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파리에선 괜찮은 일이 될 수 있었다. 파리 여행 중에 비를 쫄딱 맞고 숙소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걸어왔던 날의 기억이다. 한겨울 오리털 패딩의 속까지 서서히 젖어들어 팔꿈치, 어깨, 손목 등 내 살과의 접촉밀도가 높은 부분일수록 촉촉하게 내려앉아 내 몸이 점점 더 습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생경한 감각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파리는 겨울이 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살이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봤던 파리와는 거리가 있겠구나. 낭패였지만 그래도 살짝 아쉬운 정도였다. 파리 여행에 대한 책을 보다 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우산을 잘 안 쓰기 때문에 우산을 잘 팔기도 않거니와 팔더라도 아주 비싼 가격이니 번거롭더라도 꼭 한국에서 준비해 가라는 내용이 여러 번 보였다.
캐리어에 넣어가는 것이긴 했지만 우산을 가져가야 하다니 인원수만큼 다 가져갈 것인가 더 적게 가져갈 것인가, 장우산을 가져갈 것인가 접이식을 가져갈 것인가. 이런저런 소소한 고민과 결정을 겪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거추장스럽고 짜증이 났다. 아마도 우기라는 사실 때문에 오는 실망감이 더 컸으리라. 결국 탈모문제에 예민한 남편과 타고난 촉각이 워낙 섬세한 딸, 그리고 비를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나. 이 세 사람 각각을 위한 접이식 우산 3개를 모두 다 챙겨서 가져가기로 했다. 셋 다 같이 쓴 우산으로 인해 자신의 걸음이 방해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챙겨 온 우산 3개는 파리에 도착한 둘째 날부터 필요했다. 흐린 날씨 탓에 우산 3개를 챙겨 나와서 다니다가 비가 오면 쓰고 안 오면 접고 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보니 정말 비가 와도 아무렇지 않게 맞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특히 미니스커트에 가죽재킷을 입고 반투명 스타킹을 신고 징이 박힌 부츠를 신은 여자분이 우산 없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내 우산을 씌워주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저렇게 멋스럽게 차려입고도 비를 맞는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며칠 지내보니 파리의 비는 부슬부슬 내리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는 등 우리나라의 비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또 다른 사람들이 다들 비를 맞고 다니니 우리도 그게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파리 시내 교통 파업으로 인해 걷는 시간이 길어져 저녁엔 피로감이 클 거라는 게 예상되었고 소매치기 등에 대비해 짐을 최소화해야 했기에 우리는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우산을 숙소에 놓고 다니게 되었다. 첫날은 3개, 둘째 날은 2개, 셋째 날은 1개. 점점 줄어들다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날도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그냥 패딩잠바에 달린 모자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는 듯했으나 마레지구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숙소 근처로 이동을 먼저 하자고 의견을 통일하고 우버를 호출했으나 불발되기를 여러 번. 결국 왔던 길을 더듬어가며 숙소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오다 말다 하겠지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그 속도와 무게가 가속도가 붙어 커지기 시작했다. 비다운 비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 주로 경험하던, 우산을 쓰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던 바로 그 빗방울을 파리에서 만난 것이다.
우산이 없는 우리는 그냥 그 비를 온몸으로 맞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비를 홀딱 맞는 세 사람. 어두워서 중간에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더 긴 시간을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도 그랬는지 우리 중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비가 와서 어쨌다는 둥, 우산을 안 가져가서 어쨌다는 중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우리 셋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숙소의 옷걸이에 젖은 외투를 나란히 걸어놓고 양말을 벗어 빨고 신발을 벗어 말릴 뿐이었다.
그냥 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고 결국 온몸으로 그 결과를 맞이했지만 시간이 지나가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고 나니 할 만한 경험이 되어 있었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비극이나 위기의 한계영역이 아주 살짝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 또 이렇게 장대비를 우산 없이 맞으며 걸어보겠나, 그것도 이 아름다운 파리의 골목골목을. 그리고 비 좀 맞는다고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옷이 좀 젖고 축축해졌을 뿐. 진심으로 괜찮았다. 비라면 질색을 하고 옷이고 뭐고 축축해져서 너무 싫다던 아이도 아무 말 없이 그냥 그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테러와 파업에 비가 수시로 오는 이 시기에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런 삶의 진리 하나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을까? 예상치 못한 작은 시련 속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긍정적으로 헤쳐 나온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날 우리 가족은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