 유방암 3기로 진단을 받았다. 진행이 빠른 암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도 여행을 갔던 그 시기에도 암은 내 몸속에서 진행 중이었을 것이다.
암을 진단받고 1년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발견해내지 못한 의료진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해에는 특별히 따로 정밀검진을 받았더랬다.
그랬다면 파리가족여행은 없었을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파리 여행과 내 왼쪽 가슴을 맞바꾼 셈이다. 그 생각을 하니 황당하게도 좀 더 늦게 진단받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열흘간의 파리가족여행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세상일이 그런가 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법. 다 가지려는 건 욕심이다.
돌이켜보니 그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운동화를 신고 비를 맞으며 파업과 테러로 혼란스러웠던 파리에 스며들어 걷고 걸으며 배운 삶의 태도들이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 여행의 경험을 정리하고 글로 쓰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니 비로소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