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친구들과 함께 걷는 동네 산행길
광진구를 대표하는 아차산은 역사를 품고 있는 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외곽에 위치한 외사산 중 동쪽을 대표하는 산으로 말 목장과 군사훈련장소로 쓰이던 곳입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를 정복하던 시절 군사거점으로 이용했던 아차산성과 고구려 보루가 유적으로 남아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광진구에 터를 잡은 이후 아차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첫 등산길을 나선 것도 이런 역사 배경이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내서를 읽으며 역사유물을 관람하거나 아니면 정상에 올라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는 정도가 당시 아차산을 경험하던 전부였죠. 생태기행을 시작한 초창기 시절에도 아차산을 어떻게 만나고 봐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분전환 삼아 나섰던 어느 일요일 산책길에서 막혀있던 물꼬가 트이듯이 아차산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생명의 흔적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산길에서 조금 떨어진 쓰러진 고목 옆에서 진노랑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노랑망태버섯을 발견했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신비롭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 눈 앞에 갑자기 등장해 먹이활동을 보여주던 청서도 아차산에서 시작한 첫 만남 추억입니다. 이 날 이후 아차산은 틈만 나면 찾게 되는 생활 일부이자 다양한 가르침을 던져주었던 좋은 학습장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차산 생태공원은 본격적인 아차산 생태관찰에 앞서 자연을 보는 눈을 연습했던 장소입니다. 이곳에 조성된 우리 꽃과 나무 이름과 개화시기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그동안 몰랐던 존재들을 익히고 또 익혔지요. 그리고 생태공원 곳곳에서 야생화도 만나며 식물생태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갔습니다.
여기서 다양한 생명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종을 만났던 여러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외래종 민들레가 아닌 토종민들레를 난생처음 본 순간, 층꽃나무와 병아리 꽃나무를 처음 만났던 순간, 엄마한테 말로만 듣던 까마중 꽃과 열매를 처음 발견한 순간, 그리고 가을 산속에서 붉게 익어가는 가막살나무 열매에 대한 배운 순간 등이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배웠던 '처음'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나름대로 경험을 쌓고 나자 산행을 하는 도중에 자연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산길에서 작은 무당벌레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도심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어리대모꽃등애도 흘려보내지 않고 발견할 수 있는 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솝우화에서만 이름을 들어왔던 베짱이를 처음 만난 순간은 책에만 존재하던 지식이 실제 경험으로 바뀌었던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식물 친구들 인연 역시 서서히 깊어져 갔습니다. 아차산성을 벗 삼아 바람에 하늘거리던 주황색 나리꽃을 비롯해 길섶에서 저랑 숨바꼭질하던 풀꽃 만남도 소중했던 인연 중의 하나입니다. 깊은 산중에서 열매의 짠맛을 이용해 소금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붉나무를 만나고 사진기록으로 남긴 순간은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산행 추억입니다.
산에 가면 꼭 산 정상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을 만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생명과 자연풍경을 온전히 느끼는 산행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살이를 마치기 전 가르침을 얻은 곳이 바로 긴고랑 계곡입니다.
긴고랑 계곡은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가 와야 물이 흐르는 건천이라 제 모습을 보려면 때를 잘 맞추어 가야 합니다. 긴고랑을 찾아갔을 때는 이런 정보도 모른 채 찾아가서 자칫 운이 나빴다면 긴고랑 계곡이 지닌 진면목을 못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제가 긴고랑을 찾은 날 물 흐르는 긴고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고랑 계곡물이 건네주는 고요함과 평온함이라는 선물을 온몸으로 느꼈던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아차산을 대했습니다. 늘 가까이에서 아차산을 바라보면서도 이 산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차지했던 중요한 순간과 의미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그러다 운 좋게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이 곳을 소중한 인연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차산이 허락하는 만큼, 제가 볼 수 있는 만큼 경험을 쌓아가며 아차산에 대한 이해를 서서히 높여갔던 동네 산행길이었습니다. 아차산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상상하며 걷던 시간, 아차산이 품고 있는 생명을 만나던 순간, 그리고 아차산에 스며있는 소소한 산행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갔지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후회나 아쉬움 없이 소중한 장소로 이 곳을 기억합니다.
"산과 친해지는 과정을 체험하고 배웠던 순간, 아차산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