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 있는 것을 하는 힘
수술 후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 앉기도 힘들뿐더러 가슴 수술한 부위가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 빌린 전동침대를 2달 정도 집에서 이용했다. 북향이어서 잔짐들을 놓아두었던 구석진 방의 한가운데에 전동침대를 놓고 거기에서 잠도 자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 방은 우리집의 여러 공간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었지만 춥고 북향이라는 이유로 내내 문을 닫아놓고 소외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그 방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매일 아침 홀로 내가 처음 이집에 왔을 때 반했던 고즈넉한 풍경을 보면서 일어나고 밤이면 잠들고 하는 생활이 내게는 큰 휴식이 되었고 내 몸의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등을 살며시 밀어주고 있는 느낌. 고마웠다.
그 시기의 나는 가슴과 복부가 온통 수술로 인한 상처로 뒤덮여 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을 잘 때조차 복부에 꿰매놓은 실밥들이 터질까봐 V자 자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자야했기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겨우 남편이 차려주는 밥을 오른손으로 먹고 화장실에서 혼자 볼일을 보고 세수하고 양치하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 유지 활동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와중에 노트를 펼쳐서 손에 연필을 잡고 글을 쓴다거나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두들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너무 뭔가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본 앱 광고가 생각났다. 음성을 인식하여 글씨로 바꾸어준다는. 기억을 더듬어 검색해보니 진짜 그런 앱이 있었다. 그걸 내려 받고 전통침대가 설치되어 있는 북쪽방에서 고요한 시간을 혼자서 보내다가 뭔가가 생각이 나면 앱을 열고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하고 그 내용을 글로 전환하여 메모장에 저장을 해두는 일을 매일 반복했다. 내가 발음한대로 전환이 되지 않아 애를 먹는 적도 많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생리적인 필요에 의한 것들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그 시기에 내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복잡하고 가라앉던 마음도 솔직히 표현하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고 어느 날은 전날 밤 꾸었던 꿈을 생생히 기록하며 그 꿈이 내게 주는 격려와 위로에 전율하기도 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어떤 존재가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자잘한 성취감들이 내가 암이라는 역경을 무사히 넘어오는데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음성으로 메모해두었던 많은 글들이 지금 이 책 안에서 나의 이야기가 되어 흐르고 있다. 암으로부터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명확히하고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