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가족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제일가보고 싶던 곳은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20년 전 내가 스무 살일 때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았던 그곳의 정원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언젠가는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여행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1년여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베르사유 궁전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파리 철도의 파업이 본격적이 되면서 우리가 묵는 파리 중심가의 숙소에서 파리 외곽에 있는 베르사유까지 이동수단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남편의 성격상 수십 만 원의 택시비를 지출하면서까지 베르사유에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행의 첫날부터 베르사유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서로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오고 갔다. 남편은 계속 회의적인 반응이었고 나는 공동의 여행일정 중에 내 개인적 욕구를 위한 선택을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밀고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도 모자랄 판에 눈치를 보며 내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의 과감한 결정이 도움이 되었다. 설사 베르사유를 가고자 하다가 소중한 열흘 중에 하루를 날려버릴지언정 아내인 나의 오래된 소망을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효율과 가성비가 항상 제일 높은 가치인 남편에게 이런 결정은 평소에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다. 고맙고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유럽여행 카페의 댓글들을 뒤지고 여러 키워드로 검색을 하여 생 라자르역에 가면 베르사유 궁전을 도보로 갈 수 있는 베르사유 레브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파업여파로 열차가 그날 운행을 할지 여부는 확실치가 않았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었다. 일단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숙소에서 나와서 생 라자르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려봤지만 만원 버스에는 우리가 탈 자리가 없었다. 결국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었다. 역에 도착해서는 우리나 파리 시민 분들이나 서로 영어가 미숙해서 잘 통하지는 않지만 간절한 손짓 발짓과 도와주려는 마음의 어우러짐 덕분에 무사히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부터는 한시름 놓았고 일사천리였다. 베르사유 레브역에 내려서 여유롭게 재래시장도 구경하고 귤도 샀다.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의외로 남편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오지 않았더라면 너무 큰 후회를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둘러본 파리의 여러 곳들 중 자신은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고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부가 된 것일까?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내부와 정돈되고 광활한 정원을 우리 가족은 거침없이 걷고 또 걸었다. 정원을 나와 그랑 트리아농과 쁘띠 트리아농까지. 그날 걸을 수 있는 최대한을 걸었지만 아쉬웠다.
자전거를 탈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지만 남편도 베르사유의 매력을 알아버렸으니 다음번에 오게 된다면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에 오고 싶다. 하루나 이틀정도는 베르사유에 숙소를 정해서 묵으면서 여유 있게 돌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이라는 팀의 일원으로서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함께한다는 든든함을 경험한 하루였다.
여행에서 혹은 삶에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서로를 염려하고 믿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인생에 대한 믿음, 시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