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앞두고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 아침이다.
눈을 뜨면서부터 3개월 주기로 전이와 재발을 체크하면서 살아야할 앞으로의 시간들이 떠올라 계속 내 머릿속을 멤돌았다.
왜일까?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충격가운데에서도 희망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이 더 주를 이루었다.
건강에 더 신경쓰며 살라는 신의 메시지로 생각해야지.
내가 나 자신을 소외시키고 타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만 몰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야지.
나와 가족들 간에 좀 더 대화하고 소중함을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증표로 생각해야지
예민하고 약한 내가 좀 더 단단해지고 대범해지는 도전이라고, 내 그릇을 키우기 위한 과제라고 생각해야지.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망각하고 헛되이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매일의 알아차림을 독려하는 마음속 깃발 같은 거라고 생각해야지.
삶에서 어떤 어려운 순간이 닥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헤쳐나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야지
누가 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힘든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야지.
먹는 것과 운동 등 생활 습관을 교정하고 지나치게 많이 불어나서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살을 뺄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고 생각해야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매순간 내 몸속의 암세포들에게 신경쓰며 확인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한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조금 지겹게 느껴진다. 아직 수술을 하지도 않았고 다른 치료들은 그 시행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는데.
몸에 새긴 기억이라는 주제로 쓴 글이 떠올랐다. 그 상처가 상처로 영원히 남아 당사자에게 지속적인 아픔이 될거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 당사자가 되려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상처로 두지 않고 그걸 자기 삶으로 소화시키고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나면 그건 ‘흔적’이 될 수 있다. 그 자국을 볼 때마다 ‘아, 나는 그 힘든 시기를 잘도 버텨내고 지금까지 살아있구나!’ 하는 긍정의 메시지로 바뀔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 내가 너무 긍정회로를 돌린 건 아닌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겪은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나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내게 주는 메시지를 다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