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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26. 2024

도봉산 Y계곡과 따스한 바위산 1



수락산에 다녀온 이후로 운동이랍시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오른쪽 무릎이 점점 악화되어 집에서 걸어다닐 때도 통증이 느껴질 지경이 되었다. 슬개골 아래 깊은 어딘가가 삐걱이며 미세한 뭔가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도저히 못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한동안 자전거도 못 타고 등산도 못할지도 모른다는 게 상당히 두려웠다. 그래서야 칼로리 소모도 못하고 숨이 트이는 기분도 맛볼 수 없다. 통증보다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더 심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두려웠다. 자유의 제약에 대한 두려움은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재깍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무릎 아래 지방패드가 마모되고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해서 재생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전에는 오른쪽 어깨 때문에 찾은 병원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 때문에 찾게 되다니, 신체 사용이 심각하게 불균형한 모양이다. 억울한 심정에 자전거는 관절에 부담이 없는 운동 아니냐고 물으니, 의사는 ‘평지’나 ‘실내’일 때만 그렇다고 답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오르막에서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혹사된 무릎으로 수십 킬로짜리 무게추를 미는 운동을 반복해온 셈이었다.


이후로 자전거를 포기하고 얌전히 지내다, 남산 둘레를 걷자는 모임이 결성되어 ‘이쯤이면 슬슬 그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다녀왔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리 좋지도 않았다. 어쩐지 남산에 자리한 공명의 사당은 재미있게 봤지만 멋지게 조성되었다는 야외 식물원은 놓쳤을뿐더러, 무릎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파서 다리를 끌고 다니다 일행이 생리통을 대비해서 갖고 있던 진통제를 얻어먹어야 했다. 귀갓길에는 지하철의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아파서 난간을 잡고 반 칸씩 움직여야 했다. 어째서 계단을 완만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든 계단은 우회할 장치가 있어야 하는지 이동권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결국 또 주사를 맞고 쉬었다. 나는 콘드로이친을 먹기 시작했고, 상비약으로 위장약 외에 진통제도 추가하게 되었다. 사람은 서서히 늙지 않고 어느 시기에 순식간에 늙는다는데, 이런 식으로도 노화를 체감하는 듯했다.


한편으로 무릎보호대도 새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이소 무릎보호대는 네오프렌으로 탄탄하긴 하지만 통풍이 되지 않아 더 좋은 게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최고급으로 가기로 했다. 평소 나의 소비 패턴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한쪽 다리를 반쯤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프로선수들도 쓴다는 바우어파인트의 게뉴트레인을 사고 말았다. 한쪽에 12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물건이지만, 이것도 때마침 딱 맞는 사이즈가 아주 저렴하게 중고로 나와서 곧바로 주문했다. 받고 보니 짱짱한 니트 조직이 허벅지부터 종아리 바로 위까지 조이는 코르셋 같은 물건이었는데, 확실히 다리를 일시적으로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후로 살이 찌자 종아리쪽이 쓸리는 문제가 발생하긴 했어도 꽤 오랫동안 무릎을 단단히 보호해줬다. 똑같은 상태에서 다른 무릎보호대와 비교한 게 아니니 정말 그 값을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무릎보호대 덕인지 쉰 덕인지 상태가 호전되어 서울 둘레길 중에서 우면산 쪽도 가봤는데, 여기도 낙엽이 거의 다 떨어져서 그렇게 보람찬 트래킹이 되진 않았다. 야심차게 도장도 찍기 시작했으나, 구성원 중 누구도 다른 활동보다 나은 보상을 느끼지 못한 듯 1년이 다 지나도록 서울 둘레길을 도는 모임은 다시 잡히지 않았다. 더 아름답고 재미있는 길을 잘 찾아봤어야 하나 싶은 한편으로 될 대로 되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다만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날 혼자서 등산스틱까지 사용하고도 미약한 통증에 뒤쳐졌고, 중간에 그냥 내려가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느꼈다. 길을 즐기자니 경치가 부족했고, 일행을 따라잡기도 벅차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쉬면서 무릎을 마사지하고 나니 통증이 거의 사라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적당한 재활과 마사지가 통증 경감에 좋다는 교훈이 우면산의 둘레길에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그로부터 2주일간 무릎을 다스리며 공모전과 수필 따위 잡다한 작업에 시달렸다. 산에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12월 초였다. 나는 어딜 갈까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도봉산을 택했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정할 때, 나는 코스 정보를 이것저것 뒤적이다 이건 지금 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길을 택하는데, 이때는 도봉산의 망월사가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정보를 접한 게 결정적이었다. 물론 낙엽은 다 떨어져 대단히 뒤늦은 방문이 되었지만, 북한산을 갔으니 도봉산도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게다가 수락산의 기차바위를 구경도 못했으니, 맛좋은 암릉 코스로 정평이 난 도봉산의 Y계곡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망월사 역에서 출발해서 망월사를 거쳐 포대능선을 타고 신선대로 간다는, 나로서는 상당히 만만치 않은 계획을 세우고 출발했다. 엄청나게 긴 코스는 아니지만 걱정거리가 좀 있는 산행이었다. 일단 무릎도 걱정이었고, 암벽을 탈 수 있을지, 길은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짐을 넉넉하게 챙겼는데, 장비에 대한 경험이 좀 쌓인 지금 돌이켜보면 좀 과한 편이었다. 이날 기온은 최고 12도나 되었으나 나는 베이스레이어 위에 600그램짜리 폴라텍 써멀프로 플리스를 걸쳤다. 플리스는 따뜻하면서도 통풍이 잘 되어 커버하는 온도의 범위가 넓은 편이지만, 600그램이나 되는 물건을 입을 필요는 없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티셔츠만 입어도 되는 날씨였던 것이다. 게다가 배낭에는 660그램짜리 소프트쉘을 챙겨놓았으니, 둘을 합치면 영하 10도도 버틸 장비였다. 일상용으로 입는 롱패딩이 무거우면 1200그램 가량이니까, 나는 뭣모르고 한겨울 장비로 도봉산에 오른 셈이다. 물론 산에는 ‘가방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가벼워서 죽는다’라는 오싹한 격언이 있으니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줘야 하는 무릎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들머리로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개발이 한창인 시골 산어귀 같은 풍경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포장 도로를 길게 걸어야 했는데, 길을 또 헷갈려서 두어 번 지도를 들여다보고 걸음을 돌렸다. 콘크리트 포장으로 정비된 계곡 옆으로 소박한 마을이 있었고, 그 옆길을 통과하자 감춰진 세계의 입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오두막 같은 탐방 지원센터가 나타났다. 거기서 지도를 한 장 받고 도장을 찍으려고 보니, 그 도장은 국립공원 도장만 모으는 수첩에 찍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런 물건은 없다. 서울 벗어나기도 힘든 처지라 그런 사치를 부릴 수도 없고. 나는 괜히 지도에 도장을 찍은 뒤 계곡 위의 다리를 건넜다. 이제야 비로소 등산을 하러 온 기분이 들었다. 역시 들머리는 역에서 가까운 편이 좋다. 특히 포장도로를 오래 걸을수록 어딘지 모르게 행군하는 듯해서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이다.


산으로 들어서니 길은 상당히 무난한 돌계단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마치 커다란 뒷산의 길 중에서도 먼 옛날에 정비된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름답다면 아름답지만, 기대보다 볼품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틀리지는 않은 길이었다. 금방 더워져서 웃옷을 벗고 걸어야 했다. 또 한참을 질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걸어 올라가니 슬슬 경사가 가팔라졌고 길도 험해졌는데,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망월사가 나왔다. 


망월사는 산속에 있는 것치고는 뜻밖에 넓은 사찰이었고, 건물들은 고색창연할 거라는 편견과 달리 거의 현대적이었다. 아궁이를 사용하는 것인지 따로 있는 창고 같은 건물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가장 고전적인 풍경이었다. 등산 스틱을 접고 종무소 옆으로 걸어가니 산 기슭의 거대한 바위 밑에 샘터가 만들어진 게 보였다. 바위라기보다는 절벽면에 가까웠으므로, 아마 이보다 더 위압감이 느껴지는 샘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돌아서자니 건물에서 중년 여성이 나와서 여기저기 식사하시라는 말을 하고 다니다 나를 보고는 냉면을 먹고 가라고 권했다.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건 상상도 해본적이 없는 터라 정상에 가서 식사할 작정이라고 거절했는데, 돌이켜보면 언제 또 가능할지 모를 경험을 사양한 셈이라 후회스럽다. 나는 빠르게 절의 남은 부분을 둘러보았다. 산기슭에 흩어진 사찰 건물들의 지붕과 숲을 내려다보자니, 확실히 봄가을에 지극히 아름다울 곳일 듯싶었다.



(산기슭에 자리한 사찰에는 수직적 아름다움이 있다)

망월사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묘하게 잘 정비된 오르막이었다. 묘하다는 건 다른 길과 다르게 바위나 데크로 포장되지 않고 길을 널찍하게 파서 다듬은 곳이 많아서 하는 말인데, 이런 양식을 어디서 봤나 잘 떠올려보면 군사용으로 다듬은 곳들이 이랬다. 실제로 포대능선은 포대가 자리했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서울의 높고 아름다운 산 곳곳에 군사 시설이 있었거나 여전히 있다는 사실은 전란이 남긴 안타까운 상흔일 것이다.


넓게 정비한 만큼 포대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걸음이 편한 한편으로 심심했다. 다시 말해 이 날은 산행의 절반 가량이 심심했다는 소리다. 평온하긴 했지만 낙엽도 거의 다 지고 난 이후라 풍경도 멋지진 않았으니까. 낙엽도 눈도 없어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장 저조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런 시기에는 바위 능선이나 침엽수가 많은 등산로를 찾는 게 나을 모양이다.


다행히도 능선으로 올라타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능선부터는 대체로 암릉이었다. 주변에 나무가 조금씩 자라긴 했지만 치솟은 바위들 위로 걸어야 하는 길이라 비로소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뒤쪽에는  봉우리 위에 전화부스처럼 작은 오두막이 있었고 그 주변에서 쉬는 등산객이 몇 명 보였다. 오두막은 산불감시 초소였고, 그 방향으로 가면 사패산으로 이어진다. 나는 나중에야 사패산에서 오며 그 길을 지날 수 있었는데, 지긋지긋한 계단길 뒤에 나오는 조망점이라 사람이 모여 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각자의 고난을 넘어온 사람들)

바위 위를 걷기도 하고 옆으로 돌기도 하며 잠시 진행한 뒤에는 전설의 풍경처럼 솟아 있는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내리막이 나왔다. 바위로 만든 미끄럼틀처럼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다행히도 중간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난간이 없었다면 여차하는 순간에 미끄러져 저 밑까지 흘러내려갈 만했다. 과장이 아니라, 비브람 메가그립이 채용된 트라이포드 미드를 신고도 걸음에 확신이 부족했다. 아마 일반 운동화를 신고 왔다면 완전히 난간에 의지해서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너무 깨끗한 내리막이라 걷자면 식은땀이 난다)

바위 경사로를 내려간 뒤로는 숲길을 돌아서 능선보다 낮은 길을 제법 걸은 다음에 다시 능선으로 오르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50센티미터쯤 되는 바위를 내려가다 미끄러졌다. 또 밟으면 안 되는 곳을 밟고 만 것이다. 넘어지며 난간을 잡은 덕에 더 미끄러지지는 않았지만, 제때 난간을 잡지 못했다면 낮은 난간에 이마를 찧거나, 한층 더 운이 없었다면 난간 너머로 날아갈 뻔했다. 어쩌면 이마를 찧고 난간 너머로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코앞에서 멈춘 난간을 보며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같다는 재수없는 생각을 했다. 좋은 신발을 신었다고 방심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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