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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Sep 05. 2023

설명서는 읽으라고 주는 겁니다



먼 옛날에 학원 강의실에서 선생님이 시험지 뭉치를 엮은 스테이플러 심 몇 개를 빼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전용 도구가 없어서 모두 교무실에 다녀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서슴없이 나서서 스테이플러를 거꾸로 쥐고 뒤쪽 돌기로 심을 빼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질문에, “설명서에 적혀 있어요.”라고 답했다. 정말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심을 제거할 때 스테이플러 하단 뒷부분의 납작한 돌기를 이용하라는 안내가 박스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내 말에 선생님과 친구들은 대체 누가 스테이플러 설명서를 보느냐고 황당해했고, 나는 설명서 따위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버려진 물건을 여럿 들여다보는 요즘은 그런 경향이 한층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느낀다. 지금 사용중인 로봇청소기도 역시나 주워온 물건인데, 가져올 때는 멀쩡한 로봇청소기를 버릴 사람이 있을 턱이 없으니 필요한 부품만 빼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원을 꽂고 앱을 연동해 보니 이게 웬걸, 아무 문제도 없었다. 심지어 배터리가 노후된 기색도 없었다. 아주 더럽혀져서 먼지통이 뽑히지 않는다는 것만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대체 이걸 왜 버렸을까 한참 고민한 나는, 흡입구부터 먼지통까지 고운 먼지와 머리카락 따위가 달라붙어 있으며 센서 덮개에 흠집이 심하게 난 것을 보고, 사용자가 로봇청소기를 설정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으리라 추측했다. 먼지가 아예 들러붙은 것은 화장실이나 베란다의 물기를 빨아들인 탓이고, 센서 덮개에 흠집이 난 것은 높이가 아주 애매한 가구 밑에 반복적으로 들어간 탓이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거실 바닥에서 분갈이를 하거나 로봇청소기 격투 대회 따위를 즐긴 게 아니라면 그럴 것이었다. 적절한 사용법 설명을 보고 설정만 잘 했더라면 사용자도 만족하고 로봇청소기도 멀쩡히 제 역할을 했을 텐데 비극이 따로 없었다. 결과적으로 주운 내가 이득을 보긴 했지만, 이런 식의 사소한 이득보다는 괜히 버려지는 물건이 적은 세상이 더 반갑다.


비교적 근래에 주워온 필립스 면도기들도 여러번 시험해 본 결과 버려질 물건은 아니었다. 처음엔 면도날 하나가 제대로 돌지 않아서 문제가 있긴 있구나 싶었지만, 그건 순전히 세척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약간 비위가 상할 정도로 체모가 꽉 찬 면도날 부분을 깨끗이 세척하고 재조립하니 완벽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배터리조차 멀쩡했다. 몇 달 내내 세척 한 번 안 하고 사용하다가 회전이 느려지거나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자 내다버린 게 아닐까. 이 역시 샤프 펜슬을 사서 쓰다 심을 채우지 않고 내다 버리는 격이다. 믿고 싶지 않은 사고 방식이다.


그런데 면도기를 좀 시험해보고 한층 더 충격받았으니, 필립스 역시 사용자들이 세척 주기를 까먹는 데에 넌더리가 난 탓인지 대책을 마련해뒀다는 점 때문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라인업의 근래 모델은 몇 번 사용한 뒤에 손잡이 부분에 세척 표시가 점멸한다. 그러면 곧장 면도기를 세척하면 되는 것이다. 필립스의 회전식 전기면도기는 헤드가 분리되니 헤드만 뽑아서 물에 넣고 씻을 수도 있고, 그것도 귀찮다면 면도를 끝내자마자 면도날 부분만 물에 담가도 된다. 중급기 이상은 대체로 샤워하면서도 쓸 수 있게 방수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예 세척 스테이션을 쓰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테지만, 세척 스테이션까지 살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면도기 관리라는 선진적 개념이 머릿속에 있을 테니 스테이션이 따로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 고급 청소기는 무선 청소기든 로봇 청소기든 충전기에 자동 비움 장치 따위가 붙어 있다는 리뷰를 자주 접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있으면 편리하긴 하겠지만, 쓰레기통에 가서 먼지통을 두드려 비운다는 행위마저 전동 기계에 맡길 필요가 있는 걸까 항상 의심을 품었다. 여러 이유로 거동이 불편한 게 아니라면 그 정도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직접 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리를 해주는 기계까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도 요리를 떠먹여주는 기계는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 로봇청소기와 면도기를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세상에는 지적 능력이나 지위 고하와 무관하게 청소기나 면도기를 종종 관리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 물건의 설명서를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 역시 뜻밖에 많다는 사실을 실감한 덕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넓어진 것인데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좀 씁쓸한 심정이다.


(설계도는 제작을 위한 지도고, 설명서는 사용을 위한 지도다)



그러나 얼마 전에는 나 역시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물건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이 충격받고 말았다. 몇 달 전에 신발 수선부터 간단한 목공 작업까지 여러 작업에 쓸 수 있겠다 싶어서 로터리 툴이라는 공구를 샀다. 모터에 사포나 그라인더 등을 끼워 쓰는 이 공구를 이용해서 오래도록 사포질할 작업을 간편히 끝내는 등 나름대로 유용하게 썼는데, 신발장에 칸을 하나 추가하려고 목재를 자르다 기기의 결함을 발견했다. 사포를 아무리 잘 고정하고 요령 좋게 작업해도 힘을 좀 비스듬히 줬다간 당장 사포가 어긋나거나 축이 조금씩 뽑히는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다행히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축이 빠지면 기기도 동작을 멈추긴 하지만, 여차하면 고속으로 회전하는 공구가 얼굴로 날아드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작 몇 천 원 하는 선반을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얼굴을 찢어먹고 싶진 않았다. 그리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름대로 정든 얼굴이고, 작가가 목공 작업 중 일어난 사고로 산재를 적용받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조작을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한 나는 대충 읽고 넘겼던 설명서를 다시 꺼내서 읽어봤고, 의심이 정확했음을 알게 되었다. 사포를 쓰려면 일단 축을 끼우고 전용 스패너로 단단히 고정한 다음, 사포를 끼우고 나사를 돌려서 사포까지 팽팽히 고정해야 했던 것이다. 하기야 단순히 뭘 조이거나 풀거나 때리는 공구가 아니라 고속으로 회전해서 갈아내거나 잘라내는 공구인데 사람 손만으로 대충 고정해서 쓰게 되어 있을 턱이 없었다. 자신의 멍청함에 한탄스러운 한편으로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스테이플러 설명서도 읽던 내가 왜 새로 산 공구의 설명서는 잘 읽지 않았을까? 고민해보니 아무래도 자신감이 과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오랜 기간에 걸쳐 몇몇 도구로 사소하고 잡다한 작업을 해치워 온 탓에 이 정도 공구는 요령껏 써도 될 거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리라. 착각도 정도가 있지, 안전에 직결되는 것까지 대충 넘겼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많은 제품의 설명서가 중요성을 상실해가는 추세라는 점도 설명서를 읽지 않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 업데이트로 기능과 작동법이 바뀌는 제품이 허다해서 종이 설명서가 상당히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이 이 문제의 기저에 있긴 하지만, 여차하면 유튜브에서 찾아보거나 QR코드로 링크를 열어보라는 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지 싶다. 누구나 그런 최신 문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런 사람은 대체 뭘 어디에 물어야 하느냔 말이다.


우리 집에선 보통 제품 설명서를 찾기 쉽게 한 곳에 모아두는데, 이제는 기기를 살 때마다 간략한 설명을 따로 메모지에 적어서 붙여두곤 한다. 버튼 한두개로 모든 기능을 쓰게 만들어놓아서 뭐가 뭔지 기억하기 어려운 기기도 많고 부모님은 눈이 어두워졌으며 나 역시 사용법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죽음을 준비하며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작업이다. 유교 국가에서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확실히 이런 작업을 따라서 하고 있노라면 내가 없어져도 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세상이 갈수록 불친절하게 변하고 있다는 실감도 나서 우울해진다. 적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하고 싶은 작업은 아니다. 기업들이 제품과 설명서를 잘 만들고 설명서를 잘 읽는 문화가 퍼지면 버려지는 물건도 좀 줄고 나도 덜 우울해지지 않을까 싶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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