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군자동 산책길

자연 친구들과 함께 걷던 동네 산책길

by 지경


군자동과 처음으로 친해진 순간


2000년 가을, 군자동에 정착을 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여기는 태어난 고향이긴 한데 워낙 어릴 때 이곳을 떠난 터라,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추억은 많지 않은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정겨운 고향보다는 새로 적응을 해야 하는 낯선 동네에 더 가까웠지요. 더구나 한참 풀리지 않는 진로문제와 인생문제로 화가 가득 차 있던 20대 청춘이 동네란 공간이 건네주는 낭만과 푸근함을 느끼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사를 온 그 이듬해 봄, 엄마가 마당에서 물을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비가 날아들어와 우리 집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집 지을 공간을 찾다가 그냥 가버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아무 감흥 없이 한 귀로 흘려보낸 얘기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엄마는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을 저는 그렇게 마음을 닫고 둔한 감각으로 놓치며 살았습니다.


환경교육을 시작하고 자연주의를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걷는 동네 산책을 시작하면서 군자동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굳어있던 마음이 풀리니, 닫혀 있던 오감이 조금씩 열리며 동네 모습이 보이고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저녁, 옥상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동네가 제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13년이란 시간이 걸린 끝에야 동네가 주는 편안함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고향을 되찾았습니다.


처음으로 군자동 밤하늘을 올려다본 날, 금성



군자동에서 만난 야생동물 친구들


출퇴근길, 산책길, 혹은 볼 일이 있어 동네를 거닐 때마다 늘 카메라를 챙겨 들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깜짝 만남을 기대하며 걸어 다녔습니다. 말 그대로 일상이 여행 같은 순간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도심 한복판 동네치고는 꽤 다양한 동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참 자취를 감추어가다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새 친구, 동네 곳곳에서 자주 마주친 멧비둘기와 직박구리, 그리고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동네 하늘을 날아다니던 큰부리까마귀 모두 좋은 동네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집에서 보이는 세종대학교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황조롱이 부부 이야기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차산 쪽에서 사냥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마리가 반갑게 짝을 맞이하던 장면에서 부러움 아닌 부러움도 느끼기도 했지요.


2015년 봄 그동안 사리진 줄 알았던 제비를 동네에서 처음 만난 그 순간은 서울살이에서 느꼈던 가장 반가웠던 만남 중의 하나입니다. 출근길에서 제 발걸음을 멈춰 세웠던 오색딱따구리와 생쥐 녀석, 늦은 밤 퇴근길에 갑자기 제 앞으로 뛰어들어와 깜짝 만남을 선물해주었던 장수풍뎅이, 이따금 머리를 식히러 찾은 세종대 캠퍼스에서 만난 왜가리 친구들 등 모든 순간이 제 마음속 일기장에 남아 있는 멋진 만남의 순간입니다.


군자동 야생동물 친구들



군자동에서 만난 꽃 친구들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발밑에 놓인 세상을 들여다보며 걷는 산책길도 재미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흘려보내기 쉬운 야생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산책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화가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개미자리와 같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이 흥미로운 여행길로 바뀌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지요.


흔한 친구들이라고 해서 반가움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해가 바뀌고 다시 때가 되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순간과는 또 다른 설렘이 가득한 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회색 도시 한 복판에서 굳세게 자리 잡고 살아가는 야생 풀꽃 친구들은 제가 흔들릴 때마다 위로를 건네주던 좋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동네 곳곳에 심긴 원예종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 역시 좋은 배움의 순간입니다.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삼국유사 선덕여왕 편에 등장하는 모란꽃도 처음 봤고, 옛날 시계가 없던 시골에서 저녁밥 짓는 시간을 알려줘 시계꽃으로 불렀다던 분꽃도 만날 수 있었지요. 조카들과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어느 집에서 기르던 수세미와 조롱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도, 계절 따라 꽃 따라 찾아들던 여러 곤충 친구를 만나던 기억 모두 동네 산책길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군자동에서 경험한 꽃 친구들



군자동에서 바라본 하늘 풍경을 회상하며


누가 군자동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멋진 해넘이와 저녁놀을 볼 수 있는 동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군자동 화양사거리에 가면 날씨가 좋은 날 남산타워도 볼 수 있는 한 지점이 있습니다 해 지는 시간대만 잘 맞추면 광장 의자에 앉아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져 가는 해넘이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시장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흔한 저녁해도, 구름 사이로 햇살이 하늘로 향하는 특별한 순간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멋진 군자동 하늘 풍경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여행자처럼 살면서 낯설었던 동네를 진짜 고향으로 만들었던 그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일상을 여행자처럼 살았던 그 시간들, 군자동"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군자동 하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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