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가 포대로 향하는 능선 길이었을 것이다. 숨은벽에서 봤던 암릉 오르막과 비슷한 경사에 길이는 훨씬 긴 길이 나와서 나는 ‘아, 이게 그 Y계곡인가’하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등산 스틱을 접은 뒤 난간을 당기며 바위 능선에 올랐다. 그러나 그건 그냥 이름도 없는 암릉에 불과했고, 내 착각은 예습과 경험이 부족해서 유발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정도의 암릉은 널리고 널려서 명소로 유명해질 정도가 아니었다.
진짜 Y계곡은 원래 포대가 있었다는 데크 전망대를 지나서 나왔다. 얼핏 보기엔 적당히 나무들이 자라있고 널찍하게 펼쳐진 능선 길 옆이라 무서운 암릉이 도사리고 있다는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능선 길 끝으로 가자마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절벽이 펼쳐졌다. 그건 경사로가 아니라 그냥 난간이 달렸고 발 디딜 곳이 있긴 있는 절벽이었다. 바로 옆에 매우 위험하니 어지간하면 우회로를 가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정말이지 납득할 수 있는 경고였다. 그러나 바로 앞에 고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아버지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 내려갈수록 이런 곳에 자식을 데려오는 건 그닥 좋지 않은 교육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은벽이 난간 없는 빌딩 옥상 끄트머리 2미터 옆을 따라 걷는듯한 곳이었다면, 여기는 로프 대신 난간을 잡고 해보는 레펠 입문 체험장 같은 곳이었다. 좀 험난한 정글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못 갈 길도 아니긴 했지만, 발 디딜 곳이 너무 멀어 난감해질 때가 많았다. 망설이자면 위에서 오는 사람이 답답해하는 기색이 느껴져 초초하기도 했다. 대체 이런 절벽을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괜찮은 길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 피터 파커?
Y계곡이라는 이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 한참 그렇게 기어 내려간 뒤에는 그만큼을 또 기어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오르는 길은 비교적 나은 편이라 팔심으로 당겨 몸을 마구 끌어올렸다. 팔 운동을 해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몇 킬로그램을 들어올릴 수 없는 사람은 우회로로 가라는 안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여간 난처하지 않은 길이니까. 그나저나 올해 이곳을 다시 가니, Y자의 중간점에 안전요원이 서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만한 곳이다. 중년 남녀 모두 이렇게 험악한 길을 다닌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략 11분에 걸쳐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다들 미친 걸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등산에 익숙지 않은 사람을 데려오면 암살 시도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런 곳은 일 년에 한 번만 오면 충분할 것 같다. ......아니, 그건 너무 가끔이고, 계절마다 한 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튼튼한 사람은 데려오면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확실히 도파민 수용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Y계곡에 대한 묘한 호감에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다.
일단 이후에 우회로도 한 번 가봤는데, 재미없기가 이를데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능선 옆의 숲길로 완만하게 내려갔다가 그보다는 약간 높은 경사로를 쭉 올라가는 길이라 눈곱만큼도 볼 것도 조심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만큼 돌아가는 셈이라 길기도 길었다. 체감으론 완만한 오르막을 20분은 걸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묘하게 체력도 소진되어 적잖이 힘들었다. 피치못할 이유가 있지 않는한 다시 찾아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Y계곡을 건넌 뒤에 올라선 능선이 대단한 비경이었기 때문이다. 숨은벽 능선도 산꼭대기의 줄기를 따라 걷는 기분이었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발 디딜 곳도 별로 없는 산의 첨단부였다. 그러면서 주변에는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각지기도 한 바위 봉우리들이 솟아있어 고공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신선 얘길 꺼낼때마다 식상해서 회의감이 들지만, 여기는 정말 신선이 산맥을 질주하며 한 걸음 디디고 날아가는 장면의 배경으로 쓰기 좋은 곳이었다. 정말 창공을 걷는 기분이 필요하다면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체력을 대가로 받아가지만, 그 능선을 지난 뒤에는 5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깔깔 웃으며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보였으니, 의외로 쉽게 즐길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Y계곡을 지나고 신선대는 금방이었다. 몇 걸음 떼자마자 마당바위 비슷하지만 다소 내리막인 공터가 나왔고, 사람들 여럿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쉬면서 산속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나도 거기 앉아서 앞에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으며 간식을 먹었다. 그 자리는 이제 내가 도봉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할 만한데, 그곳에서 보이는 자운봉과 신선대의 모습이 이 세상과 동떨어진 듯 아름다우면서도 위압감이 없이 평온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백운대는 눈에 담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거대하고 높아서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인데 비해, 자운봉과 신선대는 동양화의 한 부분을 갖다놓은 듯 치솟은 봉우리가 익숙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자운봉을 이루는 각진 바위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고대 문명의 엄숙한 기념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름다운데 왜 아름다운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인간 문명의 아름다움과 동떨어진 아름다움이면서도 보고 있자면 마음이 가라앉는 따스하고 평온한 광경이었다. 삶에 대한 고민도 자연에 대한 의미 찾기도 형체를 잃는 그 자리에서, 나는 늘어지기 전까지 쉬고 일어나 신선대로 걸어갔다.
신선대 밑으로 가는 길은 짧고 데크가 깔려있어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신선대로 올라가는 길은 길이 아니라 암벽이라 Y계곡 못지 않게 오르기 힘들었고, 오른 뒤에도 공간이 좁았다. 난간에 의지해서 올라간 뒤에 앞 사람 사진을 찍어주고 나무 기둥으로 만든 소박한 정상 표지 앞에서 앞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혔다. 다시 보니 제법 잘 찍혔고, 표정도 밝다. 셀카봉에 이어 광각 촬영이 보편화되어 보기 힘들어진 ‘사진 부탁’의 문화를 오랜만에 맛보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남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산에서 사진 잘 찍는 법을 익혀야할 모양이다.
신선대 주변의 풍경은 Y계곡 위의 능선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근의 모든 산이 가까이부터 어렴풋한 멀리까지 모두 보여 산으로 이루어진 바다 중간에 있는 듯했다. 거기에 암석들이 조립되어 만들어진 듯한 자운봉과 그 줄기가 아래로 벽처럼 이어지니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여기는 분명 현실공간이고, 걸어오를 수 있는 도봉산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나는 깊은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렇게 여정의 반환점을 갈무리하며 달성감을 깊이 되새겼다. 등산을 시작한지 두 달만에 나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 둘을 다 올랐다. 그래봐야 1000미터도 되지 않으니 등산인 모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 개인에게는 큰 걸음이었다. 누구에게 마땅히 배우지도 않고 대충 알아서 헤매다 작가가 되고 책을 낸 것처럼,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내 발길이 닿는 가장 높은 산들을 둘이나 오른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등산을 무슨 경천동지할 기록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내 손에 닿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내가 느끼는 절대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었다.
제각각 조촐한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신선대에서 내려가는 길이 올라오는 것보다 훨씬 아슬아슬했다. 난간에 매달려 뒤로 내려가야 했는데, 사람들이 발을 디디는 곳이 매끈하게 연마된 터라 한 번은 발이 미끄러져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기껏해야 20센티 밑으로 떨어진 것이라 문제는 없었지만 가슴은 철렁했다.
여담으로, 세상에 운동화만 신고도 서울 산은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나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좋은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산화만의 능력이 당장 체감할 수 있게 발휘되는 것은 대여섯 시간 동안 스무 걸음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걸음이 여차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단적인 반례가 바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신선대에서 본 한 커플 중 여자는 레깅스에 바람막이, 등산화를 차려입은 반면에 남자는 서부극 스타일로 청바지와 조끼, 멋진 가죽 부츠 차림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여자만 신선대에서 수월하게 내려오고 남자는 주주죽 소리를 내며 걸음마다 미끄러지고 있었다. 보기에 걱정스러울 지경으로 순전히 팔심에 의지해서 내려오는 상황이었다. 저 커플은 근래에 등산에 빠져든 여자를 따라서 남자가 ‘까짓거 뭐 집에 있는 부츠 신으면 되겠지’하고 가볍게 나온 게 아닐까? 부디 돌아가서는 좋은 등산화를 구입했기를 바란다. 도봉산을 끝으로 등산을 그만뒀다면 그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산은 선인봉 옆을 지나 마당바위 방면을 거치는 코스를 따라갔다. 신선대 오르는 쉬운 코스로 뽑히는 길이었는데, 하산을 시작한 직후에 나오는 데크 계단부터 경사가 심하고 이후의 길도 깔끔하게 정비된 정도는 아니라 벅찬 느낌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그즈음 해서 저녁에 크리스마스 페어를 구경하자는 약속이 잡혀서 대단히 서둘러야 했다. 수락산에서 허겁지겁 하산하며 등산 뒤에는 약속을 잡지 않겠다고 생각해놓고 이 무슨 어리석은 일인가 말이다.
참고로 이날 나는 마당바위 방면을 택했고 거기서 보이는 도시 경치에 만족하며 하산했지만, 갈림길에서 좌회전해서 산악구조대 방면으로 가는 편이 약간 더 쉽다. 숲길이라 경치가 심심한 대신에 나무 블록으로 된 길이고, 심지어 화장실도 나온다. 두 번째 산행에서 굳이 새 길을 택해 비교해보고 알아낸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마당바위 쪽, 화장실이 급하거나 지쳤다면 산악구조대 쪽을 선택하자. 그나저나 이렇게 갈림길 알아보는 것도 게임에서 포기한 선택지를 다시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르는 짓이다. 다만 인생의 선택에 동반되는 쓸쓸함을 노래한 그 시와 달리 산은 언제든 다시 와서 가지 않은 길을, 아껴둔 과자 먹듯이 걸으면 그만이니 그렇게까지 슬퍼할 필요가 없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 명산이 있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일이다. 이걸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인생도 지금보다는 밝고 건강해지지 않았으려나.......
아무튼 11시 반쯤에 시작한 산행은 5시 반쯤에 끝났고, 나는 곧장 축제를 보러 이동했다. 일행을 만나자마자 완전히 등산객처럼 보인다는 말에 남에게 보일 등산 복장을 새로 궁리하게 되었다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만하면 준수한 산행이었다.
자, 이제 서울에 남은 산이 뭐가 있지?
교훈
무릎이 이상하다 싶으면 주의하자. 특히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타지 말자.
야외 활동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팀과 움직인다면 절대 잊지 못할 포토스팟 같은 보상이 마련된 곳을 가는 게 실패 확률이 낮다.
역이나 주차 장소에서 들머리까지 가는 길, 하산 후 돌아가는 길도 미리 체크해두자. 여기서도 제법 시간을 죽이므로 자칫하면 하루 일정이 어긋난다.
산에 갈 때는 계절과 관계 없이 장갑을 꼭 챙기자.
다시 강조한다. 등산화를 신지 않고 비포장 산에 가는 것은 안전벨트 없이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