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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30. 2019

카메라로 순간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수동 렌즈를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꼭 배경만이 아니라도 어딘가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사진에는 켜켜이 쌓여가는 기억의 한 조각을 떼어놓은 듯한 매력이 있다. 그런 흐릿함은 분명 뭐든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시선을 닮았고, 요즘 찍은 사진들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숨쉴 듯 모든 부분이 선명하고 완벽한 사진이 아니라, 그렇게 똑똑치 못하고 묘하게 흐리멍텅한 녀석들이다. 어떤 사진가는 ‘달력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나보다 멋지게 잘 찍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나까지 그렇게 찍는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이해가 된다. '정경을 어떻게 자르고 어디에 초점을 집중하는가'가 사진을 자연스러운 나의 시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1600만 화소 정도는 우습고, 조리개 값도 f1.8쯤은 기본이다. 덕분에 이제 ‘카메라’ 같은 것은 아무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잘 나오니 굳이 카메라를 사지도 않고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것이다. 피쳐폰 시절에는 집안에 카메라 하나 정도는 있는 게 당연했는데, 정말이지 기술의 발전은 느림보를 배려해주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추세가 계속되니 카메라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나도 꽤 오랜 기간 카메라 따위 쳐박아 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만 써서 여기 동의하는 편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미러리스 카메라를 새로 사게 되었다. 


그 ‘어쩌다 보니’의 구체적인 경위를 말하자면 이렇다. 피처폰 시절에는 카메라를 따로 잘 썼다. 그러다 아이폰을 쓰게 되면서 몇 년간 카메라 따위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어느 여름에 놀러 갔다가 아이폰 6s의 카메라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 년에 몇 번 돌아오지도 않는 여행의 추억을 칙칙한 저화질로 남기는 것은 너무나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그리고 애플의 고가 정책에 넌더리가 나서) 사진이 잘 나온다는 화웨이 P9으로 갈아탔다가, 이 역시 저조도에서는 엉망이라는 것을 깨닫고 카메라를 지르게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애초에 카메라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멍청하게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아무튼 그럴듯한 카메라를 다시 쓰면서, 나는 스마트폰이 있다고 카메라 따위 필요 없게 되진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직까진 스마트폰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완벽히 사진에 특화된 장비인 카메라를 100%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짜 카메라, 그러니까 DSLR이나 미러리스로 찍은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혹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별 조작을 하지 않고 찍은 사진은 접사가 아닌 다음에야 가까운 것이든 먼 것이든 거의 선명하게 나온다. 센서가 작으니 아무리 조리개값이 낮아도 한계가 있는 탓이다. 물론 요즘은 그 한계를 벗어나 물체의 거리를 파악하고 AI기술로 배경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지만, 아직까진 이것들도 유심히 살펴보면 티가 난다. 인물의 머리칼 같은 부분까지 한꺼번에 배경 취급 당해 날아가기도 하고, 그럭저럭 가까운 배경부터 아주 먼 배경까지 일관적으로, 마치 간유리 너머로 보는 것처럼 뿌옇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진을 큰 화면으로 확대해서 보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색깔이 어딘지 모르게 좀 덜 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색깔의 스펙트럼이 희미하게 부족한 것 같고, 뭔가 픽셀을 홍두깨 같은 것으로 잘 눌러서 주변으로 펴 바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선예도를 지나치게 높여서 테두리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좀처럼 느끼기 힘들지만, 미러리스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미러리스 카메라 쪽이 맑고 투명하고 색상이 차분하다는 게 제법 잘 보인다. 아무리 기막힌 기술을 써도 센서와 렌즈의 크기에서 오는 광학적인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한 걸음 모자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전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제 카메라 따위 쓸모없다고 카메라 사진과 스마트폰 사진을 비교하는 자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을 보면 나도 좋은 폰이나 사는 게 나았을 거라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솔직히 100퍼센트 구분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사실 카메라로 찍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찍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진에 맞춰서 샘플을 만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라 공정한 대결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제한속도가 시속 80킬로인 도로에서 승용차와 레이싱카를 대결시켜 놓고 레이싱카 따위는 승용차로도 거의 따라잡을 수 있으니 이제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전경, 중경, 원경을 완전히 구분해서 중경만 잘 나오게 하는 게 쉽지 않다. 수동으로 조절해서 엇비슷한 시도는 할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사람의 왼쪽 눈만 초점이 맞고 오른쪽 눈은 흐릿하게 나오도록 하거나, 키보드의 키 두어 개만 또렷히 찍히도록 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의 최고 수준에 맞춘 사진들은 무엇으로 찍었는지 구분할 수 없지만, 카메라의 최고 수준으로 찍은 사진은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근경과 중경, 원경을 구분해서 찍는 것이 반드시 더 가치있고 멋진 사진도 아니고, 그렇게 찍지 않으면 무슨 손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진이라는 건 보통 선명하게 기억하려고 찍는 것이니 당연하다. 게다가 요즘은 사진을 인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기껏해야 7인치쯤 되는 화면으로 길어야 3초쯤 볼 뿐이니 스마트폰으로 찍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아쉬운 부분 같은 것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요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그리고 카메라로만 구현할 수 있는 부분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사진 찍는 것 말고 아무 기능도 없는 기기를 큰 돈 들여 따로 살 필요는 없는 게 맞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말도 있고. 


그러나 굳이 미러리스와 수동 렌즈를 산 나는 지금 바로 그 ‘카메라로만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의 매력에 빠져있으니, 이는 다름아닌 '낮은 조리개값으로 인해 흐려지는 부분’이다. 흔히 카메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 배경흐림에 열광하는 법이라고들 하는데, 나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그 배경흐림을 스마트폰에서 구현하기 위해 혹사당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배경흐림은 분명 아름답고 열광할 만하다. 

 


카페 tokki에서 찍은 사진. 그리스 같은 멋이 있는 카페였다. 그리스는 안 가봤지만 그럴 것 같다


수동 렌즈를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꼭 배경만이 아니라도 어딘가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사진에는 켜켜이 쌓여가는 기억의 한 조각을 떼어놓은 듯한 매력이 있다. 그런 흐릿함은 분명 뭐든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시선을 닮았고, 요즘 찍은 사진들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숨쉴 듯 모든 부분이 선명하고 완벽한 사진이 아니라, 그렇게 똑똑치 못하고 묘하게 흐리멍텅한 녀석들이다. 어떤 사진가는 ‘달력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나보다 멋지게 잘 찍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나까지 그렇게 찍는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그 말도 이해가 된다. '정경을 어떻게 자르고 어디에 초점을 집중하는가'가 사진을 자연스러운 나의 시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익선동의 한 카페. 선명한 부분이 별로 없지만 묘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다


수동 차량을 모는 게 자동 차량을 모는 것보다 즐겁다는 말이 있듯이, 수동 렌즈는 자동 렌즈에 비해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더하다. 내가 초보인 탓도 크겠지만, 자동 렌즈를 사용할 때는 아무래도 초점이 정확히 어디에 맞는지, 심도는 어떻게 되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마구 셔터를 눌러대게 된다. 반면에 수동 렌즈를 그렇게 다뤘다간 일단 멀쩡히 건질 수 있는 사진이 극히 드물어지기 때문에 매번 조리개를 체크하고 심도를 조절해서, 마치 그 사진을 다시 찍으려면 돈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신중을 기하게 된다. 당연히 더 나은 사진이 남은 것은 그렇게 신경을 썼을 때다.  

물론 자동 기어는 심심해서 도무지 못 쓰겠다는 어르신들도 지금은 자동 기어 차량을 모는 것처럼, 나도 조만간 수동 렌즈따위 불편해서 쓸 물건이 아니라는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경을 써서 찍은 사진에서는 시간의 정수나 영혼의 일부 같은 것을 얼마간 느낄 수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신경 써서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는 무슨 렌즈가 되었든 적어도 카메라를 쓰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내 의견 또는 자기 합리화다. 누구나 별 신경 쓰지 않고 사진을 쉽게 찍게 만드는 것이 기술의 목표니까 이것도 결국 언젠가 잊혀질 소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서늘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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