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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29. 2023

반려 신발 안티에이징

밑창 수명 연장의 비밀



근래에 들어 신발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이 쌓였다. 전에도 이야기했듯, 원래 나는 신발에 큰 관심을 갖거나 신발 관리를 열심히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적당한 신발을 사서 주구장창 하나만 신고, 그 신발이 너무 낡아서 더 신었다간 나의 삶의 질이 낮아지거나, 신발의 모양이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추하다 싶을 때 버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신발 관리와 보수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가 신발을 바꿔가며 신고 구두약도 입혀야지 그게 뭐냐고 잔소리를 했을 때도, 옳은 말이지만 귀찮아서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신발 관리에 대한 인식이 평균보다도 약간 더 낮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신발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수준이었다고 표현해야겠는데, 생각해보니 ‘취급’이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하다. 그때는 신발을 그저 신고 다닐 뿐, 달리 인식하지도 취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드게임은 카드 500장에 일일이 보호 비닐을 씌울 정도로 애지중지하면서도 신발 관리는 안중에도 없는 주인을 만난 가죽 신발 세 결레가 몇 년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갔다.


(애정했지만 아끼지 않은 가죽신)

그런 인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네 번째 가죽 신발인 호킨스 운동화가 심하게 마모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부터였다. 그때 나는 너무나 잘 신고 다닌 호킨스의 보트화를 버린 뒤 새로 산 보트화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발에 안 맞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즐겨 신던 신발 하나가 또 죽어가는 걸 알게 되니 위기감이 닥쳐온 것이다.

그동안 하던 대로 하자면 이것도 대충 신다 버리고 끝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벤트 기간에 심사숙고해서 8만 원이나 주고 산 보트화가 도통 길이 들지 않으니 새 운동화를 사서 잘 신을 자신도 생기지 않았다. 신발이라는 물건의 특수성을 겨우 깨달았다고 할까. 내 발에 잘 맞을 뿐더러 내가 가진 옷, 그리고 나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신발은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죽어가는 운동화의 밑창을 살릴 방법으로 택한 것은 고무 밑창 원단을 사서 붙이는 것이었다. 마음 편히 도전할 작업은 아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무판을 잘라서 본드로 바닥에 붙일 뿐인 일이라 쉽게 성공하긴 했다. 완성된 운동화는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모양도 자연스럽고 발 디딤도 여전히 좋았으며, 접지력도 강했다.

다만 두툼한 고무 한 겹을 추가한 터라 상당히 무거워졌다는 게 심한 문제였다. 가죽인데도 가볍고 편한 게 특장점이던 신발이 워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손도 잘 가지 않았다. 잘 신으려고 고친 것인데 신지 않게 되어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나는 고무 밑창을 가열해서 겨우 뜯어내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에디슨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백열 전구를 만들기 위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다 써봤다고 하는데, 나도 신발 밑창을 튼튼하게 보강할 수 있으면서도 가볍고 접지력이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잡다한 재료를 여럿 써봤다. 다이소에서 파는 미끄럼 방지 깔개, 유리 미끄럼 방지 패드, 네오프렌 마우스 패드, PVC 미끄럼 방지 패드 등등. 그러나 부드러우면 잘 마모되고, 딱딱하면 착화감이 나빠지며, 문제가 없다 싶으면 접착이 어려운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래서야 무슨 소재 공학이라도 익혀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 한탄을 하다 최종적으로 발견한 것이 바로 다이소 실리콘 뚜껑이었다. 값도 싸고 넓어서 잘라 쓰기 편하며, 마모에 강하고 부드러울 뿐더러 접지력도 훌륭하다. 다이소의 실리콘 본드로 접착하면 평지를 걸어다니는 정도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이것이야말로 신발 밑창 보수를 위하여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실리콘 뚜껑을 일자로 여럿 잘라 붙이고 대각선으로 골을 파서 호킨스 운동화에 마침내 새 생명을 부여했다. 가볍고 미끄러지지도 않아서 밑창 보강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 년 넘게 이 상태로 신고 다녔지만 실리콘 조각이 몇 개 떨어졌을 뿐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신발을 구경하다 값비싼 신발은 밑창에도 멋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밑창을 누가 본다고 멋을 내나 싶었지만, 가만히 남들을 보니 사람이 걸을 때 밑창이 잠깐씩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터라 미관에 신경을 쓰는 게 분명 의미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접지력만 생각하고 하얀 실리콘 조각을 되는대로 갖다 붙인 호킨스 운동화는 없는 솜씨로 아무렇게나 보강했음을 걸음마다 자랑하는 꼬락서니나 다름없었다. 나만 잘 신으면 그만이라고 넘어가기엔 나 자신부터 밑창의 모양새가 마음에 안들었던지라 지퍼를 열고 나다녔음을 나중에 깨달은 것처럼 은근히 민망해졌다.


게다가 올해 3월, 산소 이장에 다녀와서 진흙을 솔로 털어내다 보니 솔질에 실리콘 조각이 꽤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즉, 이 보강 방식은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지속성도 낮다는 결론이었다. 아끼는 신발을 이런 식으로 대충 다루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이후에 시간을 내서 이것들을 모두 뜯어냈다. 실리콘 패드보다 바닥에 접착된 본드가 훨씬 긁어내기 어려워서 전동 공구를 쓰고도 고생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이 사실은 실리콘 본드만으로도 썩 괜찮은 보강이 된다는 뜻이므로 주변에는 그렇게 추천하기도 한다. 애초에 실리콘 본드에 밑창 보강용이라는 설명도 적혀 있다.


바닥을 간신히 깨끗이 만든 이후에 내가 선택한 밑창 보강 방법은 기성품 보강재를 사서 쓰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신발을 보강하는 방법만을 추구한 탓에 몰랐으나, 검색을 대충만 해봐도 밑창을 간편히 보강하는 제품이 제법 많이 나온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몇 가지 사서 써봤고, 그럭저럭 만족했다. 장점도 확실하지만 단점도 좀 있었다는 뜻이다.


( 내가 신발을 버리지 않으면 신발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



장점은 위에 적었듯이 작업이 아주 쉽다는 점이다. 밑창 전체 보강은 패드에 밑창을 대고 네임펜으로 절취선을 그린 다음 패드를 가위로 자르고, 밑창에 전처리제를 바른 뒤에 패드의 이형지를 떼고 스티커 붙이듯 붙이면 끝이다. 전처리제 냄새가 좀 자극적이라는 점을 빼면 불만이랄 게 없다. 뒷굽 전용 패드는 자를 필요조차 없다. 이렇게까지 보강 작업이 쉬운데 나는 대체 무슨 헛짓을 하고 살았나 회의감이 들 지경이다.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실리콘 뚜껑 보강 기법)

한편으로 단점도 제법 컸다. 일단 밑창 전체를 보강하는 패드는 요철이 너무 자잘했다. 시험해보니 일상적인 환경에서의 접지력은 충분했지만, 요철이 이렇게 작으면 험지나 눈 위에서 접지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마모되어도 매끄러운 면으로 변해서 물을 밟을 때 수막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물이 밀려나기 전에 체중이 실려서 분식집 국그릇처럼 잠시 떠다니게 되는 것이다. 

대단히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4월에 어머니의 골절상으로 체험한 터라 이 점은 정말 큰 단점이라고 보는데, 

이러면 응급실이 눈앞에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 다행히도 이런 밑창에 골을 파는 작업은 여러번 해본 터라 조만간 새로 작업을 할 작정이다. 오만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혀놓은 요령이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역시 기술의 발달 과정에 헛일은 없다.





뒷굽 전용 패드는 골이 제법 모양 좋게 잘 성형되어 있다는 게 마음에 들긴 했으나, 재질이 궁합을 따진다는 게 유일한 문제였다. 제법 딱딱한 편이라 부드러운 밑창에 붙이면 위화감이 심했다. 나는 이것을 프로스펙스에서 나온 저렴한 러닝화에 붙였다가 하루만에 떼어내고 말았다. 러닝화 밑창이 아주 부드러운 EVA라 걸을 때마다 뒤축에 편자를 박고 걷는 듯한 느낌이 생생히 전해진 탓이다.


그래서 떼어낸 패드를 이번에는 나이키 에어 맥스 액시스라는 러닝화에 본드로 붙였다. 같은 러닝화라도 이 모델은 EVA를 압축해서 더 견고하게 가공했다는 파일론을 밑창으로 채택하고 있고, 그 견고함 덕분에 보강 패드가 착화감을 해치진 않았다. 뒤쪽만 몇 밀리 높아진 탓에 발이 약간 앞으로 쏠려 발가락이 눌린다는 부차적 문제가 발생할 따름이었다. 끈을 아주 단단히 묶어서 발가락이 눌리지 않게 만들든지 앞쪽 패드까지 세트로 쓰든지 해야 할 판이었는데, 나는 둘 다 싫어서 뒷굽의 마모된 부분만을 메꾸도록 패드를 잘라 붙이는수를 썼다. 애초에 공산품의 예정된 수명을 거스르는 판에 보강재를 고스란히 아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노쇠한 호킨스 운동화를 되살리는 작업은 남에게도 쉽게 추천할 수 있는 방법과 제품을 찾아낸다는 부수적인 성과까지 거두며 일단 종료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간편한 기성품 신발 수선 키트가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여러 쇼핑몰을 뒤적이며 내가 생각한 이유는 세 가지다. 일단 강력한 양면 테이프와 보강 소재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리고 고급 브랜드의 패션화 중 상당수가 내구성이나 접지력에 중점을 두지 않고 만들어진 탓에 기능 보강의 필요를 느낀 소비자가 늘어난 게 아닐까. 실제로 골든 구스 같은 고급 브랜드 스니커즈의 나약한 밑창에 튼튼하기로 유명한 비브람창을 붙여주는 업체도 제법 많다.  

끝으로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중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나이키 등의 희귀한 운동화를 수집하듯 사서 직접 신기도 하고 나중에 좋은 값에 팔기도 하려는 목적으로 보강재를 덧대는 사람이 는 것 같다. 보드게이머들이 게임을 편리하고 깨끗하게 즐기고 나중에 다시 팔려는 목적으로 보호 비닐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자기가 아예 소장하기로 마음먹고 쓰는 물건보다 언젠가 남에게 양도할 물건을 더 공들여 아껴 쓰게 되는 구조를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모순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한편으로 개인에게 확실한 이득이 돌아오지 않으면 물건을 아껴서 잘 쓴다는 미덕은 결코 확산될 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자기 발에도 맞고 옷차림과 이미지에도 맞는 신발과 오래도록 함께한다는 건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를 둔 것처럼 아름답고 든든한 일일 뿐더러 확실한 이득이 되는 일이다. 같은 역할을 해줄 신발을 찾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겪어보면 알게 된다. 족저근막염 판정 이후로 완벽히 편안한 신발을 찾아 헤매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여러분, 주말에는 한 번씩 신발을 잘 살펴보고 돌이킬 수 있을 때 손을 쓰고, 가급적 여러 켤레를 번갈아 신으시길 바랍니다.

(2012년 5월 27일에 구입한 운동화를 다시 들여다보며)





*추신

다이소에서 파는 밑창 보강용 접착제만 잘 발라서 말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보강 방법입니다. 일단 저렴하고 구하기 쉽죠. 다만 그것만 계속 신으면 오래가지 않으므로 재시공을 자주 해야 합니다.


실리콘 뚜껑은 제법 튼튼하지만 실리콘 자체가 붙이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소재입니다. 실리콘 전용 접착제(e43)를 따로 주문해야 했습니다.


양면 테이프식 보강재는 러닝화류의 아주 부드러운 밑창에 붙였을 때 착화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걱정되면 일반 테이프를 써서 임시로 붙이고 걸어보세요.





*추신2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Daum 검색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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