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함께하는 것이지만 혼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빈손으로 시작한 내향적 3인가족의 열흘간 파리자유여행기

by 전민재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남편은 전형적인 패키지형 관광을 좋아한다. 유명한 장소에 가서 ‘나 여기 왔다 간다’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혼자 셀카봉에 핸드폰 카메라를 장착하고 수백 장은 족히 될 것 같은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여행지의 모든 것을 깊이 들여다보고 숨 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행 전에 최대한 많이 공부하고 그중에서 나와 내 일행들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질 만한 곳이 어디인지 미리 의사결정을 해서 둘러보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좀 더 많은 것을 여유 있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먹는 것과 강아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기념품. 막상 도착했을 때는 누구보다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를 좋아했다. 거기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닌 부분이 있었다.



여행이 절반을 지난 여섯째 날에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20년 전 파리에 왔을 때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터라 내게는 꼭 들러야 하고 또 충분히 제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곳이었다. 남편과 딸아이에게는 그냥 낯선 나라에 있는 미술관일 뿐이었고.



우리는 즉흥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미술관이 문을 여는 9시 30분에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하여 먼저 감상을 시작하고 두 사람은 느긋하게 준비가 되는대로 나오기로.



혼자서 파리 9구에 있는 호텔을 빠져나와 7구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까지 40분 정도를 걸었다. 큰소리를 치고 나오긴 했지만 우리 동네도 아닌데 혹시라도 가다가 돌발 상황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심장이 두근두근 혼자서 뛰기 시작했다. 사실 두근거림은 파리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의 조화로운 풍경을 혼자서 걸으며 오롯이 느끼고 보느라 생긴 설렘 때문이기도 했다.



구글맵도 보면서 길을 찾느라 눈을 잠시도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몽마르트르 거리를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에 오페라 가르니에가 보였다. 조금 지나 튈르리 정원의 입구가 보이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파리를 산책한다는 여유로운 기분이 되었다. 정갈하고 눈부신 정원의 한가운데 난 길을 따라가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나니 어느새 오르세 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뮤지엄 패스로 입장을 한 후 곧장 꼭대기 층인 5층으로 올라갔다. 햇볕이 드는 오전시간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고 나는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그림들을 여러 번 돌아가며 볼 수 있었다. 고흐, 르느와르, 고갱, 모네, 마네, 세잔.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그날은 유독 화면의 아래에 있는 두 사람에 눈길이 가면서 그들의 슬픈 감정이 별빛과 함께 그림에서 쏟아지는 것 같았다.



5층에서 한 시간쯤 있었을까. 남편과 딸아이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미술관의 1층에는 단체 관람을 온 학생들이 저마다 스케치북을 들고 자유로운 자세로 조각품이나 미술 작품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드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드가의 작품 앞에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중년의 파리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고 보니 예술인은 파리의 미술관과 뮤지엄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존중이 남다른 것 같았다.



내가 원한 오르세 미술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딸아이가 원하는 베트남식당에서 쌀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남편이 가보고 싶어 했던 곳,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군사박물관에 들른 후 그날의 일정을 마쳤다. 이 모든 일정을 걸어서 소화하느라 그날 우리는 3만 보 가까이 걸었다.



따로 또 같이. 여행을 통해서 개인의 욕구를 존중하면서 함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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