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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28. 2024

얼마나 깨끗이 살 것인가


청결히 사는 것을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거나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씻으면 복이나 지식이 달아난다는 미신이나 징크스를 제외하면 최소한 한국 문화에선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나 역시 청결을 훌륭한 미덕으로 생각하고 청결함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바닥 청소로, 두 개의 회전판에 물걸레를 붙이고 바닥을 닦는 동시에 진공 청소기를 작동시켜 먼지까지 흡입하는 방식의 청소기를 이용하고 있다. 아버지가 주워다 고친 물건 중에서 가장 맹활약 중인 가전제품인데, 예전에 청소기를 가끔 돌리고 걸레질을 자주 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편리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이렇게 한 번에 이중 작업이 되는 청소기만 쓰고 싶을 지경이다. 가사 노동은 장비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던데 확실히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정성과 정신력 따위로 해결할 일이 아닌 것이다.


다만 아무리 좋은 장비로 편리하게 청소를 하고 있다곤 하지만 작년에 어머니 다리가 부러진 뒤부터 이런 청소를 도맡아 이틀에 한 번꼴로 하자니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회의감도 든다. 멀쩡한 로봇청소기를 모셔놓고 굳이 사람이 청소기를 이렇게까지 돌려댈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물론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완전히 대신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로봇청소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요즘 나오는 최신형 고급 기기야 장애물도 알아서 피하고 물걸레질은 물론 먼지통 비우기, 걸레 빨기 등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하니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평범한 가정에서 심한 부담감 없이 적당히 구입해서 쓸 수 있는 구형 로봇청소기는 손도 많이 갈 뿐더러 청소 성능도 완벽하지 않다. 장애물도 미리 치워줘야 하고, 원형인 만큼 구석은 처리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집 기기는 물걸레를 지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눈에 띄는 먼지를 제거하는 최소한의 현상 유지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봇이 노동력도 시간도 잡아먹지 않고 먼지를 치워준다는 건 분명 엄청나게 편리한 일이라 나는 최대한 로봇청소기를 활용하고 싶고, 실제로 어머니가 입원해있을 동안에는 청소기를 거의 손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로봇 청소기에 의존해 지내는 동안 별 불편을 느끼지도 못했다. 직접 청소기를 돌리는 건 일주일에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던 것이 어머니가 퇴원해서 바닥에 쇠때가 앉았다는 불평을 하며 휠체어를 탄 채로 바닥을 닦아대는 통에 청결의 기준치를 매우 높여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무선 청소기를 이틀에 한 번 돌리는 게 기본이 되고 말았다. 로봇 청소기가 30분 이상 종종 헤매고 돌아다니는 꼴을 가족들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그리하여 이틀에 한 번꼴로 15분에서 20분 가량 청소기를 돌리는 생활을 일 년 가까이 했는데, 근래에 들어 오른쪽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잘못 탔거나 운동을 잘못했나 싶었으나 가만 보니 청소를 할 때 특히 증상이 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육중한 청소기에 마찰이 심한 물걸레를 붙여서 밀고 당기다 오른손에 부담이 심해진 탓이었다. 내가 왼손으로 물건을 치우며 오른손만 써서 청소기를 움직이곤 해서 자초한 면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청소가 시간과 노동력을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육체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걸 깨달으니 슬슬 청결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의문이 강해진다.


바닥이 청결하면 대체 어떤 점이 좋을까? 아마 미생물과 벌레가 살기 힘든 환경을 조성하니 건강에 이로울 테고, 먼지가 줄어드니 호흡기에도 좋으며, 미관도 감촉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청결의 이점 자체에는 딱히 이견이 없다. 하지만 좌식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닥을 기는 생물을 키우는 것도 아닌데다 최소한 겨울 동안은 맨발로 생활하는 사람조차 없으니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와 관절의 건강을 지불하는 것은 일종의 과소비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나도 최소한의 정신머리와 체면과 위신이 있기 때문에 ‘좀 더럽게 편하게 사세요, 여러분!’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진 못하겠고, 그런 주장을 해본들 제대로 된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하기도 벅찬 직장인들에게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다른 세상 얘기처럼 들릴 테지만, 이런 시각도 존재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편안하면서도 경제적인 동시에 대강 위생적인 생활의 타협점은, 먼지나 머리카락이 뭉쳐서 굴러다니는 수준와 알몸으로 바닥을 기어다녀도 되는 수준의 중간에 있다. 결단코 내가 게을러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세상엔  공짜 점심도 공짜 청결도 없다)


청결과 그에 대한 비용을 인식하다 보니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탁물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여름이야 땀이 많이 나니까 속옷과 티셔츠를 매일 갈아입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플리스도 모자라서 경량 패딩까지 입고 지내는 겨울까지 세탁물을 매일 만들어내는 건 과도한 게 아닐까? 옷을 세탁하는 것은 옷이 땀이나 먼지 등으로 오염되어 악취가 나거나 위생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니, 엄밀히 따져보자면 옷을 세탁할지 말지 정하는 기준은 시간이 아니라 오염도가 되어야 합리적일 것이다. 단지 우리가 오염도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강 습관에 의지하여 옷을 세탁하게 되었을 따름이다.


이 역시 주택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소리일 것 같다. 외투를 입고 몇 천 걸음을 걸으면 땀이 나기 마련이니 속옷과 내의는 물론이고 그 위에 걸친 셔츠도 다시 입지 않는 게 상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세탁 빈도에 대한 논의는 인터넷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글에서도 대체로 결론은 외투나 바지가 아닌 다음에야 매일 갈아입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나도 출퇴근은 하지 않지만 매일 뒷산에 가거나 자전거를 타니까 빨랫거리를 만들어내는 빈도는 이 정도 혹은 그 이상이다. 의생활에서도 청결하기론 상식적이고 흠잡을 데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 상식적인 청결 역시 공짜는 아니다. 일단 나의 경우 부끄럽게도 세탁은 대부분 내 손을 거치지 않는다. 게다가 세탁이란 청소처럼 짧은 시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장시간 거대한 모터를 가동하며 물과 세제도 써야 하고, 기계 공정이 끝나면 가사노동자(주로 어머니)가 세탁물을 꺼내서 적절한 형상으로 널어 건조시킨 뒤에 분류하고 접기까지 해야 한다. 수혜를 받기만 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처럼 느끼기 마련이지만 자원도 노동력도 상당히 많이 지불하는 셈이다. 실제로 따져야 하는 기준인 오염도를 고려하지 않고 겨울에도 습관적으로 옷을 매일 갈아입어 최고의 청결도를 누리는 일이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시원하게 그렇다고 잘라 말하긴 아무래도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요즘은 청소도 가급적 횟수를 줄이거나 최대한 빠르게 해치우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진공청소기를 집어드는 대신 빗자루로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옷을 벗은 뒤에도 곧장 빨래 바구니에 던져넣는 대신 다시 입어도 될 것인지 판단을 거치고 있다. 운동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시 입기로 하는 옷이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 겨울 동안은 양말을 이틀씩 신고, 플리스따위는 상태를 살피며 길게는 일주일 정도 입게 되었다. 좀스럽고 추접스러운 작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첨언하건대, 겨울 동안 일상적으로 그렇게 지낸다는 소리지, 사시사철 어딜 가서 누굴 만나든 청소도 안 한 방구석에 던져뒀던 옷을 대충 주워입고 다닌다는 소리가 아니다. 요점은 청결을 추구하는 습관이 모두 효율적이고 정당한지 판단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습관을 만들지만 결국엔 습관이 사람을 만들게 된다니, 나 자신의 에너지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고갈된 시대에 이 정도 생각은 해볼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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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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