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을 대면한 날
아이가 7살 때부터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정하고 번복하기를 반복하다가 실행에 옮긴터라 마음이 복잡했다. 이사 갈 집의 인테리어 문제로 속앓이를 하다가 이사를 가기로 최종 결정이 되자 시원섭섭 하달까.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묘한 안도감이 몸을 감쌌다.
그 결정을 하고 나서 최근 들어 가장 깊은 잠을 잤다. 그러면서 꿈도 여러 개 꾼 것 같다. 상황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나는 어린 아이인 딸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많이 슬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집을 내가 유독 떠나기 싫어하는 이유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집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문득 ‘아, 이집에는 아이가 한창 어린이로서 자라나는 모든 기억과 숨결들이 녹아있구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가는 것이 슬픈 것이구나. 그 상실감을 대면하기가 어려운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는 우리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시피 했다. 시댁의 한 층을 빌려서 살면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과 갈등, 그로인한 상처와 흔적.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 살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너무 외진 곳이라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짐이 다 빠진 텅 빈 이 집에 들어섰을 때의 그 고요함이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신기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마치 강원도의 어느 콘도에 온 것 같은 고요함과 창밖으로 펼쳐지는 함박눈, 함박눈이 내려앉아 하얗게 물들어가는 뒷산의 풍경까지.
나와 우리 가족이 너무나 사랑했던 풍경이다. 가을이면 단풍구경 필요 없는 풍경이 부엌 창으로 펼쳐지고 봄이면 벚꽃구경을 따로 갈 필요가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맑은 공기는 덤이다.
이곳에 오면서 나는 비로소 엄마로서의 내 책임과 역할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했달까.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생일 파티를 처음으로 열어주었다. 그 때의 긴장감은 직장에서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해야 하는 강의를 준비하던 순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겨울왕국의 엘사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활짝 웃는 아이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플랭카드도 만들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게 왜 이리 눈물이 날까.
나는 그 당시 매 순간 절박했고 너무 간절했던 것 같다. 아이와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보려고 참 많이 애썼다. 무너져 내린 우리 가정의 신뢰와 애정을 다시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긴장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참 미숙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엄마로서의 나. 내가 받아보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주려고는 하는데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잘 되지도 않아서 너무 괴롭고 속상하고 좌절스러웠던 많은 순간들. 이 집에는 그 모든 순간의 내가 녹아있다. 그렇게 좋은 엄마, 안전하고 포근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서 애를 썼는데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그럴 때 이 집의 소파에서 앉으면 보이는 나지막한 산자락과 파란 하늘은 내 막힌 속을 조금이나마 뚫어 주었던 것 같다. 계절마다 보면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창밖의 풍경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곳을 이제 우리가 떠나면 이 집은 타인의 공기와 숨결로 채워지게 된다. 나는 그게 싫은 것 같다. 그냥 그 모든 순간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 이 집이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내게 상실감은 넘어서기 힘든 어떤 감정이다. 무엇이든 떠나보내거나 잃는 것이 너무 싫고 아프다. 누구에게든 상실감은 어려운 감정이겠지만 내게는 유독 그렇다. 왜 그럴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 당시의 딸아이에게 미처 해주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때문일까?
그 때의 딸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혼자서 해본다.
“딸아, 엄마가 그 때는 너무 미숙하고 힘들어서 너한테 못 해 준 게 많아. 따뜻한 눈으로 매일 아침 눈 맞추고 안아주고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함께 먹고 또 같이 산책도 가고. 사람들하고 어떻게 어울리는 건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대화하는 건지, 음식이 있을 때는 사람들과 어떻게 나눠 먹어야하는 건지, 속상한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풀어버리는 건지......”
이 집에서 나는 내 인생의 바닥을 찍었고 회복했고 또 암에 걸리고 회복했고, 아이도 서서히 마음의 안정과 자신감을 회복했고.
이 집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고 기복을 겪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
이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 모든 과정들을 하나의 매듭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집을 떠나면 그 모든 소중한 과정들을 잊어버리게 될까봐, 이곳에서의 우리의 숨결과 흔적들을 다 잃어버리게 될까봐 그게 겁나고 슬픈 것 같다. 다음으로 가야하는 두려움과 여기서의 희노애락에 대한 애착이 뒤엉켜서 자꾸 주춤거리게 하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 이집과의 이별은 암을 경험하지 않았던 시절의 나와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암이라는 친구를 평생동안 돌보며 다독이며 살아가게 될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과거의 나. 그 존재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공간과의 작별이 어쩌면 내 마음에 큰 저항감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이 집과 잘 이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동안 이 집에 대한 내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쏟아내고 나니 비로소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이 집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인생이란 뭔가를 계속 얻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뭔가를 계속 잃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집과 잘 이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가올 상실로 인한 나의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온전히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
이사를 핑계로, 이 집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핑계로 나는 내 몸에서 사라진 내 왼쪽 가슴과 암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의 나 자신과의 이별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고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암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