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을 진단받다

by 전민재

2020년 12월 4일.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암이라니. 12월 8일 조직검사결과 또한 암으로 확진이 되었다. 처음 만난 개인병원 유방외과 의사의 “암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라는 말은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선뜻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초음파와 맘모톰 시술로 조직검사가 끝나고 의사가 홀연히 자리를 뜬 뒤 내 옆에 남은 간호사에게 저게 무슨 말인지 물었지만 의사에게 상담하라는 짤막한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병원 밖으로 나왔는데 바람은 또 왜 이리 차가운지. 생전 처음가보는 낯선 동네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를 헤매고 있었다. 일단 암이라는 것이 내게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잘 되질 않았다. ‘설마 내가?’ 하는 마음과 함께 이런저런 두려움이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며칠 전 TV에서 본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로 떠난 엄마를 보는 듯 하늘을 보면서 빨리 오라고 소리치던 남자아이의 간절한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그나마 오전에 매년 건강검진을 하던 곳에서 초음파와 유방촬영 후 3차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는데 오후에 바로 유방외과 전문의가 있는 개인병원에라도 올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근처대학병원은 암으로 진단받지 않은 경우에는 내년 3월에나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하니 황당해서 헛웃음이 났다. 다만 암으로 확진된 경우에는 한 달 정도 뒤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부터 왼쪽 가슴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예약을 했었지만 남자의사에게 가슴을 보인다는 게 내키지가 않아서 며칠 전 예약을 취소하고 여자의사가 초음파검사를 해주는 건강검진 전문 병원에를 갔던 참이었다. 작년에도 동네 산부인과에서 이상소견을 듣고 그 병원에서 검사 후 괜찮다는 결과를 들었기 때문에 또 같은 이야기를 듣고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랬던 것도 같다. 결과적으로 매년 꼬박꼬박했던 건강검진이 무색하게 갑작스럽게 내 왼쪽 가슴에서 암 덩어리가 발견된 것이다.


‘처음 유방외과 병원을 예약했던 한 달 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병원을 알아보고 검사를 해봤더라면 조금 덜 진행된 상태에서 이런 결과를 맞이했을까?‘ 하는 후회도 약간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이번에는 병원에서 내 가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더욱 두렵고 미루고 싶은 일이었다. 아마도 무의식에서는 직관적으로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나보다.


병원 앞을 몇 바퀴나 돌며 서성이다 혹시나 하고 의사인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친구는 “얼른 계획을 세우자.”고 했다. 비현실적이라고 버티고 있는 내게 의사 친구의 ‘얼른 계획을 세우자.’ 는 그 한 마디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확인사살이었다.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근데 혹시 월요일에 아니라고 할 일은 없을까?”


“피부 두꺼워지고 유두함몰, 불규칙경계, 다 안 좋은 소견이야.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지.”

“암이 아니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대비는 해야지.”

“야, 울지 말고. 기운 빠져.”


엇. 내가 울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았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친구는 보지도 않고 떡하니 알아맞히더니 내게 얘기하고 있었다.


‘힘들지?’ 라고 공감해주는 것보다 냉정하게 울어서 기운 빼지 말고 정신 차리고 계획을 세우자는 친구 말이 너무 든든하고 고마웠다. 이건 공감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었다. 그 당시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따뜻함이 냉정한 말에서 느껴졌다. 생소한 경험이었다.


“고마워.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정신 차려야지.”


“울지 마. 이제 시작.”

“나도 큰 충격이긴 한데 예약부터 우선 해놓고 울어.”


집근처의 대학병원은 예약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고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초진 예약이 운 좋게 12월 9일로 잡혔다.


“그래도 다음 주 당장 예약이 됐으니 다행이다.”

“이제 울어도 되겠어.”


그렇게 병원을 예약하고 외래 진료를 보고 MRI 2개, CT, 뼈스캔, 피검사 등등 필요한 검사를 다 마치고 지금은 18일 외래진료를 앞두고 있다. 수술 날짜도 22일 경으로 잡아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 상태다.


부모님께도 망설이다 알리고 친구 몇몇에게도 알렸다. 처음엔 그렇게 눈물이 나고 슬프고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오더니 이제는 좀 덤덤해졌다.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이제 내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일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에 후회가 없도록. 울먹이는 남편에게 내가 먼저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내게는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내 몸과 건강을 두고 수행해야 하는 미션, 프로젝트 말이다. 이것의 성공여부에 따라 남은 우리 가족의 인생이 달라진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 대신 나도 인간이고 자연의 일부이므로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에 대해서는 너무 큰 미련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방암을 확진 받은 날 새벽, 나는 한 생명보험사의 무료운세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분명 올해 초에 스치듯 봤을 때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암이라니. 너무 뜬금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알 듯 말 듯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2021 신토정비결


“하늘이 나에게 내린 좋은 운의 기운이 나를 이끌어주기 전 한 번의 시련과 고난의 거센 바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면 좋은 운의 기운이 찾아올 날이 있겠지.

한번 바람을 잘 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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