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에서 만난 자연 친구들
어린이대공원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 공원입니다. 2006년에 입장료가 없어진 이후로는 더더욱 부담 없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어린이대공원이 가진 매력을 모르던 시절엔 그곳은 제 일상과 거리가 먼 장소에 불과했습니다. 이따금 조카들이 집에 놀러 갈 때 한두 번 가는 정도였으며, 그마저도 그 안에서 뭘 해야 하지 몰라 의미 없이 걷다가 되돌아오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옆에 두고도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어린이대공원이 어느 한순간 180도 다른 느낌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아차산에 올라가 서울 곳곳을 내려다보는데 드넓은 회색 공간 한복판에 떠 있는 작은 녹색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넓은 도시 면적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저 정도라도 녹색공간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 순간 얼마나 고맙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왜 이제껏 저 공간을 놓치고 살아왔을까 하는 부끄러움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어린이대공원 진짜 모습을 보고 나니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지속가능발전 강의를 하면서 도시숲이 지닌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왔으면서도, 진작 제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보물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내왔습니다. 늦었지만 어린이대공원이 가진 진면목을 다시 알고 나니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어린이대공원을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10월부터 어린이대공원에서 자연친구들을 만나는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과 평범한 공원 풍경만 보였었는데 자연에 대한 눈을 키워가며 이 곳을 걷다 보니 이 곳이 단순하게 우리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야생동식물을 만나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공간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년 10개월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다양한 야생동식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의미 있는 친구들이 바로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서울시보호종 친구들입니다. 서울시가 도시화로 인해 급속히 사라져 가는 야생동식물을 보호종으로 지정한 제도인데 이 곳 어린이대공원에서 상당수의 서울시보호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산책길 도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제 사진을 허락해 주던 그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생명과 공존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지요.
아차산에서 어린이대공원을 내려다보며 느꼈던 점은 회색 공간에 둘러싸여 있는 위태위태한 작은 녹색 섬이었습니다. 언제 말도 안 되는 개발정책이 들어와 없어질지도 모르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공간이라고 할까요? 야생동식물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공간은 아니지만 그나마 보존되어 있는 최소한의 환경 속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시보호종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삶이 오래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어린이대공원 공간이 잘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자연 친구들과 함께 걷다 보니 제 마음의 눈도 함께 넓어져 갔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연 친구들을 사진에 담기에 급급한 '또 다른 중독'에 빠질 수 있는데, 다행히 그 위기를 넘기고 생태사진에 대한 집착 없이 어린이대공원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산책길을 걸으며 어린이대공원 사계를 맘껏 즐겼습니다.
봄이 되면 어린이대공원 구석구석 숨겨진 둘레길 코스를 걸으며 봄꽃 향기를 한껏 만끽합니다. 여름이 되면 온갖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푸르디푸른 나무 숲길 사이를 걸어봅니다. 가을이 되면 어린이대공원 역시 화려한 단풍색으로 옷을 갈아있는데, 그 화려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것이 가을 산책길의 매력입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나면 세상은 갑자기 하얗게 변해버립니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차가운 겨울 공기가 전해주는 청량함을 느껴봅니다.
그 외에도 어린이대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숨겨진 비밀 공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파가 많이 몰려 북적거릴 때면 잠시 사람들을 피해 그 속에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거나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자연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때론 책 한 권을 읽으며 그 장소에 머무는 산책길을 즐기곤 했지요. 그렇게 저만의 방식대로 즐기던 그 순간들로 인해 어린이대공원은 어릴 적 읽었던 '비밀의 화원'과 같은 고마운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녁 해가 질 무렵이면 사람들은 집에 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해집니다. 동네 주민이 좋은 점은 서두를 필요 없이 어린이대공원을 찾아오는 저녁 풍경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지요.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벤치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저녁 산책을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평소보다 더 화려한 멋진 저녁노을이 만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해가 넘어가며 어둑어둑해지는 순간에 예측 불가능하게 찾아오는 선물이라 말 그대로 복불복입니다. 알아차리느냐 그냥 지나치느냐의 문제였지요. 운 좋게 그 순간을 몇 차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대공원 저녁 풍경을 떠올릴 때면 진한 와인색으로 붉게 물들던 하늘 모습이 마음속으로 먼저 그려집니다.
그렇게 어린이대공원 공간 하나하나에 생태 경험과 자연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언제 다시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지만 꼭 다시 한번 찾아가 보려 합니다. 그때까지 그곳이 잘 보존되고 자연친구들 역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희망합니다.
'회색 도시 속에서 허파 역할을 하는 생태숲'
'야생동식물이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생태공원'
'바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비밀의 화원, 어린이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