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는 강아지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파리의 강아지들은 어디서든 그들의 신체가 완벽히 이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열흘간 길에서 마주친 어떤 강아지도 큰소리로 짖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강아지들은 조용하고 우아한 아우라를 뿜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길러본 적은 없는 딸아이는 파리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무수한 강아지들에 열광했다. 며칠을 유심히 보더니 하는 말이 파리의 강아지들은 눈빛이 다르다나 뭐라나. 한국에서 봤던 강아지들과 비교했을 때 눈빛에서 평온함과 행복이 느껴진다고 했다. 듣고 보니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심지어 노숙인들 조차 자신의 강아지를 애지중지하며 함께 거리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기에 파리 사람들은 동물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와 한국의 강아지들을 마주치면서 그 차이를 나도 실감하긴 했다. 한국에서 만난 강아지들의 몸이 상대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딸아이의 말대로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 짖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인터넷의 한 기사를 보고 파리의 노숙인과 강아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파리의 노숙인들에게 강아지는 생존의 도구 중 하나라고 했다. 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프랑스는 애완동물을 유기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파리 경찰이 노숙인을 단속하면 남겨진 개를 책임져야 하는데 경찰이 개를 책임지기도 곤란하고 단속 과정에서 개를 학대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지기라도 하면 난처해진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단속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추울 때 난로 대용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온이 떨어지는 아침과 겨울에는 꼭 안고 자는 바이오 히터역할이 된다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업자(노숙인 포함)가 개를 키우면 지방 정부에서 실업자는 물론, 개에게도 사육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아지를 옆에 끼고만 있어도 파리시에서 보조금을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의 시선에서는 낭만적으로만 해석되었던 현상의 이면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이유가 차고 넘쳤다. 무기력하고 불행하게 보이기만 했던 노숙인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세상사의 모든 일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돌아가고 있다는 진리를 깨우쳤다. 깊이 알기도 전에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오만함과 무지함을 내려놓아야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의 말이 떠올랐다.
“We must cultivate our own garden.”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결국 남은 것은 나 자신의 삶을 가꾸고 돌보는데 집중하는 것뿐이다. 타인의 정원을 흘깃거릴 틈이 없다. 내가 그리고 싶은 내 삶의 정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궈가야 한다.
다만 파리에서 만난 그 평온하고 유유자적하는 강아지들의 눈빛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