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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25. 2022

이번 주에 집 보러 온대.

<나의 아줌마 관찰기>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 가족의
개인사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가족사이기 바란다.

-최인호<신혼일기/1984>



전셋집에 산다.


재계약 당시 임대인은 “집을 내놓을 건데 보러 오면 잘 좀 부탁해요.” 라며 매매 의사가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계약 기간 내내 무탈한 생활이었다. 집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레 발생하는 소모나 고장을 군소리 없이 처리해주었다. “나는 임대인이고 너는 임차인이야” , “이런 건 사전에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 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얼굴 붉힐 일들이 애당초 없었다.


아랫집과의 궁합도 무난했다. (이거 매우 중요하지 않나요?) 이사 온 지 일 년 정도 됐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이웃을 처음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 많이 시끄럽지는 않나요. 애가 조심하고는 있는데.” 조심스레 여쭈니

“네? 전혀 모르겠던데 새로 이사 오셨나요? 저희는 집에 거의 없어서 괜찮아요.”라고. (이 여유 무엇?)


전세지만 이 집으로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인과 아랫집 부부의 건강과 가내 평안을 진심으로 바랐다. 저절로 감사가 퐁퐁 솟아났다.


아랫집 옆 라인으로 신혼부부가 새로 이사를 왔을 때도 기억난다.

여덟 시쯤 저녁 먹고 일어서려고 하는 찰나에 ‘딩동’벨이 울려 나가 보니 웬 선남선녀가 서있었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나 싶었는데 “아랫집인데요 새로 이사와서요. 인사드리러 왔어요.” 하고 떡보따리를 내밀었다.


다정한 이웃


떡보따리를 넙죽 받아 들고 (오예) 또 아랫집 옆라인 부부의 건강과 행복을 또 빌었다. (기도제목 추가요) 다음날 금색 떡보에 예전에 대량으로 맞춘 하얀 수건을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고 돌아왔던 기억.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타고 내리며 인사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저씨도 어린이도 마찬가지.


집 앞 놀이터에서 낙서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입에 담기 힘든 그런 낙서가 아니고, 귀엽고 귀여운 낙서들을 발견하면 이 동네 꼬마들에 대한 애정이 한 뼘 더 자라났다.

바보에게 바보가
효자 올림


돌아보면 좋은 기억들이 많다. 이곳에서 평범하고 불편 없고 소소한 생활이었다. 이걸로 족하다.


이번 계약이 만료되면 이사 예정이라 집주인에게 실로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집 보러 갈 거예요.”


거의 이박 삼일에 걸쳐 대청소를 했다. 거길 누가 본다냐 싶은 곳도 (어허 내가 보지 않은가? -미켈란젤로처럼.) 베이킹 소다 푼 매직 스펀지로 닦았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새집 같다 야” 할 정도로 쓸고 닦고 때 빼고 광을 냈다.


드디어 집 보러 오는 날 당일.

연일 이어진 장마에 혹시 모를 불쾌한 꿉꿉함까지 제습기로 날리고, 라벤더 향에 좋은 음악까지 틀어놓고 손님을 맞이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오십 대 부부였다.

“집 좀 볼게요.” 하고 현관을 거쳐 바로 있는 화장실, 작은방1, 작은방2, 거실과 부엌, 다용도실, 안방과 화장실, 드레스룸, 베란다까지 쭈욱 동선을 따라 살펴보는데 10분 정도 걸렸나. 십 분도 채 안 걸린 것 같다. 모르겠다. 긴장 탓에 시간을 감지하는 감각이 약간 왜곡된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빨리 보고 나가셔서 “뭐야 안 팔릴 것 같은데.” 했건만? 두둥


그날 오후, 매매 계약하기로 했다고 임대인에게 연락이 왔을 때, 볼링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친 것 같은 이 유쾌함!  볼링핀이 다다다 부딪히며 촤라라 넘어가는 경쾌한 기분!


우리집도 아닌데 웬 오바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집이 새 주인을 찾게 돼서 기분이 좋은 건 왜일까? 그간 별 탈 없이 살았던 이 집에 대한 감사와 잘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일까.


자가가 아니고 전세인들 어떠하리. 어디에서 살든 내가 사는 공간은 이미 나의 일부인 것을.

나의 일부였던 이 공간을 새로운 주인에게 무탈히 넘겨줄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다.


부산 아지매요. 행복하이소. 우리집 지인짜 괜찮아요.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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