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검사 결과까지 받은 것이 12월 8일이니 오늘로 9일째다. 막상 날짜를 따져보니 이제 갓 1주일이 지났다니 생각보다 기간이 짧았다는 느낌이 든다. 유방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순간에 내 마음속 전경에 떠올라 있던 모든 것들이 배경으로 싹 사라지는 걸 보았다. 모두 한 덩어리로 뭉쳐지더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전경에는 나와 내 몸. 이 두 가지만 떠올랐다. 내 몸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 당황스럽고 놀라운 가운데 한편으로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이 시원함이 뭐지?
내가 갖고 있던 뭔가 해결되지 않고 묵히고 있던, 마음속으로 끙끙대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삶에 필수적인 것들도 아니었다는 자각 때문이었을까?
아이 교육 문제, 대학에 가기 위해서 아이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노심초사. 초조한 마음들.
저금리로 풍부한 유동성하에 코로나로 급변하는 경제 상황들로 인한 급박하고 절박한 마음들.
주변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박탈감 또는 우울감을 느끼는 것들.
사람들이 내게 어떤 이득을 주고 어떻게 속내를 떠보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굴면서 손해 보기 싫어하고 기어이 내민 손을 거절하고야 마는 행동들.
몇 년 만에 다시 내 삶에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방암이라는 이번 위기에 나는 이전 위기 때보다는 담담했다. 처음 건강검진센터에서 3차병원에 가라는 말을 듣고 버스 안에서 울 때, 그때 잠깐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나도 그다지 억울하거나 불만스러운 것은 없다’, ‘고통을 더 당하느니 이대로 떠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잠깐 들었을 뿐.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과 관심으로 오히려 진단받기 이전보다 더 건강한 생활을 하면서 수술과 치료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까페의 커뮤니티를 통해 치료과정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고, 거기서 글을 통해 만난 수많은 암환자 분들과 그들의 극복과정이 내게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특히 이번에는 남편의 태도가 크게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진단받고 나서는 울먹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하더니 병원에서 조직검사 후 막상 진단을 받고 나서는 내 존재가 그 사람과 우리 가족에게 소중하다는 걸 내게 일깨워 주었다, 나 또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충격일 것 같다. 혼자서 험한 세상을 헤쳐가나며 아이까지 잘 성장시킬 자신이 없다. 아무쪼록 우리 두 사람 다 건강을 잘 보살펴서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서로에게 믿을만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