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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Feb 21. 2024

어떤 노력은 나를 조롱하기도 하고



삶을 더 낫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를 배신하는 경우에 대해 한탄할 때가 많다. 노력이 그에 걸맞은 보상을 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듯 나 역시 알긴 하지만, 간혹 보상을 주긴커녕 크나큰 손해를 줄 때도 있음을 종종 깨닫기 때문이다.


나의 수필집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에도 쓴 내용이지만, 갤럭시 S10e를 오랫동안 깨끗이 쓰겠답시고 자외선 접착식 강화유리를 붙였다가 접착 용액이 스피커로 들어가서 스피커와 볼륨 키와 배터리가 모두 고장난 적이 있다. 사설과 공식 수리점 모두를 다니며 수리를 받고도 삼성 페이의 마그네틱 결제는 고치지 못해서 갤럭시 스마트폰의 가장 강력한 기능 하나가 상실되고 말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깨끗이 오래 잘 쓰려 한 시도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때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구형 스마트폰이라 값이야 심각하지 않은 지경이었지만 노력이 안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그 뒤로 쓰기 시작한 갤럭시 S20+도 오래도록 잘 쓰려고 마음먹고 여러모로 아꼈다. 평소대로라면 쓰던 기기를 처분하고 거기에 돈을 보태서 기변을 했을 텐데, S10e가 처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생돈이 나갔으므로 한층 더 아껴야 했다. 이번에는 자외선 접착식이 아닌 필름을 붙이고 중고 스마트폰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화면 전용 보험을 들었다. 기왕이면 어떤 파손이든 커버할 수 있는 보험을 들고 싶었지만, 몇 년 전에는 있던 중고폰 보험 상품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기에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애초부터 이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배 줌을 설정해서 사용 렌즈가 변경되면 검은 점이 보이는 것이었다. 먼지가 끼었겠거니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아뿔싸, 렌즈에 금이 갔단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한참 늦게 알게 된 데에는 이 모델이 상황에 따라 1배율 렌즈로 디지털 확대를 하기도 하고 렌즈를 바꿔 광학 확대를 하기도 하는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밝지 않은 실내에서 카메라를 확인하면 기본 렌즈만 쓰므로 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구매한지 한참 지난 스마트폰을 어쩔 수 있겠는가? 나는 한참을 알아본 끝에 석 달간 유지하면 그 뒤에 무슨 수리든 10만 원까지 커버가 되는 보험을 뒤늦게 가입해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무슨 마가 낀 것인지, 얼마 전부터 초고속 충전이 되지 않았다. 다이소에서 저렴한 충전 케이블을 사다 쓰고 있었던 터라 당연하게도 케이블이 고장났겠거니 생각하고 새 케이블을 사다 끼웠다. 그래도 정상적인 충전은 되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며 버렸던 케이블을 다시 줍고, 다음날 서비스 센터에 갔다. 검사 결과는 충전 보드 이상.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별수 없이 그 다음날 입고된 부품으로 수리를 마쳤다. 가격은 5만 원. 이만하면 그럭저럭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같은 증상이 재발했다. 이를 갈며 또 서비스 센터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증상 재현이 되지 않아서 바보 취급을 당하며 다시 검사한 결과는 충전 보드가 아닌 메인보드 이상. 수리에는 50만 원 이상이 든다. 이 스마트폰은 고쳐 쓸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메인보드의 어느 부분이 더 고장날지 모르는 일이라 백업과 마음의 준비도 해야 했다.


요컨대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 사용을 지속할 수 없을 스마트폰을 아낀답시고 보험을 둘이나 들었다는 뜻이다. 메인보드 수리에 딱 20만 원쯤 든다 했더라도 도움이 되는 노력이었을 테고, 하다못해 충전 이외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진단이라도 받았다면 카메라를 수리해 썼을 텐데……. 그러나 메인보드가 언제 죽어버릴지 모른다고 하고 실제로 종종 재부팅되는 증상도 보이고 있으니 조만간 스마트폰을 바꾸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모든 노력과 비용이 허사가 된 셈이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물론 낡은 스마트폰은 아무 의무도 없이 지속적으로 노후되었을 뿐이고 죄는 다 나에게 있지만…….


한편으로 보유중인 맥북에도 큰 문제가 연달아 찾아왔다. 일단 맥북 에어 얘기부터 하자. 나는 맥북 에어 2012년 모델을 배터리도 직접 바꾸고, SSD도 업그레이드하고, 그래픽이 깨지며 다운되는 현상도 사설 업체를 찾아가 16만 원인가를 주고 간신히 수리하며 어르고 달래서 쓰고 있었다. 맥북 프로를 쓰게 된 지금도 이동용, 혹은 비상용으로 두고 있다. 특히 여차하면 저장 공간의 절반을 할애하여 설치한 윈도우즈를 가동할 수 있어서 든든한 보조 무장처럼 여겼다. 그런데 윈도우즈란 원래 걸핏하면 업데이트를 하라며 작업을 방해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안전한 비상용 기기로 유지하려면 평소에 미리 업데이트 확인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맥북 에어를 망가뜨린 것은 바로 이 업데이트였다. 내 잘못이라곤 10시간 넘게 기다려도 진행되지 않는 업데이트를 더 기다릴 수 없어 재부팅을 한 것뿐이었다. 그게 위험한 짓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달리 어쩔 수 있었겠는가?


켜지지 않는 윈도우즈를 쓸 수도 없고 맥북 환경을 집 밖에서 쓸 일도 생기지 않아서 맥북 에어는 그 상태로 오래도록 방치해뒀다. 그러다 비상용 기기를 이렇게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간을 내서 다듬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윈도우즈 복구는 불가능했다. 전대미문의 저주를 풀어보려는 초보 마법사처럼 오만가지 명령어를 다 찾아 써봤지만 허사였다. 부팅 디스크로 켜고 맥북 프로의 윈도우즈를 복사해 넣는 시도도 실패했고, 재설치도 망했다. 오랜 세월 잡다한 트러블에 시달리며 인터넷에서 수리 방법을 찾아 적용해보는 짓을 적잖이 해봤는데 이 정도로 꽉 막힌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러다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디스크를 아예 포맷하는 길을 택했다. 중요 데이터는 모두 맥북 프로로 이전되어 있으니 애초에 그랬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디스크를 싹 밀어버리고 윈도우즈를 설치한 뒤 진땀을 닦으며 재부팅을 해본 나는 피가 식는 기분을 맛보았다. 운영체제 선택 화면에서 맥북 환경이 아예 사라진 게 아닌가! 디스크를 둘로 나눠놨으니 당연히 포맷도 윈도우즈쪽 절반만 할 줄 알았는데, 이 똑똑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 물리 디스크 자체를 엎어버린 것이었다. 결국 나는 맥북 에어의 물리 디스크를 다시 포맷하고, 맥북 에어의 백업을 저장한 하드디스크를 연결했다가, 이번에는 하드마저 고장난 것을 깨닫고 속이 뒤집힐 뻔했다. 오래도록 쓴 맥북이니 언제 복구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거대한 구형 외장하드를 보관해왔는데 모조리 헛짓이었던 셈이다. 이런 쓸모없는 노동과 시공간 낭비에 시달리는 건 이제 사양이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맥북을 냅다 집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독하게 번거로운 차선책을 택했다. 나는 맥북 에어에서 뽑아놨던 구형 SSD를 조립해서 부팅했다. SSD를 대용량으로 바꾸기 이전 상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므로, 그 상태를 메모리 카드에 백업하고, 깨끗이 비어버린 신형 SSD를 다시 조립한 뒤에 백업본으로 맥북 에어를 되살렸다. 맥북 환경은 그것으로 일단 살아났으니, 그다음에는애플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윈도우즈 환경 조성 프로그램인 부트캠프를 이용해 메모리를 다시 반으로 나누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했다. 중간에 원인 모를 중단을 겪고 같은 짓을 반복하긴 했지만, 어쨌든 텅텅 빈 것일지라도 윈도우즈도 갖추는 데에 성공했다. 이 모든 노동이 윈도우즈에서 시킨 업데이트 하나가 잘못되어 강제되었으며, 이 짓을 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후회와 퇴보와 노화 뿐이라는 걸 지금도 믿기 어렵다. 선택을 잘못했거나 실수로 물이라도 쏟았다면 억울하지나 않겠는데 정말이지 비참할 따름이다. 내가 이 일련의 생고생을 떠올리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재난이 잘못으로 일어나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들을 구별할 지혜를 주세요)



맥북 에어를 기억을 좀 상실한 상태로 살려낸 뒤에는 맥북 프로가 고장났다. 엊그제 일이다. 이 문제 역시 귀중한 랩탑을 아껴서 오래오래 쓰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이 맥북도 내 시간과 돈과 스트레스를 먹은 물건임을 밝혀두어야겠다. 형이 수리해놓고 안 쓰던 것을 받아서 배터리를 직접 교체하다 터치패드를 고장내는 바람에 중고 터치패드를 사서 고치느라 사설수리에 맡기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사연이 있는 탓에 더 애지중지하며 배터리 수명을 아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방편으로 채택한 것이 충전을 원하는 퍼센트까지 제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많이 알려져있듯이 리튬이온 배터리는 완전 충전과 완전 방전을 거칠수록 수명이 깎여나가기 때문에, 나는 이 맥북을 오래 쓰겠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배터리 자가 교체라는 고생을 다신 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충전을 70퍼센트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어째서인지 이 프로그램이 잘 먹히지 않아서 문득 쳐다보면 완충 표시인 초록 불빛이 보이곤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탄하며 충전기를 뽑았다가 한참 뒤에 다시 꽂곤 했는데, 이번에는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방전 기능을 찾아서 시험해봤다. 충전기를 뽑지 않고도 충전을 중단하는 기능이었고, 한참 뒤에 살펴보니 내가 설정한 70퍼센트에서 방전이 끝나 있었다. 이렇게 편리한 기능이 있었다니. 감탄한 나는 다음날 저녁에도 필요 이상으로 충전된 맥북을 방전시키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맥북은 깨어나지 못했다.


아니, 극적인 과장은 걷어내고 설명하자면 깨울 수는 있었다. 장치 관리자 리셋 같은 조작을 거치고 켜니 켜지긴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배터리 충전율이 표시되지 않았다. 가벼운 시스템 오류인 줄 알고 재부팅을 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장치 정보를 확인한뒤에야 맥북이 배터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측건대 충전 제한 프로그램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서, 혹은 예전에 비정상적으로 작동했던 것을 내가 착각해서 끄지 않는 바람에 배터리가 밑바닥까지 방전되었고, 0퍼센트로 완전히 소진된 배터리는 두번 다시 충전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 아닐까. 그것 말고는 짚이는 구석이 없다. 요컨대 맥북 프로마저, 또다시, 아껴서 잘 살아보려는 나의 의도와 정반대로 손상되어 충전기를 뗄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참담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좋은 글귀 중에 ‘실패했다는 말은 도전했다는 뜻이다’라는 것이 있다. 대체로 사실이기도 하고 좋은 말이 맞다고도 생각하지만 별로 위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뭘 발견하거나 발명하거나 창작하는 과정에서 겪은 실수는 다음 시도의 교훈이나 원동력이 되지만, 내가 여기 열거한 일들은 모두 물건과 돈을 아끼려는 시도였고, 아낄 생각없이 대충 살았다면 고생이나 손해 없이 해결되었을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편하게 사는 게 좋다는 뻔한 사실 말고 별로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지칠대로 지쳤으면서도 다시 중고 스마트폰과 맥북 배터리 따위를 찾아보는 것은, 내가 자연 보호를 숙명으로 여기는 환경 전사이기 때문도 아니요, 한 푼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전노 혹은 저소득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이것들도 분명 이유는 되겠으나, 더 큰 이유는 단순히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와서 다른 방식을 더 피곤하고 불합리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하는 운전을 어떻게 믿고 뒷자리에 타!’같은 소리를 하는 고집쟁이 어르신 같은 소리인데, 그런 어르신도 영원히 직접 운전대를 잡지는 않듯이, 나도 어느 시점이 되면 편안한 포기를 받아들일 것이다. 오만가지 실패와 손해와 피로가 여기에 기록하지 않은 성공의 보람과 기쁨을 상회하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렇게 되겠지.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오기는 하리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때까지 내 삶의 기조 안에서 전보다는 지혜로운 판단을 요령껏 하며 내 물건을 내 손으로 관리하는 효능감을 느끼고 싶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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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z1M5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https://millie.page.link/pEX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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