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저근막염 판정을 받았다.
아주 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병도 아니라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주변에서도 딱히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는데, 걸려보니 생각보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 회전근개 문제가 있는 어깨는 어지간히 힘을 쓰지 않는 이상 아플 일도 없지만, 발바닥은 이족 보행을 하는 이상 항상 통증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목소리 대신 발을 얻어 이족 보행을 하는 인어 공주의 심정을 짐작하게 되니, 과연 인류가 이족 보행을 택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애초에 모든 동물이 육지로 올라오지 말고 그냥 바다에서 살아가길 택하는 게 낫지 않았을지 의문도 든다.
족저근막염의 원인은 무엇일까? 찾아보면 발바닥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자극, 스트레스, 생활 환경과 습관 등이라고 나온다. 발바닥을 계속 괴롭히거나 건강에 해로운 신발을 오래 신으면 염증이 생긴다는 말이다. 나는 그러한 요인으로 내가 평소에 신는 것보다 5밀리 작은 나이키 에어 맥스 90을 의심했다. 지난 4월에 의류 수거함 위에서 주인을 찾고 있기에 가져온 뒤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수선했는데, 아무리 늘여도 빡빡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이 맞지 않아서 발가락을 오므리고 걷는 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의심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오늘 그보다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신발을 찾아냈다. 작년에 아웃렛에서 산 트레일화로, 역시 나이키 제품이다. 발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기 전날도 분명 이걸 신고 뒷산을 걸었다. 오늘도 의심이 맞나 확인하려고 이 녀석을 신고 1000걸음쯤 걸었더니 아니나다를까 곧바로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신발 자체는 훌륭하나 사이즈가 너무 크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내 평소 신발 사이즈가 265인데, 이 녀석은 280이다. 살 때 265가 너무 작기에 편해질 때까지 크기를 올렸더니 15밀리나 큰 녀석이 그나마 적당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돌이켜보면 사이즈업도 정도가 있지 싶다. 내 발이 좀 기형적인 것은 아닐까? 이 신발 덕에 그런 의심을 품은지 제법 되었는데…… 며칠 전에 이 신발의 리뷰를 찾아보니 너무 좁다는 게 단점으로 적혀 있었다. 발볼이 좁기로 악명 높은 나이키 신발 중에서도 좁다니, 역시 내 발이 이상한 탓이 아니었다.
그간 신발이란 벗겨지지만 않으면 어찌저찌 신고 다닐 수는 있는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15밀리나 더 큰 신발을 대충대충 신고 다니곤 했는데, 오늘 작정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니 족저근막염에는 너무 큰 신발도 악영향이 심했다. 걸어갈 때 앞부분이 크게 꺾이며 발바닥도 다른 신발보다 더 심하게, 오래 꺾였기 때문이다. 걸음걸음 강제로 심한 스트레칭을 빠르게 하는 격이니 발 건강에 좋을 턱이 없다. 나이키가 신발을 동양인 발에 맞게 만들었다면 이런 고통도 겪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여러 신발을 주의깊게 살펴보다 보니 신발 사이즈를 늘 정확하게 만드는 제조사는 아예 없는 모양이다. 제작 후에 정밀 장비로 내경을 가로, 세로, 높이 모두 측정하여 표기하는 게 마땅한 일 아닐까? 21세기에 신발마다 실제 사이즈가 어떤지 후기를 찾아봐야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건강의 적이 된 트레일화는 팔아치우기로 작정했다.
그간 다른 신발들도 여럿 테스트했다. 주의 깊게 신고 다녀 보니 의사들이 말하는 대로 단단해서 잘 꺾이지 않으며 속으로는 쿠션이 충분한 외강내유형 신발이 좋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신발이 집에 없었던 터라, 나는 발이 편하기로 유명하면서도 중고가가 상당히 낮게 형성된 러닝화인 아디다스 울트라부스트를 샀다.
울트라부스트 시리즈는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탄성체로 만든 캡슐들을 모아서 스티로폼 비슷한 모양새로 찍어낸 중창을 채택한 신발로, 찾아보면 캡슐들이 충격을 분산하고 에너지를 반환한다는 신비한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설명을 다 믿을 수 있을지 다소 의문도 들고 자기와는 맞지 않더라는 후기도 꽤 보긴 했으나, 직접 신어보니 쿠션감이나 반발력 모두 내 발상태에 적절하게 느껴졌다. 디자인은 가죽신만 좋아하던 내 미의식으론 판단하기 어려워도 이만하면 썩 괜찮은 편이다.
다만 과도하게 큰 내 엄지 발가락이 니트 소재의 갑피를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에일리언처럼 뚫고 나올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이소 실리콘 뚜껑을 잘라서 안쪽에 붙이는 공정을 거쳐야 했다는 점은 확실히 감점 요소다. 알고 보니 러닝화란 빠르게 닳아버리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물건이라 애초에 내구성과 거리가 있는 물건이긴 했지만, 어떤 신발이든 5년쯤 신을 생각으로 구입하는 나로서는 시원한 것보다는 튼튼한 게 중요하다.
여담으로, 사실 나의 울트라부스트 러닝화‘들’에도 황당한 일화가 숨어있다. 울트라부스트 3.0을 사서 두어 번 신어본 직후에 울트라부스트의 또다른 라인인 노마드 모델을 줍고 만 것이다. 닳은 흔적도 별로 없는 상태라 세척하고 신어보았더니…… 3.0보다 편하고 잘 맞았다. 1만 걸음을 걷고도 그다지 불편감이 없었다. 아무리 새로 산 것보다 줍거나 고친 게 더 애착이 간다는 얘기를 떠들고 다녔다지만 이럴 일인가 싶기도 하고, 정말이지 인생 알 수 없는 법이다.
이렇게 우연히 잘 맞는 신발을 장만함으로써 족저근막염 악화의 공포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발 건강에 좋은 깔창까지 찾아서 손품을 팔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일이고, 좀 나았다고 아무 신발이나 대책 없이 신었다간 통증이 재발할 게 분명한데, 그렇다고 아끼는 신발들을 기약 없이 내버려두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좋은 깔창으로 발도 보호하고 소중한 신발들도 돌아가며 신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족저근막염에 좋은 깔창을 찾아봤는데…… 효과가 좋다는 사람이 많은 깔창은 비싸서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효과가 100퍼센트 보장된 것도 아닌 깔창을 8만 원 넘게 주고 선뜻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증상이 심하다면야 설마 효과가 없겠냐고 생각하며 일단 사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정도도 아니었고, 8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쓸 수 있을 만큼 부호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상품 설명을 봐도 충격을 잘 흡수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발바닥의 아치를 잘 받쳐준다는 말은 믿을 만하지만, 아치를 받쳐주는 깔창은 다이소에서도 팔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보다 저렴하면서 믿을 만해 보이는 깔창을 찾고 또 찾은 끝에, 나는 커뮤니티에서 누가 덧글로 추천한 깔창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기본 소재도 탄탄하고 시원해 보이면서 중족골과 종골 밑에 특별한 소재로 쿠션이 덧대어져 충격 완화 효과가 충분해 보였고, 리뷰도 좋았으며, 가격도 2만 원대로 제법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 느끼던 불편감을 정확히 집어서 해소해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바닥이 좀 얇은 신발을 신으면 항상 엄지발가락 밑의 중족골이 아팠는데 거기도 잘 받쳐준다고 했고, 아치도 딱딱하지 않은 쿠션으로 지지하도록 개발했다는 걸 보니 분명 다이소 제품보다 발을 더 편하게 해줄 것 같았다. 게다가 쿠션이 좋은 깔창이면서도 높이는 낮은 편이라 어떤 신발에도 쓰기 좋을 듯했다. 집 근처 잡화점에서 산 메모리폼 깔창은 뒤가 높아서 뒤꿈치가 헐떡거리는 문제가 일어나곤 했으므로, 이 깔창이야말로 내 문제를 모조리 다 해결해줄 것으로 보였다. 안 비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값이지만, 신소재가 원래 다 비싼 법이다. 나는 내친 김에 이것을 할인가에 세 세트쯤 사려다…… 아무리 그래도 확인도 되지 않은 것을 셋이나 사는 건 불안해서 하나만 주문했다. 사실 그게 이 깔창 주문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잘한 짓이었다.
깔창은 이틀 뒤에 도착했다. 그러나 택배 봉투를 뜯는 순간부터 불안감이 엄습했다. 깔창을 포장한 비닐에 중국어가 잔뜩 적혀 있었고, 이를 어디서 수입했다는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일단 뜯어서 밟아보니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만원 대의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 이 물건을 2만원 대로 느껴지게 하려면 벨벳 안감을 댄 오동나무 상자에 넣고 장인의 인장을 찍어 왁스로 봉인해야 했으리라. 나는 대체로 뭐든 다 판매하는, 공산품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알리 익스프레스에 이 비슷한 깔창도 있지 않을까 싶어 시험삼아 깔창이라고 검색해봤다. 그 결과…… 매우 유사한 제품들이 3천 원 정도에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상상보다 한층 더 끔찍한 결과였다.
물론 그렇게 나온 깔창이 내가 산 것과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그 판매처가 불철주야 연구한 제품을 제조한 공장에서 비슷한 금형으로 다른 깔창을 양산했을지도 모르고, 그 판매처가 주문한 사항들은 정말로 아주 특별한 소재나 공정을 필요로 해서 단가가 크게 뛰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고에서 얘기하는 소재를 똑같이 채용한 알리 익스프레스 물건이 비싸봐야 4천 원대라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도 그 깔창을 한국에서 2만 원 넘는 값에 파는 것은 폭리였다.
그리고 내가 가격 못지 않게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판매처가 아주 긴 광고를 통해서 자기들이 엄청난 노력과 연구를 거친 끝에 기막히게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었다. 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 파는 것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섰다는 식이었다. 광고만 보면 에디슨이 따로 없다. 이런 식의 광고는 보통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넘쳐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류의 광고를 취미 삼아 뒤적이며 낄낄대곤 하는 내가 큰 의심도 없이 지갑을 열었다는 것도 황당할 따름이다. 아마 견딜 만큼 아프다곤 해도 3만 원 가량의 절박함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픈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픈 만큼 수단을 덜 가리게 되고, 그만큼 믿고 싶은 말을 더 쉽게 믿게 된다. 나도 애초부터 그 깔창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고 싶어했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불편까지 지적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제품에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하지 않은 속사정을 맞춘 점쟁이를 신령처럼 믿게 되듯이.
그리하여 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건강 관련 상품에 쉽게 돈을 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걸 이해했다고 돈이 안 아까워지는 것은 아니라 왕복택배비를 모두 지불하고 깔창을 환불했다. 요즘은 택배비가 올라서 그 돈이면 그냥 갖는 게 나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깔창을 볼 때마다 혈압이 오를 것 같아서 건강상 환불을 택했다. 물론 판매처가 오만가지 트집을 잡으려는 통에 환불도 순탄치는 않았다. 이런 판매처가 야비한 짓을 하나만 할 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더 믿을 만한 실험 결과까지 고지하면서 파는 깔창을 또 어디 작은 판매처에 주문했다. 이번에는 정말 신중한 주문이었으니 아마도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는 것은 물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수요일에 온다기에 한껏 기대했는데, 무슨 사정이 생겨 늦는다는 고지를 내가 먼저 물어봐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울퉁불퉁해서 잘 닦이지 않는 울트라부스트의 중창을 희게 칠하기 좋다는 마커도 어디에 주문한 게 보름이 넘도록 오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내 발에 무슨 액운이라도 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좋은 물건, 좋은 판매자를 알아보는 감식안을 기를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야지 어쩌겠는가. 한탄한다고 해서 땅에 떨어진 도리가 다시 날아오를 것도 아니니.
*추신
새로 주문한 깔창은 다른 모델이 도착해서 몇주 만에 간신히 주문한 물건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중창 도색 마커는 한 달만에 받아보니 전혀 효과가 없는 물건이라 환불 받았습니다. 새 물건 사는 일에는 운이 별로 없는 모양입니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