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젯밤에 꿈을 꿨어. 꿈속에서 엄마가 너무 귀여운, 우리가 파리에서 본 강아지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강아지를 내가 달라고 했거든? 근데 엄마가 불안해서 나한테 주지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짜증 나서 내가 그냥 줄을 가져와 버렸어.”
“기분이 어땠어?”
“좋았지!”
아이는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부모로부터 가져갈 준비를 서서히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파리 여행에서 만난 예기치 못했던 소소한 순간들에 작게나마 용기 내어 함께 대처해 본 경험들이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을 것이다.
또 어떤 날엔 초저녁에 함께 침대에 누워 뒹굴다가 잠이 들었던 딸아이가 엉엉 울면서 꿈에서 본 것에 대해서 서럽게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도 같이 울면서 아이를 껴안고 듣고 보니 아이가 다섯 살 때쯤 혼자서 겪었던,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이가 스스로의 무의식 속에 밀어 넣어 버렸던 기억을 꿈속에서 다시 대면한 것 같았다.
아이는 너무 화가 나고 무서웠다고 했다. 왜 자기가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지,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다고 했다. 낯설고 두려운 그 상황이 이제는 스스로 소화시킬만한 준비가 되어서 튀어나온 걸로 보였다. 나는 딸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런 일을 겪게 해서, 그때 엄마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는 금방 용서해 주었다. 너무 쉽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던 저녁 이후에 아이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아주 조금 더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조금 더 자주 웃었다. 우리 사이는 조금 덜 어색해졌다. 아주 조금 더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알아볼 수 있는 만큼의 변화였다.
가족의 응집력이 좋아졌다. 우리 가족은 전보다 우리가 한 팀으로 뭉쳐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아이와의 유대감이 조금은 더 커졌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었다. 파리 가족여행이 없었다면 아마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마음이 준비가 되었을 때 상처가 된 기억을 떠올리고 마주할 수 있다. 그전에는 그 기억을 억누르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몸이 긴장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