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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n 15. 2022

인싸는 아니지만 셀카를 찍곤 합니다

셀카(셀피)를 자주 찍는 편이다. 좋아하는 편이라고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셀카라는 행위의 이미지로 인싸+ 여성적+자아도취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셀카는 꼭 외향적이며 인스타그램 하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찍으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만이 시대에 뒤쳐진 편견을 가진 것이면 참 좋겠지만, 얼굴이 나오는 셀카를 찍자면 주변 남자들이 ‘사진은 뭐하러 찍어’, ‘웬 셀카를 찍냐’ 등으로 유난이라는 반응이니 셀카는 ‘남자들끼린 굳이 안 해도 되는 짓’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좀 다를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 주변 남자들 사이에선 그렇다. 하기야 나도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 기간이 길어서 이해는 한다.

대학교 1학년 극초기에 선배들과 롯데월드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신기한 마음에 기록용으로 셀카를 여러 장 찍었는데, 그걸 본 선배가 “너 셀카 되게 좋아하는구나?”라고 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세상에, 내가 셀카를 좋아한다고? 지금이야 아무렴 어떠랴 싶지만, 그땐 셀카 찍기를 거의 그만두었다.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탓이다.

그 일이 원인이 된 것인지, 나는 오래도록 사진 찍히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남이 찍어줬을 때 별로 그렇게 마음에 드는 꼬락서니로 나오는 경우가 없다고 느낀 탓이다. 다들 자기 생긴 것과 대충 타협하며 적당히 정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때 나는 그런 타협 방법을 잘 익히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20대에는 내 사진이 많지 않다. 심지어 나름대로 열정적인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애인이 나처럼 사진 찍히길 꺼린 탓에 같이 찍힌 사진이 단체 사진과 거울에 찍힌 사진뿐이다. 둘이서 오붓하게 셀카를 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운 일이다. 종국이 어떻든 인생의 몇 페이지인데 사진 몇 장 정도는 남겼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사귀는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다 2018년 여름에 계곡으로 놀러가면서 카메라와 기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당시에 나는 아이폰 6s를 쓰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화질이 아쉬웠다. 인생의 긴 고통 속에서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란 정말 찰나에 불과한데 이렇게 신통찮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도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스마트폰도 사진이 잘 나오면서도 최대한 저렴한 것을 찾아 바꿔대기 시작했고, 사진도 좀 더 많이 찍기 시작했다.

다만 그러고도 셀카는 별로 찍지 않았는데, 2018년말에 ‘내가 살 만큼 싼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에는 한계가 있다’라는 결론 하에 저렴한 소니 미러리스를 장만한 뒤부터 사진의 기조가 바뀌었다. 또 다른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미러리스는 화면이 전면으로 뒤집히는 기능이 있기도 했고 남에게 맡기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했던 만큼 ‘찍는 김에’ 나까지 나오게 찍는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오히려 심경의 변화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조금씩 찾아왔다. 사진들을 비교해보면 내 얼굴이라곤 조금도 안 나왔던 과거에 비해 내 얼굴이 조금이라도 찍힌 날은 기억에 생동감이 넘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나까지 찍힌 날은 자신이 어떤 표정과 감정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는지 아주 또렷하고 선명했고, 의미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과장하면 실체가 있는 날과 없는 날, 영혼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의 차이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카메라맨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등장인물이 아닌 것처럼, 내가 없는 나날의 사진들은 내가 본 광경을 찍었음을 아는데도 나라는 등장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면에 내가 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자신이 이런저런 감정에 시달릴 때가 많을지라도 함께 사진을 찍혀주는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기록에 집착하는 성격이 불러 일으킨 강박의 일종, 심리적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한번 인식해버린 이상 대충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라, 2019년부터는 특별한 장애 사항(주로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면 모임에 나갈 때마다 단체 셀카를 몇 장씩 찍게 되었다. 덕분에 사진첩을 보면 예전보다 표정과 감정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이런 깨달음을 좀 일찍 얻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기록되지 않은 감정에도 의미는 있지만 때로는 나에게 그 의미의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마음만은 항상 미러리스를 갖고 다니고 싶지만, 무게도 그렇고 편이성도 그렇고 여러 문제가 있어서 정말 고화질의 사진을 남길 가치가 있는 곳에 가지 않는 이상 스마트폰만 쓰고 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스마트폰에는 또 스마트폰의 빼어난 장점이 있었다. 아이폰은 ‘라이브 포토’라고 해서 사진 앞뒤로 2초 정도의 짧은 영상이 붙는 기능이 특히 매력적이다. 영상을 찍자면 어째 찍는 쪽도 찍히는 쪽도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기 마련인데, 라이브 포토는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영상이 첨부되니 그런 부담이 없는 데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잘라 넣은 기억의 편린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훌륭했다. 빌린 아이폰으로 이 기능을 한동안 쓰고 나니 그냥 사진만 찍으면 손해를 보는 기분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빌렸던 아이폰을 반납한 뒤로 G8로도 비슷한 기능을 시도해봤는데, G8에선 영상에 음성까지 남길 수가 없는지라 그게 가능한 갤럭시 S10E로 기기를 변경했다. G8의 마이크가 오락가락한다는 것도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중고가와 수리비가 엇비슷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손에 넣은 갤럭시 S10E는 하루하루 큰 부족함 없이 아이폰과 비슷한 ‘모션 포토’를 저장해주고 있다. 이것도 일찍부터 썼으면 더 생생히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을 덜 놓쳤겠구나 싶어 참 씁쓸한데, 지나간 시간을 어쩔 수도 없으니 앞으로 점점 드물어질 즐거움을 열심히 찍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요즘 찍은 사진을 보다 보면 가끔 어두운 곳에서 찍은 것들은 거칠고 부족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대체 어떤 기종으로 바꿔야 좀 나을까 검색해보았는데, 그야말로 최신 기종의 가장 비싼 제품쯤 되어야 전면 카메라 사양이 좀 유의미하게 나아질 모양이었다. 후면 카메라는 새 라인업으로 넘어갈 때마다 바로바로 업그레이드되는 반면에 전면 카메라는 발전 속도가 상당히 늦다. 나처럼 자기 모습까지 찍힌 사진을 사진첩과 일기장에 박아놔야 안도감을 얻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요즘 스마트폰 중에선 접어서 후면 카메라로 외부 화면을 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품인 Z플립이 가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셀카 품질이 월등할 텐데, 한 달에 사진 열댓 장 찍자고 60만원쯤을 투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대안으로 현실적인 것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카메라 컨트롤러로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로 보이는 구도를 확인하며 찍는 것이지만 시계는 스마트밴드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지라 사진 하나 때문에 스마트워치를 쓰는 것도 어리석고 번거로운 짓 같고…….

결국 화질 따지는 버릇을 버리고 적당히 만족하든지, 아니면 후면 카메라로 화면을 보지 않고도 그룹 셀카를 잘 찍는 방법을 연마해야 할 일이다. 아름다운 기억을 보존하는 데에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싶긴 하지만, 화질과 기억의 아름다움 사이에 그려진 그래프, 차츰 완만해지는 그 곡선 위 어느 지점에서 타협하고 나머지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머릿속으로 윤색할 수밖에 없다.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윤색되기 마련이니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야지.(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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