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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의상 능선과 고요한 밤의 사찰(개정)

불타는 여름이 식는 산의 쓸쓸함에 대해

by 이건해


6월에 불곡산에 다녀온 뒤로 7월 내내 산에 가지 않았다. 그 사이에 공모전에 네 번 투고했고(전부 낙선했다), 친구들끼리 가평의 계곡 하류로 피서를 갔다. 산이 아닌 물에서 노는 것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긴 했지만.......물이 하도 데워져서 짜릿한 시원함도 없었고, 물놀이 뒤에 먹는 컵라면도 기대처럼 몸에 스미지 않았다. 혼자 숙소 뒷산에 갔다온 게 더 재미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 나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직후에 보상을 받는 쾌락에 중독되어 그냥 단순하게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는 시시하게 된 모양이다.


번잡한 나날을 보내느라 쌓이기만 한 등산 욕구는 관련 장비를 갖추는 것으로 해소했다. 새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는 내 물건을 잘 씀으로써 억누를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억제가 작동하지 않으니 새 물건으로 눈이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등산화 제조사인 로바의 인기 모델......과 대단히 유사한 모양으로 나온 아이더의 등산화를 떨이로 사기도 했고, 아웃도어계의 이케아라 불리는 프랑스 브랜드 데카트론의 트래킹화를 주워다 고치기도 했다. 참고로 아이더 등산화는 대단히 만족스러웠으나 한동안 신지 못했고, 데카트론 트래킹화는 밑창이 반쯤 벌어진 것을 재접착해서 신어보고 접지력도 착화감도 준수하다는 평을 내린 뒤 구호단체에 기증했다. 수선에 들인 공이 아까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의 생활을 돕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자.


그러다 8월 초에는 다시 산으로 갔다. 전날까지 아무 보수 없이 만화를 번역하다 정신이 마모된 탓에 산 생각이 간절했다. 정신의 고통엔 가혹한 길이 특효약이다. 어디 멋진 코스가 없나 고민하다 떠오른 것은 북한산 의상 능선이었다. 겨울에 신나게 걸은 길이긴 한데 악천후로 경치를 전혀 보지 못했으니, 여름에 다시 찾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이날 나는 여름이니 챙길 옷도 적겠다 집에 있던 22리터짜리 배낭으로 가볍게 나설까 싶었는데...... 막상 짐을 싸보니 물 때문에 전혀 짐이 줄지 않았다. 배낭에 들어가는 짐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겨울보다 부피도 크고 무게도 무거운 듯했다. 하기야 뜨거운 불곡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탓에 물을 1.5리터나 챙긴데다, 이것들을 다 보냉 파우치에 넣었으니 배낭이 남아날리가 없었다. 나는 여름 등산이 겨울보다 압도적으로 거칠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며 27리터짜리 배낭을 다시 꺼내야 했다.


이날의 최고 기온은 34도로, 다람쥐 이상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낮에 재미 삼아 산에 오르지 않을 기온이었다. 그러나 내가 12시쯤 들머리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이 끼어 27도에 불과했다. 등산에 안성맞춤까진 아니어도 가혹한 길에 도전해볼 만은 한 날씨였다. 일단 물 1.5리터에 이온음료 300밀리리터, 거기에 블랙야크 행사장에서 보리음료 500밀리리터를 더 받아서 물만큼은 충분했다. 가방이 무거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불곡산에서 물통의 물을 끝까지 핥아 마셔본 나는 이제 안다. 물은 남는 게 낫다. 가방이 무거워서 죽는 게 아니라 가벼워서 죽는다는 말이 겨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의상능선으로 가는 길은 잘 포장된 대로를 따라 걷다 샛길로 빠져야 하는데, 전에 왔을 때와 달리 녹음이 우거진 길은 청량하고 평화로웠다. 겨울의 쓸쓸함 같은 건 어디에도 없고 큰 공원의 산책로를 걷는 듯했다. 대체 한여름에 산에 왜 가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젊은날의 기쁨을 두른 듯한 산의 아름다움은 뜨거운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각별한 정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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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산책로처럼 평화로운 길)


물론, 그렇다고 여름의 산길이 더 쉽고 쾌적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심지어 신이 나서 오른 적이 있는 길이지만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은 역시 가파르고 거칠고 험했다. 굵직굵직한 바윗길을 디디며 달아오른 철제 난간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길 반복하는 건 내가 즐기는 일이었음에도 힘들었다. 알던 것보다 훨씬 길게 느껴져 처음 온 곳 같았다. 아는 걸 새롭게 다시 즐기게 되었으니 이득이라면 이득이겠지만.


나는 한 시쯤에 암릉 옆의 그늘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며 산을 둘러보았다. 리드미컬한 매미 울음 소리를 들으며 그늘에서 산바람에 몸을 식히자니 여름의 한복판에 앉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몸이 녹아내려 액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독했던 더위도 산속까지 쫓아오진 못했다. 이게 바로 여름의 청량함이다. 영화나 광고에서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밀짚모자를 쓴 채 돌아보며 웃곤 하는 여름날은 도시가 아니라 산 위에 있었던 것이다. 100m 상승할 때마다 0.6도씩 떨어지니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다. 나는 몸을 식히려고 가져와본 목걸이형 선풍기를 집어넣고 부채를 꺼내 부채질을 했다. 확실히 이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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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바위에 서늘한 매미 울음이 스민다.)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목걸이형 선풍기는 등산에 영 맞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덜렁대는 것도 문제고, 산을 타며 발생하는 열을 식힐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끄러워서 고요한 정취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것도 시끄러운 도심용 물품이었던 것이다. 역시 산에는 전자기기를 하나라도 덜 가져가는 게 좋은 것 같다.


2시쯤 토끼바위 근처에서 소시지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즈음 시야가 크게 트이기 시작했는데, 구름이나 안개처럼 도시 곳곳을 뒤덮은 초록의 물결과 그 사이의 건물들은 밀려드는 여름과 그에 저항하는 인간군상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보니 밀려드는 여름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름에 뛰어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주장해봤자 내가 오래도록 산을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돌아갈 도시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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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물결 사이의 한옥마을과 콘크리트 건물들)


그나저나 이날은 작정하고 챙이 넓은 부니햇을 썼는데, 산을 오르는 동안 머리 위를 스치는 나뭇가지들을 보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좌우를 접어올려 고정함으로써 챙의 앞뒤도 끌어올렸지만, 이렇게 되니 그늘이 줄어들었다. 심재가 들어있어 앞쪽만 살짝 올릴 수 있는 타입이 나을 모양이다. 게다가 챙을 올리고 사진을 찍어보니 마치 20년 경력의 탐험가처럼 보였다. 서울 근교에서 벗어난 적도 없는 1년차가 이러고 다니는 건 좀 민망하다.


등산화는 또 중고장터에서 싸게 구한지 며칠 되지 않은 ‘아디다스 테렉스 프리하이커 팔리1’을 신었다. 초보자에게 널리 추천되는 신발이라 이것도 맛을 봐야만 했던 것이다. 결코 쇼핑에 미쳐서가 아니다. 아무튼 고어텍스가 적용되지 않은 니트형 모델을 신어보니 정말이지 가볍고 쾌적했다. 사람들이 극찬하듯 접지력도 착화감도 부족할 게 전혀 없었다. 의상 능선처럼 가파르고 혹독한 길에서도 편안했으니 검증 완료다.


문제라면 니트 갑피가 얇아서 신발끈을 단단히 조이면 거슬린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 또 있군. 적절한 쿠션감이 일품인 중창, 울트라부스트 부분이 긁히고 더러워지기 쉬운지라 지독한 너덜길을 다니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일상에서도 캐주얼하게 신으면서 둘레길이나 살짝 거친 길을 다니기엔 아주 훌륭한 반면, 나처럼 바위도 기어오르고 너덜길도 헤매는 사람에겐 내구성이 아까운 물건이다. 역시 속편하게 다니려면 무거워도 등산화다운 등산화를 신는 게 제일이다. 용도에 맞는 도구를 잘 챙기는 게 아웃도어 활동의 미덕이다.


의상봉에 도착한 것은 2시 52분이었다. 겨울에는 두 시간만에 온 길을 세 시간 가까이 걸려서 오른 것이다. 전과 달리 멀리 보이는 경치를 구경하느라 보낸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30분 이상 더 걸렸다. 역시 여름 산이 청량하고 아름답다곤 하지만 오르기는 압도적으로 힘들다. 체질 문제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아이젠을 끼고 눈밭을 걷는 편이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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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봉에서 보는 정상 방면이 장엄하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의상봉에서 뾰족한 능선으로 움직였다. 의상 능선의 백미라 할 만한 구간인데, 두 번째로 봐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처럼 거친 야생의 맛은 덜했다. 아마도 겨울에는 파란빛이 감도는 눈밭과 검푸른 숲의 대비가 풍경을 더 거칠게 만드는 탓이리라.


그나저나 사진을 찍고 있자니, 중학교 3학년이나 될까 싶은 남학생 둘이 같은 방향에서 걸어왔다. 등산화 말곤 완벽히 평상복에 가까운 모습은 걱정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해 보였는데, 그와 별개로 이 시각에 험난하기로 유명한 코스에 어린 학생이 둘이나 나타난 건 뜻밖이었다.


스피커로 음악을 듣던 학생들은 능선 어딘가에서 까마귀가 울자 까악대며 그 소리를 따라하다, 곧 내게 다가와 길을 물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쉬운 길인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국녕사를 지나 온 모양이었다. 아는 대로 길을 가르쳐주는 동안 한 명은 앞길에 관심이 없는 듯 가던 길을 계속 갔는데, 다른 한 명이 얘기를 마치고 따라잡자 시답잖은 소리를 시작했다.


“길도 모르고 가냐?”

“길을 왜 몰라, 다 알지.”

“길 잃어서 죽으면 네 보험금은 내가 가져갈게.”

“보험금으로 뭐 살 건데?”

“음...... 자전거.”


나도 남중남고 출신으로 터무니없는 잡담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이 정도로 남학생들 사이에 주고받을 헛소리다운 얘기는 근래에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만큼 헛소리를 해도 될 정도로 격의없는 관계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친구란 어쩌면 헛소리를 나누기 위해 사귀는 게 아닐까? 산속의 일행이 이런 식으로 부러워진 건 처음이었다. 나도 어릴 때 친구들과 멋진 곳을 다녔으면 좋았으련만, 멀리 놀러다닌다는 건 아예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고, 취미라고 즐기는 건 오로지 실내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것 정도였다. 남자애들이 시간 날 때마다 뛰어다니고 공을 쫓아다니는 풍조를 단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 한여름에 산꼭대기에 오다니, 정말이지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가늠할 수 없고 취향의 변화는 종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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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당암문 근처의 성벽에서)


가사당암문 근처에서 잠시 성벽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걸었고, 이어서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까지 올랐다. 시야가 트인 서울 풍경은 아련하게 아름다웠다. 희미한 청회색의 장막에 감싸인 듯한 도시 너머로 한강의 광채가 보였다. 가득한 매미 울음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먼 한강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아서 더 감격을 주는 구석이 있었다. 서울 북쪽 산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세계의 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다. 겨울에는 바위와 봉우리를 타는 것만으로 즐거웠지만, 날이 좋으니 경치 역시 빼어나다는 것도 반년만에 알 수 있었다. 코스 자체의 재미에 9점, 경치에 7점을 줘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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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의 모습 뒤로 한강의 광채가 지나간다)


그나저나 출발할 때는 이미 아는 길이니까 전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완벽히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증취봉에서 이미 너무 지쳐버려 하산을 시작했다. 구름이 끼어 이글거리는 태양빛은 피할 수 있어서 좋았으나, 그런 한편으로 차츰 습해져서 온몸이 찌걱댔다. 배낭이 무거웠던 것도 체력 소진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겨울에는 보국문까지 가서 거의 북한산을 반바퀴 돌 정도였는데 그때의 반밖에 걷지 못한 셈이다. 여름 등산이 힘들다는 걸 새삼 체감했다. 영상 30도와 영하 10도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영하 10도를 택하겠다. 설산을 걸어보면 등산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말은 있지만 달아오른 봉우리에 오르는 게 등산의 참맛이라는 말 같은 건 없는 이유를 알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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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계절이든 암문은 늘 쓸쓸하다)


초록이 우거진 숲과 대비되어 한층 쓸쓸한 폐허처럼 보이는 부왕동암문에서 방향을 틀어 본격적으로 하산했다. 계곡길이라 길이 상당히 더러운 편이었으나 넌더리가 날 때쯤이면 흐르는 물이 보여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는 개구리를 찍기도 하고 손수건을 물에 적셔 목에 두르기도 하며 꾸준히 걸었다. 그러자니 서서히 해가 기울며 설명하기 힘든 쓸쓸함이 찾아왔다. 말 그대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느끼는 스산함 때문인지,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고난을 자초하고 홀로 떠도는 쓸쓸함 때문인지, 달성감이 가시고 느껴지는 피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폐허같은 심정이었다. 이런 기분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듯이 자신의 일부로 존재함을 인지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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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로 건너가는 다리)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7시 36분에 삼천사에 도착했다. 조그만 계곡물을 다리로 건너 나오는 담장과 사찰 건물, 그리고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어진 구름다리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조그마한 마을처럼 느껴졌다. 산을 등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반딧불처럼 소박한 불을 밝히기 시작한 가운데, 쓸쓸한 바람이 불 때마다 곳곳에 걸린 풍경들이 낮은 종소리를 냈다. 소리로 빚어놓은 바람이 춤추는 듯한 공간이었다. 종교시설들이 원래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긴 하지만, 이곳은 그에 더해 지독하리만치 아름다운 쓸쓸함이 소리내어 울기까지 하는 곳이었다. 나는 잠시 석탑 앞에 앉았다가 울고 싶어졌지만 지치기 전에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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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고요한 사찰은 사찰이 왜 속세에서 떨어져있나 알려주는 듯하다)


사찰이 나왔으니 거의 다 내려왔다 싶었지만 길은 계속 이어졌다. 삼천사 계곡물 너머로 점포가 여럿 자리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산에 올랐다가 점심때쯤 하산해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면 청량한 여름의 맛이 무릉도원같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해가 넘어간데다 이렇게 큰 가게에서 혼자 앉아 식사하기가 내키지 않아 산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 그러고 나서 보니 문을 연 식당이 한 개도 없어 결국은 버스를 타고 불광까지 나가야 했다. 불광에서 내렸을 때는 9시가 다 되었으므로 번화가에서도 몇 집을 헤맨끝에야 간신히 짬뽕과 맥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남들이 괜히 일찍 돌아다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산에 가기로 한 날에도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습성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배낭 속에 선풍기 따위 잡다한 물건을 챙기듯 빠른 기상과 멀쩡한 컨디션도 가뿐히 준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식사를 마친 뒤에는 오랜만에 합정을 거쳐 집에 돌아왔다.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올라가는 길목은 20년 전보다 훨씬 깔끔해져서 놀라웠고, 한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미적지근하지만 끝이 차가웠다. 영원할 듯 지독했던 여름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쓸쓸함에 사로잡혔다. 매년 겪는 일인데도 여름의 쇠퇴가 다른 계절과 비할 수 없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리 지겹고 미워도 여름의 뜨거운 생명력에서 자신이 매년 뭔가를 얻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저무는 여름을 만끽할 산행지를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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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코스. 6킬로 남짓한 거리인데 힘들기론 여간 힘들지 않았다)


교훈

기록을 통해 자신에게 넉넉한 정도의 물을 챙겨 다니자.

부니햇이 챙이 넓고 좋지만 머리 위쪽을 많이 가리니 상황따라 조절 가능한 것을 고르자.

선풍기는 산속에서 놀랄 정도로 시끄럽다. 부채를 챙기자.

가볍고 부드러운 신발은 산을 다니다 보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상하니, 둘레길보다 험한 길을 다닐 거라면 가죽 등산화를 신자.

습도가 높은 날은 산행이 지독하게 어렵다는 걸 미리 감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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