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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훈 Dec 28. 2021

어쩌면, 내 20대와의 조우

40이란 숫자가 저 앞에서 다가오는 겨울 밤. 아 내년에도 아직은 30대란데 안도하고 동시에 그 숫자가 주는 무게의 비현실성에 몸서리 치던 밤. 전화가 울렸다.


아마 20대를 걸고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아마 20대에 날 울린 여러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 20대를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 한다면 난 내 20대의 태반은 그에 빚졌고 나머지 반은 그를 흉내내거나 따라잡으려 한거라 할 것이다. 내가 가족 아닌 사람으로 몇 없이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 형, 그 형 등을 보고 따라 걷는게 참 든든했던 형. 내겐 길이였고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사표였다. 20대 C급 빨갱이 운동권의 삶 구석구석에 어느 가을에 처음 본 그의 존재가 남겨져 있다.


어느순간 부터 뜸해졌다. 사랑이 식었느냐 한다면 아닐것이다. 여전히 난 그의 인지와 별개로 그와 쌓아온 세계의 중력 속을 공전하고 있다. 궤도의 각도가 조금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영전히 큰 틀로 그 궤도 위를 나르고 있다. 그저 조직에 대한 입장과 고민이 달랐다. 서로가 하는 충성과헌신의 방향이 달랐다. 가운데 있는 이들과 내 관계의 어려움이 그 갈등으로 그냥 그 공간과 결별하면서 그 사랑은 무거운 그리움이 되었고, 아련한 물음표가 되었다.


그렇게 몇년, 연락 해볼까? 연락 하자. 어? 어..? (일년 지남) 다시...연락 해볼까? 어...어....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안부는 그 사이의 여러 연들...(그 가운데 내 30대를 설명하는 제일 중요한 사람 중 한명인 영민햄이 있다.)들에게 왕왕 들을 뿐. 어느 늦가을, 경대 서문 어느 식당 담벼락에서의 짧은 통화는 어색함으로 가득했다.


그랬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내가 지금은 사라진 영대 앞 분식주점에서 찍은 소주 두병을 외치는 그의 주름진 웃는 모습이 내 화면에 떴다. 우리는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그리움일까 미움일까 사랑일까 아픔일까 혹은 그것들이 뒤섞인 마음일까. 같은 마음일까? 조금 다른 온도일까? 여튼 난 왈칵 하고 울어버렸다. 그냥 그 목소리를 듣는다는 그 자체가, 아마 나도 그도 변하고 달라졌지만 여전히 고마웠고 반가웠고 그 차분한 열기가 맘을 채웠다.


형을 아마 다시 만간에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 그저 예전 이야기 안주로 2시간 술 먹는 그런건 하지 말자 했다. 뭘 해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 20대를 설명하는 제일 중요한 사람, 그저 부지불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이 된 그 형 목소리를 들은것만으로도 그저 맘이 좋다.


이 관계에 새로운 국면이 열릴지, 새드엔딩일지 해피앤딩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난 밤의 내 마음을 이렇게 기록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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