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by 전민재

어떤 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때면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는 습관이 있다. 최상의 상황을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면 감당해야할 좌절감과 실망감을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가 결과가 좋으면 그만큼 기쁨도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나 나름대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최상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처음 발견한 내 유방속의 암 덩어리는 2개였다. 초음파 상으로 3군데의 병원에서 똑같이 확인해준 바였다. 그리고 두 곳의 대학병원에서 본 의사의 소견은 조직검사로 확인한 한 개는 확실히 암이 맞는데 유두에 가까운 놈은 암인지 확실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한 병원에서는 그 놈을 따로 조직검사를 해서 암이 아니라고 확신이 서면 굳이 2개를 다 제거하지 않고 1개만 부분절제로 제거하고 유두는 살릴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오늘 의사가 모든 수술 전 검사를 끝내고 해준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암이 세 덩어리가 있다는 것이다. 가슴안쪽 깊숙이 자리잡은 1센티미터 짜리 암이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색 MRI 사진 속에 아주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딴딴딴 따다 따 따다단 딴딴딴 따다 다 다다단.”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가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 소리가 갑자기 내 귓가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은 마치 나와 기싸움을 하려는 듯 내 왼쪽 가슴의 정중앙 깊숙이, 그러나 아주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습관대로 최악으로 가정하고 있던 유두를 절제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가슴 곳곳에서 암 덩어리가 세 개가 발견되었으므로 나는 고민없이 전체 가슴을 도려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부분 절제에 대한 고민, 유두를 살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도 어느 정도 된 것으로 나왔다고 하니 수술 후에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2기도 아닌 3기 암으로 진단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습관을 실행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이전에 내가 편하게 최악을 가정할 수 있었던 것은 시험 같은 것들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닌 것들.


그런데 이 암이라는 놈은 생명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놈이라 내가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 최상의 상황에 눈을 돌려 내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을 누르고 다스리려 했던 것 같다.


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진료실을 나온 나는 동시복원을 위해 성형외과 의사와의 협진 스케줄을 간호사와 의논하고 진료비를 수납하고 병원을 나오는 내내 멍한 기분으로 걸었다. 영혼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예상치 못한 강한 충격이 내 몸과 마음을 강타했을 때 인간은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약간 공중에 붕 뜬 사람처럼 의식을 놓아버리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터벅터벅.


아침에 쌓인 눈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다. 뭐라고 소리치며 울고 나면 이 정신없음, 넋나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울컥하는 마음이 일었다가도 이내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오고 하기를 반복한다. 전화로 남편과 엄마에게 결과를 알리고 또 걸었다. 입원하러갈 때 입을 가디건과 퇴원 후 입을 노와이어 브라를 샀다. 정신차림과 넋놓음의 끊임없는 반복 속에 나는 하염없이 걷고 걷는 걸 택했다. 눈앞에는 진료실에서 보았던 MRI차트 사진 속의 선명한 암덩어리들이 자꾸 아른 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조용히 숨죽이고 내 몸속에 숨이 있을 수가 있었지? 괘씸하기도 하고 약간은 두렵기도 하고 내 몸속 암덩어리들에 대해 미묘한 감정들이 오고갔다.


앞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라는 영원한 표식으로 내 왼쪽가슴에는 수술자국과 절개된 유두, 보형물이 자리할 것이다. 데미안이었나? 별 표식을 통해 그 사람을 식별하듯 나는 내 몸속에 새겨질 상처를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멈춰있지 말고 깨어있으되 내 몸과 마음에 예의를 다하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읽을 것이다. 아무쪼록 그렇게 되기까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 등의 약물치료를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암 덩어리들아 좀 살살 좀 커지거라. 아니 조금씩 줄어들어주라. 다른 곳에 옮겨 다니지 말고.


순한 암이라고 하셔서 한시름 놓긴 했는데 앞으로 생활습관혁명을 일으켜야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운동과 식이. 그리고 정신건강. 영성까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심과 수용. 꾸준히 함께 챙겨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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