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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14. 2024

여행 후에 남은 고통의 흔적들



연말에서 연초에 걸쳐 친구들과 여수에 다녀왔다. 함께 놀러 다니는 모임에서 한 명이 연말에 여행이나 갔다오려는데 같이 갈 사람 없나요, 하고 물어 충동적으로 결성된 여행 모임이었다. 긍정적인 소감부터 정리하자면 대체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볼거리는 적당히 많았다. 특히 향일암은 세계의 여느 명소 못지 않은 수준으로 아름다운 사찰이었고, 과학관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지만 윤리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 참 좋았다. 평소에 음식으로만 접하던 생물들을 직접 수족관에서 보니 퍽 아름다워 놀라기도 했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탁트인 해변을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멋졌다. 그밖에도 여기저기 찾아보면 볼 만한 곳이 많았다. 여수는 딱히 볼 게 없다는 소문도, 절대 그렇지 않고 볼 게 넘쳐난다는 반론도 사실은 아니고, 잘 찾아보고 다니면 볼 게 많고 대충 다니면 그저 그랬다는 평을 할 만해 보였다. 많은 관광지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반면에 먹을 것은 거의 다 좋았다. 당연하게도 해산물이 특히 좋았고 반찬까지 모두 푸짐했는데, 그중에서 내 입맛에는 숙회가 특히 맛있었다. 그러나 일행 모두의 종합적인 평을 보자면 여수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은 다름아닌 리조또였다. 참 뜬금없게도, 경치 좋은 카페에서 별 기대 없이 시킨 리조또가 평생 먹어본 그 어떤 이탈리아 음식보다 더 맛있었던 것이다. 영혼에 스며드는 닭고기 스프 같은 맛이었다. 그때 배가 고프기도 했고 기대감도 낮았다지만 그 점을 고려해도여수 최고의 식사는 리조또였다. 내게 준 감동의 크기를 고려하면 여수 밤바다처럼 리조또에 대한 노래도 하나쯤 나오면 좋겠다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수의 아름다움이나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라 이번 여행을 통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작정이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명시해두고 싶은 점은, 나의 고통과 슬픔이 여수 자체나 여수의 점포들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 나와 일행의 불운과 개인적 성향에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실패는 다름아닌 폭음과 폭식이었다. 나 원 참, 자신의 식사량과 주량은 20대에 충분히 잘 익혀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폭음과 폭식이라니. 하지만 회식이나 회비로 먹는 게 아닌 다음에야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고급 음식점에 갔다는 점,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술 좋아하는 지인을 만났다는 점, 끝으로 다음날은 잡힌 일정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언제든 정신줄을 꼭 잡고 살아야 한다는 현대인의 의무를 망각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맛있는 음식이 그야말로 끝없이 나와서 무엇을 얼마나 먹고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가 가늠할 수 없었다는 점도 재난의 부차적 원인이라면 원인일지 모르겠다.


본격적 사고는 숙소에 돌아와 지역 막걸리와 위스키를 더 마셔대는 와중에 시작되었다. 후배 두 명이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 과식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소화 장애를 겪는 사람이 한 명쯤 나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이 먹긴 했으니까. 그래서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한편으로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는 지압 요법 따위나 가르쳐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더 진지하게 걱정하지 않았나 싶지만, 나도 사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마셔서 한 번 토하고 위장약을 먹은 뒤 부드러운 막걸리로 식도를 씻는 중이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가 위계적으로 압박하거나 강요하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자진해서 그 정도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새삼 알코올의 마수란 무섭구나 싶다.


그러다 자정을 넘기고 나자 자주 아파본 후배 한 명이 환자 둘과 대화를 나눠보곤 그냥 쉬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119에 전화해서 긴급의료상담을 받고(119 전화로 출동 요청이 아니라 의료 상담도 가능하다. 해외에서도 82-44-320-0119로 상담할 수 있다), 택시를 타고 인근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검사 결과 식중독은 아니었다고 하니 확실히 식당의 잘못은 아니었던 듯하다. 아무튼 나와 후배는 사찰에 켠 소원초고 나발이고 아무 효험이 없다며 한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낮에도 어느 놈이 주차해둔 후배의 차를 박고 도망가서 경찰을 부르는 사태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액뗌이라고 생각하자 했지만, 세상에 불운을 막아주는 예비 불운 따위는 없다. 불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오로지 사소한 교훈과 그로 인한 위안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가 지난 뒤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환자들은 수액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수준의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병원으로 갈 때도 그랬듯이 돌아갈 때도 안타까운 심정에 부탁받지도 않은 부축을 하려 들었는데, 좀 놔달라는 요청에 덧붙여 뭔가가 건드리면 오히려 불편한 상태라는 해설을 들었다. 추가로 이런 식으로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 같다는 평도 들었는데, 따져보면 분명 맞는 말이었다. 나는 소화기관 문제를 겪은 적은 제법되지만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이번 일을 초기부터 대수롭게 여기지 못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과장하자면 나는 부끄럽게도 타인의 아픔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던 셈이다. 의도에 따른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이 아닌 것은 아니니 부끄럽게 여긴다.


(여행에서 안전과 행복은 따로 챙겨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다음날 모두는 선물 따위를 사서 간신히 귀가했고, 적당히 여행을 마쳤다. 환자들도 죽을 먹고 집에 돌아갈 정도는 되었다. 나는 숙취가 가시지 않아서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기력이 없고 우울한 것만 빼면 큰 문제는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게 착각이었음을 다음날 깨닫게 되었다. 점심에 샌드위치와 케이크, 그리고 여수에서 사온 과자를 하나 먹자마자 구토가 치밀더니 그 이후로 소화 기관이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이다.


나는 그간 너무 달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상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제로 복통이나 거북함이 뒤따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서너 시간이 지난 뒤부터 설사가 시작되었다. 장기가 수분 흡수까지 집어치우고 드러누운 게 틀림없었다. 나는 사흘간 죽을 먹었고, 죽을 먹다 질리면 스프를 먹어야 했다. 덤으로 비정상적인 삶을 사니 내장도 비정상적이 된 거라는 식의 비난도 당했다. 이 역시 따져보면 일리는 있는 듯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증상은 완화되었다. 사흘이 지난 뒤에는 장기가 일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점심으로 빵과 두유, 그리고 여수에서 사온 간식용 빵을 하나 먹었다. 그런데 그게 회복이 덜 된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되었는지, 노도같은 설사가 재시작되었다. 한층 더 괴롭고 힘든 고난이었다. 다시 죽과 스프만 먹다가 결국 지쳐서 병원에 갔다. 요양만으로 해결되리라 예상은 하지만 며칠이나 더 밥을 못 먹을지 알 수 없다는 게 괴로웠다. 아무리 평소 식사에 큰 관심이 없는 나라도 식생활이 거의 상실된 채로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의사는 증상을 묻기도 하고 청진기로 소리를 들어보고 배를 두드려 보기도 하더니, 장 기능이 약화되었고 예민한 상태니까 당분간 밥은 흰 밥만, 빵은 통밀 아닌 빵만 먹으라며 약을 처방했다. 중병으로 판정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이후로 사흘 가량을 더 요양했고, 병원을 한 번 더 갔다. 통증을 동반한 것은 아니지만 장 트러블로는 가장 긴 고난이었다. 보리수나 광야가 준비되었다면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아니라 그냥 장염에 대해 약간 더 이해하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런데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염이 끝나갈 때쯤 각자가 어지럽게 나누어 계산했던 비용을 정산했는데, 예상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돈이 나갔음을 깨닫게 된 탓이다. 여행에서 쓴 돈을 돌이켜 아까워하는 건 퍽 어리석은 짓임을 나도 잘 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기만 한 여행이 되진 못했던 터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내역을 잘 살펴보면 합리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세부 사항을 다시 검토했다. 그 결과 고통과 후회는 더 이성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되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모두 먹고 마신 비용에 있었다. 그놈의 고급 식당만 가지 않았더라면 훨씬 나았을 게 분명했다. 적당히 작은 맛집으로 만족했다면 그렇게까지 많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을 테고, 환자가 속출하지도 않았으리라. 나 역시 일주일이나 허덕이지 않았을 테고, 덤으로 시간도 남았을 테니 여수의 해변과 밤거리를 구경하는 여유도, 마지막 날 든든한 아침 식사를 즐기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으리라.


그걸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받아들인대도 마지막 날 별 생각 없이 산 과자와 빵들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특히 뭐라도 사서 귀가하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에 산 과자는 돌이켜보니 무슨 국내 최고의 명장이 만든 것처럼 무섭도록 양이 적고 비쌌고, 심지어 내 입맛에 맞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장기능 정지의 방아쇠가 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라도 안 샀다면 여행의 추억이 좀더 밝은 빛을 띨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이번만큼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행복하게 쓸 돈을 쓰며 즐기자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다짐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물론 고려했다 해도 질병의 습격으로 심리적 비용이 고갈되어 고통을 면치 못했겠지만, 새해의 출발을 이렇게 슬픔과 번뇌로 덧칠하니 가슴속 깊은 곳이 쓰라리다. 습관적으로 과장해서 떠드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이 정도로 깊은 후회는 근 몇년간 겪지 못한 일이었다. 밝고 가벼운 마음을 품는답시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즐겁게 사는 일과 생각 없이 사는 일은 전혀 다른 개념임을 좀더 일찍 알았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절제를 즐겁게 할 지혜나 심리적 준비가 되는 것은 또 아닐 테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폭음과 폭식을 경계하는 일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구차한 넋두리 끝에 덧붙여 본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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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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